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무명 시절은 겪었을지라도, 평생 월급 요정으로 살아본 적 없었을 톰 크루즈가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를 멋지게 연기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 Jerry Maguire(1996)>에서 해고당하는 장면에서 "누구 나랑 같이 갈 사람? Who's coming with me?"을 애타게 찾지만 방금 전까지 동료라며 시시덕거리던 이들이 하나같이 외면한다. 물론 도로시가 함께 따라나서준 덕분에 그나마 최악은 면하기는 했지만.
조대리가 그동안 회사에서 스쳐지나 온 수십 수백 명의 동료 선후배 가운데, 조대리 자신을 포기해 '내가 관두기만 해 봐라, 회사 일이 확 멈춰버릴 테니'라고 한 번 이상쯤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갓 입사한 초년생부터 n 년 차가 쌓인 꽤 높은 직급을 불문하고.
물론 그 생각이 불현듯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다. 회사와의 갈등이 불거지지 않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는지 모르지만, "내가 이 회사 관두는 그날이 회사 업무가 몽땅 멈추는 날이야"라고 호기롭게 외치던 이를 곁에서 보며,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외쳐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마치 그가 만천하에 고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놈의 자긍심에 찬물을 끼얹게 될까 봐서였다.
사실 '가스라이팅'의 개념을 굳이 끌어다대지 않더라도,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부려먹을 때엔 그 자리를 대체할 대체재가 없다고 투덜대는 것이 사측이 내세우는 어쭙잖은 논리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제아무리 A가 출중한 인재라고 하더라도, A의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몇 트럭도 넘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직종의 어떤 업무가 든 간에 말이다.
제리 맥과이어가 해고당한 결정적 요인이었던 제안서가 사측을 화나게 만들었고, 제리를 단칼에 해고당하게 했으니, 그 순간 누가 제리와 함께 회사를 박차고 나가려 했겠는가. 반대로, 만약 제리의 제안서가 크게 각광받았다면 상황은 아마 정반대였을 것이다.
'누가 나와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지 주변을 둘러봐야 아무도 없을 것은 자명하고, 반대로 나 자신이 제리 맥과이어와 같은 상황에 처한 동료를 따라나갈 용기가 없다고 자책할 일도 아니다.
그저 이것만 기억하자.
회사는 개인 하나가 관둔다고 해서 안 돌아갈 리도 없고, 누구든 빈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는 금세 메워진다. 후임자가 전임자의 업력이나 스타일과 다를 테니 당장은 삐걱댈지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럭저럭 업무를 진행해 나갈 것이다.
한 마디로 착각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