(668일째 기록)
아흔 번이 넘는 설을 맞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당신이 먹어왔던 떡국을 두 딸과 세 아들, 그들 가족을 위해 끓이는 수십 년의 시간.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가족이 만들어 준 떡국의 숟가락을 뜰 때의 마음.
떡처럼 하얗기만 하면 좋겠지만, 얼룩진 시간들이 더 많았기에 할머니의 시간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래서, 주님이 당신을 데려가지 않는다는 한탄 섞인 말에 뭐라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지금 겪는 몸의 불편함 이상으로 지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럼에도, 더 오래 계셔주시길. 자녀들과 함께 살아주시길 바랐었다.
넘어지신 후 걷지 못하는 몸보다, 코로나로 나가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더 컸을 할머니의 3년.
그만큼, 지난 해 추석. 오랜만에 만난 온가족을 반가워하셨다.
태어나고 처음 만나는 증손자와 악수할 때는 소녀처럼 웃으셨다.
듣지 못하는 할머니와 말하지 못하는 아기가 눈빛으로 서로를 위로했던걸까.
식사 후, 요양병원에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하신 한 마디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더 살아야겠다."
감사하게도 6개월을 더 건강하게 사신 후에 96세로 맞이하는 설.
새벽까지 음식을 하신 어머니의 손맛과 구급차를 불러 집으로 모신 아버지의 노력으로
할머니는 새해를 살맛나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때 강아지라고 불리웠던 소년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약소한 용돈과 손을 잡아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없음이 죄송해졌다.
식사를 하며 지난 추석의 이야기를 하니 해사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미소를 잃지 않으시기를.
더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이어주시기를.
같이 살아가고픈 가족이 있음을 기억해주시기를.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이 당신을 데려갔을 때, 잘 사셨다고 말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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