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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아범 일기 Jun 10. 2024

#23 아빠는 어떤 사람이야?

(763일째 기록)


 아이와의 점심은 항상 분주하다. 부부의 음식과 유아식을 함께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화구 두 개로 부족할 때가 있다. 주말의 점심 메뉴는 명란 알리오올리오와 소고기볶음밥. 아내가 정성으로 미리 준비해 얼려놓은 볶음밥 재료를 해동하여 밥을 만들고, 아빠의 파스타를 조리했다. 마늘을 편으로 썰고, 명란젓의 껍질을 벗겨내고, 면을 삶으며 파스타의 베이스를 만든다. 그 사이, 아내는 아이의 볶음밥을 먹이기 시작했다. 게 눈 감추듯 파스타를 먹는 우리같으면 좋겠지만, 봄은 밥태기를 겪는 중이었다. 밥과의 권태기를 딴 단어인 밥태기. 세 글자로 표현하기에는 아이가 잘 먹도록 유도하고 기다린 시간이 길다. 아이의 거부에 지친 마음과 요리의 타이밍을 맞춰야한다는 강박에 예민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봄은 볶음밥을 안 먹겠다며 그릇을 엄마에게 던졌다.


깔끔해보이는 파스타와 다르게, 전쟁같은 점심!


 "깜짝이야." 팝콘처럼 튄 볶음밥과 다르게 아내의 대처는 평온했다. 저녁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아빠 표정이 변할거라며 겁을 줬던 나와는 너무 다른 대응이었다.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나서, 다치지 않았으면 괜찮다는 아내의 말. 요리를 하는 나까지 편안해지는 태도였다.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이기에 놀라거나 참기 힘든 순간에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아내의 답은 간단했다.


 "다 큰 것 같지만, 두 살 된 아기잖아." 품에 안아 들기에 묵직해지는 봄의 무게에, 점점 아빠의 말을 알아듣는 봄의 소통능력에, 아이를 부모와 완전히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은 맞겠지만, 성장을 시작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관대함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자꾸 잊어버리는 것들을 상기시켜야만하는 초보 아빠는 봄에게 묻는다. "엄마는 화를 안 내는 사람이잖아. 아빠도 큰 소리를 안 내는 사람일까?"


 "응." 한 글자의 대답이 한 남자의 과거를 다독여준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봄을 재밌게해준 순간도 있지만, 뜻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혼을 낸 순간도 있다. 즐겁게 식사를 한 날도 있지만, 숟가락을 던진다고 큰 소리를 낸 적도 있다. 말의 힘을 다정하게 전한 적도 있지만, '아니야.'라는 말만 하면 안 된다고 우는 아이의 머리를 잡고 말한 적도 있다. 봄은 그런 아빠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 거라 생각한다. 화를 내지 않을거라며 고개를 숙여 사과한 아빠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은 적다. 그만큼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노력한다. 두 살 된 아기라며 봄을 다독이는 엄마의 마음과 아빠는 항상 다정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봄의 마음을 기억하며.


+ 사진은 그 날의 명란 알리오올리오. 레시피를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물어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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