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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김 Apr 30. 2024

사촌동생 결혼식

우린 왜 이러고 있을까

얼마전 막내 작은 아버지의 아들, 그러니까 나의 사촌동생이 결혼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보다 일곱 살 정도 어린 사촌과는 갓난아기일 때 봐주던 기억 말고는 만난 기억도 별로 없다. 그렇게 우리 아빠의 식구들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아니 그전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모이지도 않고 그저 그런 콩가루집안이 되어 각자도생으로 살아왔다. 우리 삼 남매는 맨 먼저 축의금의 액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의논하였다. 막내 작은아빠로 치자면 우리 아빠의 막냇동생으로 인물 없는 집안에서 그나마 5급 사무관으로 퇴직하시고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파란만장하지 않은 무난한 삶을 살아온 분으로 성품이 온화하고 어린 나이에 부모 잃은 우리들을 가끔씩이나마 챙겨주려고 노력해 준 고마운 분이다. 그러니 넉넉히 해드리고 싶었으나 다음 사촌여동생의 결혼식도 있으니 조금 줄여서 하고 그때도 이 정도 축의를 하면 충분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축의금을 정했으니 결혼식을 가는 일이 남았다. 우린 한 달이나 전부터 우리들의 꼴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평소에 잘 입지 않는 깔끔한 정장을 하나 사야겠고 대충 묶고 다녔던 머리도 미용실 가서 파마라도 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너무 비싼 옷을 사기엔 부담되고 적당한 가격에 깔끔한 정도면 되었다. 너무 오버하지 말자고 다독인다. 언니는 언니대로 백화점에 가서 치마정장을 하나 샀다고 한다. 57만 원이나 줬단다. 그래서 머리는 염색정도만 한단다. 결혼식 전 이틀 전부터 얼굴팩도 연속해서 해본다. 기미가 잔뜩 낀 얼굴이 걱정되어 이거라도 부랴부랴 해보는 것이다. 목걸이에 귀걸이 팔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멋을 내본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은 결혼식 잠깐인 것을 그게 뭐라고 우리들은 이러고 난리를 치고 있을까? 였다.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신경쓰이게 만들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더니 어미아비 잃은 불쌍한 삼 남매가 여전히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못하도록 오랜만에 보는, 그동안 소식도 없이 살아온 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우리 이렇게 자리 잡고 잘살고 있다고. 으스대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짠해 보이기는 싫었나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삼남매들의 나이가 벌써 언니는 쉰인 데다 막내인 나도 마흔 중반이라는 사실. 다 늙어가는 마당에 아직도 우린 그들 앞에서 뭐가 그리도 쫄리냐 이거다. 어릴 때부터 우리들을 그다지 달가워 하지 않았던 작은엄마들의 

‘아휴.. 왜 이렇게 야위었어~ 어디 아프니?’ 라느니 _물론 나는 살이 피둥피둥 쪘다만_

‘피곤한가 보네’ 라느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 따위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을까.        

  드디어 결혼식날. 우리 집 삼 남매는 뭐가 그리 좋다고 너나 할 것 없이 제일 먼저 도착해 있다. 그 덕에 남자들은 축의금관리를 도맡았고 우리 삼 남매의 가족들은 밥도 제일 나중에 먹어야 했다. 곧이어 하나둘 친척들이 도착한다. 큰아버지 내외와 막내고모가 먼저 오셨다. 십몇년만에 봐서 그런지 막내고모를 보면서 “ 큰엄마~ 잘 계셨어요”라고 했는데 그 옆에 큰엄마가 계셔서 아이쿠나 싶었다. 그분들은 인사만 하고 식장도 들르지 않은 채 바로 식당으로 출발이다.  큰집 언니들도 둘이나 왔다. 그 언니들은 뭘 막 꾸미고 온 것도 아닌데 만날 때마다 늘 자신감이 넘친다. 둘째 언니의 잘 나가는 대기업 상무님 형부는 이런 자리 항상 오신다. 뭐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나쁘지 않다. 셋째 작은 아버지댁에서도 내 또래 남자 사촌들과 와이프까지 다 왔다. 그동안 이렇게 한꺼번에 저 집 식구를 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다들 막내 작은아빠가 그동안 덕을 많이 쌓아서 그렇다고 했다. 

 새침한 작은엄마는 여전히 고우시다. 나이 든 티도 안나고 명품가방을 끼고 옆에는 둘째 며느리와 팔짱을 오붓하게 끼고 오신다. 난 도저히 시어머니 팔짱은 못 끼겠던데 애교 있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 어릴 때부터 잘생겼던 나의 남자 사촌형제는 내 또래인데도 여전히 훤칠하면서 총각이라 해도 믿을 만큼 늘씬늘씬하다. 역시 서울 물은 다르다. 어릴 땐 명절이나 방학 때 만나 신나게 놀았다. 또래여서 서울서 내려오면 기분좋고 설레기도 했었다. 한때는 선머슴같았던 내가 어느 날 둘째 사촌 남자동생에게 장난으로 발차기를 했는데 얼굴에서 피가 나버렸다. 작은엄마가 쪼르르 오시더니 난리다. 그 고상한 서울말씨로 “어머 얘! 너는 무슨 여자애가 발톱이 그렇게 기니? ” 하며 자신의 잘생긴 아들 얼굴을 살펴보신다. 내 때 낀 발톱이 참 부끄러웠다. 그때 우리 엄마도 할머니댁 부엌 어딘가에 있었을 텐데 엄마에게 달려가 서러움 한번 표현해 봤으면 이렇게 기억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들을 보자마자 그 기억먼저 떠오르는 건 무슨 일인지.. 참 나도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사촌 중 하나는 무슨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하며 또 하나는 수입차 딜러라는데 전국에서 판매 1위도 하면서 잘 나간다고 한다. 큰집 언니의 대기업다니는 형부외에는 명함도 주지 않는 아주 현실적인 놈이다. 물론 막내 작은 아버지네도 장난 아니다. 이화여대 나온 사촌 여동생은 우리 집 최고 엘리트다. 이쁘기도 하거니와 애가 참 착하기도 하다. 물론 새침하고 약간은 가식이 있는 막내 작은엄마와는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작은엄마는 넷째 작은엄마다. 둘째인 우리 가족과 넷째 작은 아빠네는 그냥 뭔 일을 하든 잘 안 풀렸다. 딱 그 둘만 그렇게 못났다. 그런데 딱 그 둘이 그렇게 착하다. 물론 내 기준이다. 어쩌면 착하기보단 짠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가장 인간적이었던 넷째 작은 아빠와 엄마는 오시지 않았다. 아휴. 여기에  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대신 나와 동갑인 사촌이 대표로 왔다. 이 여자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만난다. 그런데 왜 이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다른 친척들은 이러나저러나 잘들 살 것이라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넷째 작은 아빠의 가족들은 늘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어릴 때 가장 많이 만났고 친하게 지냈기에 더 그랬다. 작은 엄마의 음식 솜씨는 우리 엄마에 버금가는 맛이었고 툭툭 내뱉는 듯해도 말에 정감이 있으셨다. 우린 잘난 친척들 속에서 가난한 우리끼리의 연대를 하며 서러움을 버텨내곤 했던 동지였다. 그런 사촌이 온 것이다. 옛 생각에, 또 언제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평소와 다르게 나름 나도 흥분해서는 신나 했다.

 이렇게 많은 친척들이 다 모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2세대까지 총출동했으니 뭔지 모르게 뭉클함이 있었다. 1세대 어른들도 많이 늙으셨고 여기저기 몸이 아픈 분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애틋함과 어릴 때의 추억을 소환한 듯하다. 사촌들끼리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카톡방을 만들자고 난리였다. 어른들은 자꾸 우리 삼 남매에게 미안하다 하신다. 엄마아빠 돌아가시고 돌봐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도 그 마음이 남아 있으신가보다. 어릴 때의 우리를 향한 무심함에 대한 어려움은 아직도 남아 있다만 우리끼리 잘 살아왔고 누구에게 의지하며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도 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니 괜찮다. 

 하지만 이들을, 그리고 우리 삼 남매와 넷째 작은 아빠의 딸을 보며 드는 생각은 가난도 가난이지만 자신감 또한 대를 잇고 있다는 것에 씁쓸함이 있었다. 그렇게 나 나름대로 꾸미고 갔지만 자신감은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시골에 사는 발톱에 때끼고 코흘리개 아이처럼 느껴졌다. 또 나이가 드셨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다들 살아계시지 않은가. 너무나 일찍 돌아가셔 버린 우리 엄마아빠만 빼고.

 그래서 그렇게 엄마아빠가 오지 않은 학예회날의 아이처럼 우린 여전히 이 나이가 되도록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 엄마아빠 보고 싶다. 나도 울 엄마아빠랑 같이 오고 싶다. 언제나 어딜 가나 누가 지켜주지 않는 최전선에 서있는 느낌 아주 지겹다~~!!’     

이렇게 응석이라도 부려보고 싶지만 이제 나는 보호해야 할 누군가가 있는 ‘엄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어야지. 큰집 언니들처럼 꾸미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어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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