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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an May 20. 2023

쿨하지 못해서 만든 비건 냉우동

비건 냉우동과 비건 카츠로 달래는 안 쿨함

표고는 채수 끓일 때 쓴 건데 버리지 말고 고명으로 쓰면 좋다.


날씨가 꽤나 덥다. 3월부터 낮에는 계속 더웠다. 학생들은 그때부터 벌써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에 들어왔다. 에어컨 켜주시면 안 돼요?라는 간절한 말에 나약해졌다. 에어컨을 틀면서 죄책감이 들었다. 쿨하게 켜주고 말면 될 것을 기후 위기 이야기를 괜히 꺼냈다. 


쿨함은 무엇일까? 시시콜콜 작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멋짐 정도일까? 너무 많은 걸 가볍고 쉽게 알 수 있는 요즘 세상에도 쿨해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가끔은 부러웠다. 이렇게 신경 쓸게 많은데, 이렇게 보이는 게 많은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세상인데 어떻게 얽매이지 않는 거지? 혹은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거지? 이런 질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쿨하지 못함의 반증인지라, 어디에다가 물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자꾸자꾸 얽매였다. 정치에 얽매이고, 역사에 얽매이고, 인간관계에 얽매이고, 실패한 사랑에 얽매였다. 사랑의 빈자리를 쓸데없는 만남이나 물건들로 채우는데 얽매이고, 옷에 얽매이고, 돈에 얽매이고, 직업에 얽매이고, 한 학생의 별 뜻 없는 말에 얽매이고, 엄마의 한숨에 얽매이고, 나의 생김새에 얽매이고, 부조리에 얽매이고, 지저쓰... 나에게는 쿨함은커녕 일말의 온전한 자유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얽매이다 보면 박탈감도 화도 자주 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체념하게 되지만, 새로운 주제를 향한 짜증과 분노가 곧 뒤를 잇는다. 또 얽매인다. LET IT GO라는 말, 그냥 흘려보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미울 정도였다. 


이 와중에 지속적인 박탈감과 화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는 기후 위기 문제다.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도저히 쿨해질 수가 없다. 전 세계의 날씨가 이렇게 이상한데, 어떤 사람들은 살 곳을 잃고 목숨을 잃는데, 작물들이 잘 자라나지 못하고, 그건 곧 식량의 문제가 될 거고, 삶의 터전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며, 블라블라... 왜 덥다고, 비가 안 온다고, 비가 많이 온다고 약간의 짜증만 내고, 다시 사람들은 쉽게 이 문제에 쿨해진다. 


이 문제의 책임을 개개인에게 전가할 수 없기에, 짜증은 내서 무엇하나라고 쿨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달래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을 계획한다. 최대한 제철 채소를 이용하는 식단을 짠다. 


그리고 부엌 앞에 선다. 쿨하지 못한 나는 무언가라도 해야 하기에 육수나 해산물 베이스의 냉우동 대신, 채수를 직접 끓여 냉우동을 만든다.


끓기 시작한 채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떤 말을 생각했다. 20살, 나를 이유 없이 참 좋아해 주던 언니의 말이었다. 그때도 나는 끊임없이 앓고, 얽매이고, 무언가에 신경 쓰면서 동시에 그런 자신을 격하게 미워했다. 언니는 그런 나를 붙들고, 따뜻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수잔은 세상에 사랑과 관심이 많아. 그래서 자꾸 앓는 거야."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은 모르겠다. 어쩌면 현재의 내 안에 남은 사랑은 얼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그렇게 자신에게 말해본다. 내 안에 사랑이니 관심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남은 건지 아닌지 분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쳤지만, 세상에 얽매이는 걸 지금까지 포기하진 않았다, 그게 쿨하지 못한 나를 만들었더라도.


나는 비건으로 계속 요리를 한다. 할 수 있는 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소비를 돌아보는 걸 멈추지 않는다. 사랑과 관심이 고갈되기 전까지만이라도 계속 그렇게 얽매일 것이다. 


채수를 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활용도도 높다. 비건으로 끓이는 각종 국과 찌개, 수프에 쓸 수 있고, 차가운 면 요리에 육수 대신 사용해도 좋다. 김치말이 국수 레시피에도 적었지만, 몇 가지 재료- 말린 다시마, 말린 버섯이나 생표고만 있어도 감칠맛이 나고 대파나 양파, 마늘이나 무, 당근이나 호박까지 더할 수 있으면 더 좋다.-를 넣고 끓이면 끝이다. 


*채수 레시피 링크 https://brunch.co.kr/@yourkoreanvegan/9 


냉우동을 만들 계획이니 식히는 게 문제인데, 식힐 시간이 많이 없다면 채수 간을 세게 하고, 센 불에 빠르게 채수를 끓여낸 뒤 찬 물과 얼음을 많이 더하는 지름길도 있다. 



냉우동은 맛있었다. 국간장, 소금, 후추, 식초 살짝, 마스코바도 살짝 넣고 간을 맞췄고 인테이크 비건 카츠는 웬만한 시판 돈가스가 부럽지 않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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