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고 상처받는 소시민들
연말연시를 맞이하다 보니 주변에 지인들을 전화를 통해서 아니면 직접 만나 덕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아는 동생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근황을 알렸습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행사진행을 하던 이 사람이 갑자기 몰려든 관객들에게 깔려 넘어지면서 타박상과 골절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그 충격 때문인지 숨이 가빠지는 공황장애 증세도 왔다고 하며 자신의 신세를 바라보며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가 몸을 다친 부상의 아픔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더 힘들다고 하는 데요.
그는 행사 기획을 하다 보니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화를 참고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를 괴롭히는 것은 행사의 발주를 주는 측에서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그에게 희생과 손해를 요구했고 이를 온전히 그가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호소하더군요. 세상이 많이 맑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고통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편법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아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 사무실을 늘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다 암투병을 하는 남편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사님은 올해 64세 이고 내년까지는 일을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긍정의 말을 했는데 그 여사님은 자신의 형편으로는 70이 넘어서 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프고 생계를 위해 자신이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여사님의 형편이 딱하다고 보기에는 너무 일상적으로 많이 보는 우리 이웃들의 형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왜 아프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남편이 병이 걸린 것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58세라고 합니다. 젊었을 무렵 남편은 화물차를 가지고 운수업을 했던 모양인데 자신이 고용된 회사 내지는 계약관계에 있는 사람 들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커미션을 요구받았다고 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계속 요구하니 그런 사회생활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너무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접어들면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미풍양속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명목으로 인내의 한계치를 시험하는 못된 일들이 아직도 목격이 됩니다.
저는 앞에서 언급한 기획사 하는 아는 동생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그냥 손해를 감내하고 깨끗하게 잊던가 아니면 약속을 이행하라고 하며 약속된 돈을 지급하라고 압박을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선택지는 일이 여기까지 온 데는 동생의 잘못도 있으니 감내하고 교훈을 삼으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고
두 번째 원칙적으로 대응해서 돈을 받아 내라는 말은 동생 자신이 공황장애까지 오는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까지 참지 말고 원리원칙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갑질에 당하고 자신이 병까지 앓아가면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한 이 두 사례는 내가 직접 겪지 않아서 일뿐이지 내 가족 내지는 이 글을 읽는 누구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역사책 민란의 시대라는 책을 보니 우리 조상들은 삼정의 문란이라는 각종 부조리에 처음엔 참다가 고변을 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봉기를 했습니다.
삼정이란 토지에 매기는 조세인 전정 지방재정을 보충하는 환곡, 군사경비로 거두는 군포를 말하는 데 이 조세를 거둘 때 대상도 아닌 어린이와 노인 때로는 죽은 사람에 까지 매고 환곡을 줄 때는 적게 주고받을 때는 규정보다 많이 거두어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악랄한 부패현상이었습니다.
1862년에는 임술민란이라고 해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경상도 20 군현 전라도 37 군현 충청도 12 군현으로 확대되었는데 사실상 경제적인 부패가 외세 침입과 더불어 조선을 망하게 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이 조선 시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서양 어디에서건 부패는 많았고 각종 법률로 보호해주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고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폭력은 쓸 수 없고 부조리한 문제를 덮고 넘길 때 마음의 자세 그리고 태도입니다.
부당함을 후회로 계속 안고 가는 순간 온전히 자기가 평생 껴안고 가야 합니다. 가해자는 그런 일이 었었는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 한 사람은 평상시에도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병원에서 약을 타 먹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에 있는 직장에서 가족들 생각에 너무 화를 참고 해소시키지 않은 때문이겠죠. 누구나 직장 생활하면서 잠결에서도 가위눌림을 당하며 힘들게 버티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직장에서 잘 버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당시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고 그 문제를 내 안에서 어떻게 의미 부여했는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회피하는 것은 이익이 되기보다는 피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부딪혀서 투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제를 끌어안고 해답없이 세월만 보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해자면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라면 당당하게 권한을 행사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냥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좋은 해답이라면 깔끔하게 잊어야 진정한 승리자라고 할수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에게 좋은 유전자를 타고 받기도 했지만 5천 년 굴곡의 삶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지혜도 물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책으로 때로는 구전으로 아니면 전통문화와 가풍을 접할 수가 있는 것이죠.
새해에 나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분노와 화는 훌훌 털어버리고 건전한 계획과 결심을 설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