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복지부 장관이 있다.

말하면 들어주는 지니

by 봄희야

"마스크 다 떨어졌어"


아이들이 아빠를 찾는다. KF80 마스크가 수납장에 넉넉한데도 굳이,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의 마스크를 주문해달란다. 핸드폰 필름, 케이스, 화장품, 머리띠, 운동화 끈 노트, 셔틀콕, 잠옷까지. 그들의 '필요'는 끝이 없다.

이 모든 주문의 대상은 아빠다.


남편은 발령이 잦은 직장에서 20년째 근무 중이다. 예고 없이 발령이 떨어지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떠났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함께 이사를 다녔고,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남편 혼자 떠났다. 2년 주기의 발려지에서 그는, 여행 가방과 컴퓨터 본체를 챙겨 떠났다.

우리는 격주 부부였다.


아빠가 없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내가 짠 시간표대로 움직였다. 기상, 식사, 학원, 취침까지 질서 있는 일사잉 우리를 지켰다. 그리고 2주에 한 번, 아빠가 돌아오는 날, 아이들은 잠을 미루고, 아빠는 놓친 시간만큼 애를 써서 채웠다. 집은 온기로 가득했고, 나도 아이들도 마침내 완전체가 되었다.

그 날은 TV가 켜지고, 평소 가지 않던 마트를 가고, 참았던 간식을 사 먹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그간 나에게 혼난 이야기를 쏟아내고, 남편은 조용히 다정하게 들어줬다. 아이들에겐 아빠는 램프 속 지니였다.

다시 조각이 나면, 나는 쪼아맨 마음을 단단히 죄었다. 일상의 규칙이 다시 작동됐다. 나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강요하고,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악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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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경제부 장관, 아빠는 복지부 장관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며 지켜야 할 규칙은 더 늘어났다. 아이들은 학교 앞 편의점 간식의 유혹과 싸워야했다. 정해진 용돈으로만 간식을 살 수 있었다. 편의점은 필요할 때만 가는 곳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아빠가 오면 달라졌다. 편의점은 다시 놀이터가 되고, 쿠팡은 매일 울리는 종소리가 되었다.

"아빠랑 매일 살았으면 좋겠어"

남편이 왜냐고 묻자,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는 혼마 내지만, 아빠는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야"

나는 말했다.

"아빠는 우리 집 복지부 장관이야, 너희가 필요한 걸 주고, 좋아하는 것도 주고, 그래서 열심히 일하시는거야"

엄마는 경제부 장관이야, 마구 쓰다간, 아플 때 병원도 못 가고 배우고 싶은 것도 못 하니깐"


파산 신청하는 지니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복지부 장관이다.

다만 요즘들어 자주 파산 신청을 한다.

아이들의 '필요'는 초콜릿과 젤리를 지나, 액세서리와 옷, 핸드폰 액정필림까지 확장되었다. 남편은 몇년째 변함없는 용돈을 받고 있지만 아이들의 요청은 점점 커졌다. 종종한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에게 SOS를 친다.

아이들은 안다. 필요한 게 있을 땐, 아빠에게 먼저 말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남편은 나보다 아이들의 요즘 관심사와 고민을 더 잘 안다. 수용해주고 들어주는 아빠의 정서적 복지는 아이들에게 진한 사랑으로 남을 것이다.

파산한 복지부 장관의 뒷수습은 경제부 장관의 몫.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원만한 예산 협을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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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경제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봄희야'입니다.

돈과 일상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균형을 함께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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