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대리 Aug 24. 2023

1989년 여름, 굿모닝! 대통령

80~90년대 서울 사대문 안 개봉관에 대한 추억 1

1998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대를 연 ‘CGV 강변 11’이 개점했을 때, 그보다 수년 전 미국 여행 때 갔었던 대형쇼핑몰 안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생기는구나 적잖이 흥분했었다. 이후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씨네큐 등 멀티플렉스 체인점이 전국 상영관의 절대 수치를 점유함은 물론, 기술 발달에 따라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편한 날짜와 시간대에 선호하는 상영관과 좌석 위치까지 골라서 예매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상영포맷의 다양화로도 이어져, 아이맥스, 돌비 시네마, 4DX, 스크린 X 등 다양한 상영포맷으로 관객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졌으니, 영화를 취미로 즐기기에 더없이 편리한 세상이 온 것이다.


그렇게 기술이 발달해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극장마다 마련한 전용 앱을 통해 요즘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 다음 주엔 어떤 새 영화가 개봉하는지, 이 영화는 볼까 말까 망설여질 때, 먼저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바쁜 손놀림으로 이것저것 들여다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떤 신기술과 신문물이 세상에 나와 극장 관람문화에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더 편리해지기는 하겠지. 그런데 휘황찬란하고, 세련되게 꾸민 요즘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하는 편리한 관람환경에 만족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아주 약간 허전하다. 


‘라떼’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해 보니, 거대한 그림 간판이 걸린 서울 사대문 안 개봉관 건물만 바라봐도 가슴이 웅장해지던 그 벅찬 감동을 요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태어나서 본 첫 번째 영화관 간판에 대한 기억은, 시드니 셸던 원작을 영화화한 <깊은 밤 깊은 곳에 The Other Side of Midnight(1977)>의 간판이었다. 어른들 틈에 서서, 어른들의 대화가 무엇인지는 전혀 관심도 없이 거대한 간판에 그려진 외국 배우들의 얼굴과 ‘깊은 밤 깊은 곳에’라는 제목이 쓰인 극장 간판을 너무도 유심히 바라본 기억이 남아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장소는 을지로 3가에 있었던 명보극장이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 영화관의 간판을 바라보던 묘한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실 영화관에 대한 첫 기억은 저것보다 조금 더 이른 때였다. ‘봄에도 우린 겨울을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봄 속에도 남아있다고’ 가수 김세화와 이영식의 듀엣곡 “겨울 이야기”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던 극장 안의 울림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종로 3가 단성사에서 개봉한 장미희 배우 주연의 <겨울 여자(1977)>였다. 하지만, 영화 <겨울 여자>를 극장에서 봤다고 말하기엔 너무 민망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기에, 그냥 집안 어른의 손을 잡고 단성사라는 이름의 영화관에 구경하러 갔었다,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하겠다.



미취학 아동이던 어린 내게 영화관이란 장소는, 컴컴한 실내에서 눈으로 보는 시각적 체험과 귀로 듣는 청각적 체험이 합쳐진, 굉장히 고급스럽고 비일상적이면서 복합적인 문화 체험을 하는 곳으로 여겨졌고, 배우들의 얼굴과 영화 제목이 그려진 간판을 구경할 수 있는 일종의 미술관과도 같았다. 아직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눈뜨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지만, 차를 타고 시내 나들이를 가던 길에 지금은 없어진 청계천 고가도로를 지날 때마다 차창 밖으로 보였던 을지로 입구의 중앙극장이나 청계천에 있던 아세아극장의 간판만 봐도 흥분하던 때가 있었다. 간판에 그려진 영화들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가도로 (특히 내리막 구간)에서 차가 미끄러져 내려갈 때의 스릴과 영화관 간판이 보일 때 시각적 쾌감이 합쳐진, 당시 나에게는 최고로 짜릿한 엔터테인먼트였고, 어른들을 따라 시내에 나갈 때면 나는 속으로 꼭 청계천 고가도로를 지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드디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기껏 해봐야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당시 20대셨던 외삼촌을 조르고 졸라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에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을 보러 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 영화관 건물 오른쪽에 세워진 서브 간판이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을 때 드디어 나를 반기던 메인 간판의 웅장한 위용이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영화관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이제 나도 당당하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 만큼 자랐다며 혼자 들떴던 기분이 아직도 생각난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주제가 “난 너에게”는 당시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골든 컵을 받을 만큼 크게 히트했고, 영화음악이 담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LP를 사서 듣고 또 들으며 영화에서 받은 감흥을 영화관 밖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을 관람하던 날 받았던 감흥 때문인지, 그 이후 서울 사대문 안 메인 개봉관 여러 곳 중에서 피카디리 극장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1989년 추석 특선작이었던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1988)>을 보며 받았던 충격도, <부시맨 2(1988)>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었던 1989년 크리스마스 시즌도, 한석규, 전도연 배우 주연의 <접속(1997)>을 보고 나온 직후, 마침 영화의 엔딩에 나왔던 피카디리 극장 광장을 보며 느꼈던 묘한 감흥 모두 피카디리 극장에서 느꼈던 감동과 추억의 한 페이지이다.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가 피카디리에서 개봉했던 날, 광장을 꽉 채운 인파 속에서 반갑게 인사하던 최진실 배우의 모습도 기억난다. 물론 나는 그때 그 인파 속에 파묻혀 간이무대에 선 최진실 배우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요즘의 기준으로 보자면 경호가 제대로 되기나 했을까 싶은 다소 우악스러운 광경이긴 했지만, 그땐 그때대로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또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당시 70mm 초대형 스크린으로 할리우드 대작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영화관은 충무로 대한극장과 을지로 3가 명보극장 두 군데였는데, 영화관 건물에서부터 압도감을 주는 쪽은 단연 대한극장이었다. 특히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1988)>나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1990)>과 같은 아카데미를 휩쓴 대작 영화의 개봉관으로도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1989년 여름방학 시즌 개봉한 <엑설런트 어드벤처 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1989)>에 얽힌 분통 터졌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중3이었던 나는 친구 K와 아침 일찍 첫 회차가 시작하기 훨씬 전에 충무로로 향했다. 목표는 단 하나, 선착순 200명 안에 들어 티셔츠를 받겠다는 것뿐이었으나, 충무로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우리의 다짐이 너무 터무니없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꽤 이른 시각이었지만, 대한극장 쪽에서 시작된 줄이 길게 형성되어, 이미 티셔츠를 받을 수 있는 2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하지만 팸플릿을 받을 수 있는 나머지 선착순 200명 안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K와 나는 기왕 아침 일찍부터 온 건데, 티셔츠는 못 받더라도 팸플릿이라도 받자며 줄 맨 뒤로 가서 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뒤에 계속 늘어서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해하던 동시에, 맨 앞에서부터 숫자를 세면서 그래도 400등 안에는 들지 않겠냐며 느긋한 척했지만, 속으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줄 맨 앞, 매표소 쪽에 뭔가 술렁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드디어 입장권 판매를 시작했나 보다, 싶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삼삼오오 서 있던 줄은 어느새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키도 덩치도 크지 않았던 나와 친구 K는 몰려드는 인파에 밀려 점점 뒤로 밀려갔고, 선착순 400명 안에 들어가 팸플릿이라도 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조금씩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렸다. 선착순은커녕 조조 회차 입장권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럴 수가! 이러려고 토요일 아침 늦잠까지 포기하고 서둘렀던 게 아닌데!


하지만 보기보다 포기가 빠른 나는 재빨리 친구 K를 설득하여, 대한극장에서 걸어가면 얼마 안 걸리는 명보극장에서 같은 날 개봉한 <굿모닝! 대통령(1989)>을 보러 가자고 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이규형 감독이 연출하고, ‘담다디’ 이상은이 주연했으니, <엑설런트 어드벤처>를 대체하는 차선책으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실제 몇 분 걸리지 않아 명보극장 앞에 도착한 우리는, 조금 전 대한극장에서 봤던 장사진과는 정반대의 텅텅 빈 영화관 앞에서 줄도 거의 서지 않고, 아주 쉽게 입장권을 구매했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선착순 100명에게 준다는 티셔츠도 받았던 것 같다. 그날 이후, 친구 K와 내겐 암묵의 금칙어가 생성되었다. 그날 받은 티셔츠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그날 봤던 영화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 이 글은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에서 2022년 10월 출간한《영화간판도감 Painted Cinema Billboards》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 illustrated by 조대리(간판 사진 출처-영화간판도감 published by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작가의 이전글 저 깊고 푸른 밤을 날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