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Chat GPT의 등장을 매트리스 영화 속 AI처럼 보던 시각이 이제는 많이 줄어든 듯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하면 할수록 기존 축적된 정보를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Chat GPT의 모습과 구동방식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생성형 AI 등장에 세상은 왜 떠들썩할까요?
정말 세상을 바꾸고 도구의 혁명으로 이어지게 할까요?
이럴 때 이해와 예측을 위해 좋은 방법은 역사죠.
1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인류의 발명은 증기기관입니다.
이 증기기관으로 인해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증기기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은 자본가가 됐고, 국가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열강이 됐다는 점입니다.
반면, 이 변화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자본가의 노동자가 됐고, 이들 열강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2차 산업혁명은 철강, 화학, 자동차, 전기 등의 기술혁신을 말합니다.
이 혁명의 주인공은 바로 1차 산업혁명에 합류 못한 후발주자 미국과 독일입니다.
이 두 국가는 다양한 기술혁신을 주도했습니다.
후발주자에게 좋은 점은 따라 잡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선발주자인 영국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면서 결국 20세기 초에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 때, 위인전의 단골 주인공인 전기의 아버지인 에디슨, 정유산업을 태동시킨 록펠러, 포드 자동차를 대량 양산체제로 만들어 낸 헨리 포드가 등장합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 인터넷, 인공위성 등의 정보통신 기술에 의해 촉진됩니다.
이 정보통신 기술의 중심에 인터넷, 컴퓨터, 이동통신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가 핵전쟁 상황에서도 이용 가능한 네트워크를 연구한 게 시초입니다. 기술적으로 개발된 인터넷이 1986년에 NSFnet으로 등장하면서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으로 확대된 겁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때까지도 인터넷을 제대로 이용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1993년 모자이크(Mosaic)가 출시되었고, 그 다음 해에 야후(Yahoo)가 등장했고, 이후 넷스케이프(Netscape)가 시장에 나타납니다. 이 때의 브라우저는 신기함에 사용하던 수준이었다면, 이제 구글과 네이버 등이 등장하면서 사용자의 편의성이 반영된 진정한 모습으로 시장을 지배하게 되죠.
컴퓨터는 또 어떤가요.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세상에 나온 것은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PC라는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1970년대에 애플, IBM 등이 Personal Computer (일명 PC)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혁신이 무서운 점은 일단 시작되면 거기서 돈 냄새를 맡는 경쟁자들이 몰려 들면서 경쟁이 촉발되고, 해당 산업의 팽창 속도는 예상하기 어려울정도로 엄청나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등장한 컴퓨터는 인터넷과 연결되고, 노트북으로 연결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됩니다.
이동통신은 사람들이 이동하면서도 서로 연락할 수 있게 하는 통신체계입니다.
처음에는 기지국이 촘촘이 설치되지 않아서 어디는 통신이 된다, 어디 가면 통신이 안된다를 갖고 경쟁자간 광고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차로 이동하면 통신이 되지 않아서, 차가 멈추면 그제서야 통화하고, 다시 출발하면 전화 끊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동통신서비스도 CDMA, GSM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CDMA의 어머니는 미국의 퀄컴입니다. 반면, GSM은 유럽 통신표준기구가 어머니입니다.
그러다가, 애플의 아이폰이 세상에 나옵니다.
청바지 차림에 검은색 티셔츠 차림, 안경을 낀 스티브 잡스가 한 손에 아이폰을 들고 세상을 향해 그 첫 등장을 알릴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이동통신과 단말기가 노트북과 결합된 이 작은 기기에 열광하면서 세상은 다시 한번 급속한 변화를 만들어 냈죠.
지금 우리가 3차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 4차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정의야 우리 아이들 내지 그 후손들이 지금 세상을 다시 바라보면서 정의해 줄 내용이구요.
중요한 것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만한 혁신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 혁신에 동참한 사람은 주인공이 되었고, 그저 바라만 본 사람은 그렇게 바뀐 세상의 흐름 속에서 소비자로, 노동자로 자리매김 했다는 점이죠.
개인도 그렇고, 국가 역시 그렇습니다.
예외없이 이런 변화를 바라만 보고 있느냐, 그런 변화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주도했느냐가 개인과 국가의 미래를 바꿔왔다는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역사를 보면 미국은 이런 혁신을 주도하면서 2차, 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었고, 지금 세상의 패권국가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패권국가로 남아 있기 위해 세상을 바꿀 혁신을 본인들이 여전히 주도적으로 내놓는 노력은 여전합니다.
미국 정부가 예상한 미래 혁신의 주인공은 전기차, 반도체, 밧데리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예상과 시장은 매번 보면 다르게 움직입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처음 브라우저로 수줍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자이크(Mosaic)처럼, Chat GPT는 AI시대에 제대로 된 첫 주인공입니다.
생성형 AI의 경쟁은 이제 막 시작한 셈입니다.
지금의 혁명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낼지 아무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역사는 분명하게 한 가지를 얘기합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이 변화에 동참하면 주인공이 될 것이고, 변화를 그저 바라본다면 2류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점 말이죠.
Open AI는 바로 Chat GPT를 만든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CEO 샘 앨트먼 (Sam Altman)을 이해하는 것은 지금 AI 혁명의 현 주소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샘 앨트먼은 유대인으로 스탠퍼드대학에서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다 중퇴하고 19세에 위치기반 소셜 네트워킹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 Loopt를 만들면서 실리콘밸리에 본인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샘 앨트먼이 2005년에 Loopt를 공동창업하고 2012년 43백만불에 매각할 때까지 8년이 필요했습니다. 어찌보면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하고, Loopt 설립 후 매각까지의 경험을 한 게 그 이후 샘 앨트먼 이력에 밑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샘 앨트먼은 Y combinator에 2011년부터 파트너로 활동하다가 2014년에 창립자인 폴 그레이엄의 후임으로 Y combinator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Chat GPT를 만든 Open AI의 CEO라는 점만 보면, 뭔가 연구적 업적을 엄청나게 축적하다 이를 바탕으로 Chat GPT를 개발했을 것 같은데 실제 커리어의 모습은 개발자와 스타트업 육성가의 두 가지 모습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Y combinator는 Forbes가 2012년에 최고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및 지원기업이라고 평가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만 대만 알 수 있는 수많은 스타트업에 든든한 벤쳐 캐피탈 역할을 하는 기업입니다.
샘 앨트먼은 Y combinator 대표로 선임된 이후 Airbnb, Dropbox, Stripe 등 2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키워냅니다. Y combinator는 현 기업가치를 100억 달러, 원화로 약 13조 규모로 평가하는 캐피탈입니다.
샘 앨트먼은 바로 이 Y combinator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고르고, 육성하면서 어떤 스타트업이 성공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몸으로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는 2015년에 드디어 Open AI를 설립합니다.
인류에 이익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겠다는 모토로 샘 앨트먼, 일론 머스크 등이 참여하여 10억불 자금으로 시작하면서, 인공지능의 발전을 인류의 이익에 맞게 하고, 인공지능의 위험은 최소화 해야 한다는 목표이다 보니 Open AI는 처음에는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시작합니다.
둘이 밝힌 Open AI 시작의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인 인공일반지능(AGI)이나 인공초지능(ASI)이 등장할 경우 인류의 존재와 가치를 보호하고, 인공지능의 힘을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힙니다.
그래서, Open AI는 인공지능 정보를 오픈소스화 하여 집단지성의 힘을 통해 짧은 기간 급속한 발전을 이뤄냅니다.
하지만, 일런 머스크는 2018년 Open AI 이사회에서 물러납니다.
일런 머스크의 이사회 사임 이유는,
테슬라의 인공지능 연구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갈등발생 소지를 피해야 한다는 점과,
테슬라와 스페이스X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점
두 가지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Open AI가 유한책임회사로 전환될 때 Open AI의 설립목표였던 가치를 깨고, 이익회사로 전환되었다고 엄청난 비난을 쏟아 냅니다.
여기까지를 보면, 샘 앨트먼의 이력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Y combinator의 창업자인 폴 그레이엄과의 인연입니다.
샘 앨트먼이 Loopt를 설립하고 매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역량을 Y combinator의 공동설립자인 폴 그레이엄이 눈여겨 보고 그가 사임하면서, 후임 대표이사로 샘 앨트먼을 지명한 게 어떻게 보면 샘 앨트먼이 Open AI를 설립하고,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인 같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살펴보다 보면, 이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인생의 멘토와 같습니다.
폴 그레이엄은 이력이 특이합니다. 코넬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computer science 석사를 한 이후 다시 하버드대에서 철학 박사를 수료합니다.
뭐랄까..
그는 computer science 전공자는 맞지만, 철학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인물들은 참 재미있습니다.
폴 그레이엄은 2005년 Y combinator 설립에 참여했고, 2014년에는 Y combinator에서 완전히 손을 뗍니다.
즉, 폴 그레이엄이 Y combinator에서 2014년 완전히 은퇴한 다음 해인 2015년에 샘 앨트먼도 Open AI를 설립하면서 Y combinator를 떠나 새롭게 인공지능 영역에 도전하게 되는 겁니다.
폴 그레이엄 덕분에 Y combinator에서 대표이사로 함께 했고, 폴 그레이엄이 은퇴하면서, 샘 앨트먼도 새롭게 Open AI 사업을 시작한 셈인 겁니다.
샘 앨트먼이 Open AI를 2015년에 설립했지만, 그간 Y combinator 대표로 쌓은 인맥과 역량을 통해 이 짧은 기간에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게 만들어 갑니다.
처음에 일런 머스크와 비영리 기관으로 출발했지만, 2019년에 비영리기관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 것은 신의 한 수입니다.
비록 나중에 일런 머스크의 비난을 한껏 받았지만, 이 전환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0억 달러의 투자를 받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십을 2020년 체결하면서 Chat GPT를 상용화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었고, 추가적인 투자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Chat GPT 3.5가 시장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생성형AI의 신세계에 경악하게 되죠.
올해 추가로 안정화 버젼인 Chat GPT 4.0이 출시되고, 구글도 Bard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생성형 AI 경쟁이 진행 중입니다.
2023년 6월 지금 샘 앨트먼은 세계를 다니면서 AI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주요 리더들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이미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리시 수낙 영국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대통령 등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AI의 혁신과 규제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85년생으로 아직 30대인 그에게서 시작한 AI 혁신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너무 기대됩니다.
[사진 출처 : Freepik]
[References]
https://en.wikipedia.org/wiki/Sam_Altman
https://en.wikipedia.org/wiki/Paul_Graham_(progra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