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큰 키에 붉은 머리의 켈트인이 정착했던 나라다. 로마에서 멀었던 덕분에 1세기 영국까지 쳐들어 왔던 로마제국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아일랜드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5세기에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여 가톨릭국가가 되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후일 영국 성공회와 충돌하는 처절한 신, 구 종교전쟁의 불씨가 될 줄이야!
8세기말 바이킹족이 침공하여 수도인 더블린의 기초를 세웠고 이후 12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거의 800년을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수 차례 봉기와 독립운동은 일어났으나 대영제국은 무력으로 다 진압하였다.
와중에 1845년 시작된 그 유명한 ‘potato famine’, 5년에 걸친 감자 대기근으로 인구 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어갔다.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모든 농작물을 수탈해 갔으나 감자는 가축용 사료로 여기고 남겨두었는데 긴 장마로 인한 감자잎마름병이 전국을 덮치면서그 감자마저 못 먹게 된 것이다. 해서 아일랜드인들은 굶어서 죽거나 아니면 대거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당시 영국은 굶어 죽어도 싼 아이리시 놈들이라며 적극 도우려 나서지 않았고 몇 종교단체만 멀건 수프를 제공했다 한다.
결국 아일랜드는 192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북쪽이 남겨진 상태로 이뤄진 불완전한 독립으로서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남긴 것이었다. 영국은 북부아일랜드를 끝까지 고수하며 영국 자치령으로 남겨두었고 아일랜드 내에서는 그 조약에 찬성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로 갈려서 내전이 일어났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벗어나면서 남북이 공동으로 한 나라냐 아님 반쪽 자리 해방이냐를 두고 갈리던 시절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와 관련한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있다. 우리나라의 ‘태극기 휘날리며’다. 두 영화 다 형제가 서로 총을 겨누게도 되는 말도 안되는 분단과 분열이 주는 아픔이다. 그 아픔에 대한 공감과 아일랜드 역사에 대한 통찰을 주는 영화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킬리언 머피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유튜브 짧은 동영상이라도 한번 볼 만하다.
아일랜드는 감자대기근으로 인구의 25%가 희생됐다. 당시 처절했던 모습을 재현한 더블린항구의 청동군상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영국령 지역이다. 북아일랜드의 수도는 벨파스트인데 공업도시다. 북쪽 얼스터 지방은 원래 아일랜드 독립세력이 가장 강했다. 영국은 그런 아일랜드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북부인 얼스터 지방에 신교도들을 이주시켰고 점차 북쪽의 저항세력이 전투에 패하고 해외로 도주하자 영국은 이 북쪽 지방을 산업단지로 키워서 그들에게 우호적인 친영지역으로 만들었다.
해서 공업도시인 벨파스트 주민인 소수의 영국계 신교도 부자들과 다수인 구교도 아일랜드 노동자들 사이의 알력과 충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2013년 그곳에 갔을 때 택시로 시내 투어를 하면서 기사님께 많은 질문을 했다. 건물 벽에는 무기를 든 IRA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서로 간에 화염병이 오가는 높은 담장과, 도로엔 주말에만 통행이 허용되게 하는 통행금지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북아일랜드의 폭력과 테러가 발생하는 곳이 바로 그곳 벨파스트였다. 한 도시에서 이 쪽의 영웅이 저 쪽의 적이 될 수 있다니!! 정말 역사와 정치적 허구와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씁쓸했다. 지금은 좀 더 평화가 안착되었기를 바라본다.
그때 택시 기사분께 ‘만약 이 도시에서 가톨릭 처녀와 신교청년이 사랑을 하게 되면 어디에서 만나야 하냐’고 물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라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아일랜드 문화는 켈트족의 신화와 전설, 음악, 문학 등이 풍부하다. 그리고 오랜 지배의 슬픈 역사 때문 인 지 유난히 포크 송이 풍부하고 발달했다. 송년음악의 멜로디로도 친숙한 구슬픈 곡조의 ‘대니 보이’도 아일랜드 민요다. 아일랜드는 또한 문학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다.
남자들이 전쟁을 하며 죽고 죽이는동안 아들과 남편을 잃었던 것은 여인네들이다. 그 여인들의 비통함과 애절함이 대니보이 노래에 묻어있다 ㅠㅜ
어쨌든 나는 2013년 11월 더블린에서 한 달 영어교사 연수를 하면서 이 나라를 느끼고 더 깊이 알아가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기 전부터 왠지 끌리는 호감을 가진 나라였는데 실제 가서 그들을 만나면서 역시 작지만 강한 나라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이나 지금이나 강대국에 에워쌓여 강인해진 우리와 동병상련과 동류의식이랄까 그런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영어수업에서 만난 그곳의 교사들과 직원들, 홈스테이분들이나 음악 하는 사람들 모두 그곳 사람들은 자부심과 함께 정말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다소 다혈질인 기질도 우리와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아래는 당시 더블린 생활을 기록해 두었던 개인일지에서 가져왔다.
한 주가 정말 눈 깜짝할 새로 휙 지나갔다. 홈 스테이가정과 수업하는 장소가 버스로 4~50분 걸리는 데다 버스 내려서도 바삐 걸어가야 하니 아침 시간이 타이트하면서도 분주하다.
11월 초겨울이니 아침 일찍 나서면 아직 어둑한 새벽이다. 게다가 안개가 어슴푸레 끼여서 전형적인 북유럽 날씨 같다.
새로운 곳, 낯선 환경에서 매일 주어지는 과제가 있어 어제와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매일이다. 그러니 적응과 배움에 적지 않은 텐션과 에너지 집중이 요구된다. 그래도 배우는 것은 즐거움이기에 ㅎㅎ 하면서 쫓아갈 뿐이다.
더블린 시내 한가운데 있는 Trinity College는 역사와 유래가 깊다. 일단 규모도 큰 데다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해서 초록색 운동장과 몇 백년된 건물로 웅장하다. 이 나라 최고 브레인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운 좋게 수업 받는 IH(International House)랑 가까워 매일 트리니티 대학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니 너무 좋다. 음식이 다 맛있고 건강식인데다 내 입에 잘 맞았다.
더블린이 수도인데도 초록 공간이 많고 내가 머무는 교외 주택가도 초록잔디 천지니 왜 이 나라 국기에 녹색이 들어가고 녹색나라로 불리는 지 알겠다.(찾아보니 국기에 초록색은 성 패트릭이 삼위일체를 강조하며 들고 다닌 세 잎 클로버 녹색의 상징이란다)
이렇게 겨울에도 계속 녹색이 살아있는 것을 신기해하니 여름 건기에만 살짝 옐로우가 강한 거 외엔 아일랜드는 사시사철 녹색으로 푸르다고 한다.
어제 주말 처음으로 나가 본 말라하이드 성이랑 홈스테이 할머니모습과 도시공원 그리고 트리니티 칼리지등 사진을 몇 장 올린다.
트리니티 대학과 식당 감자요리 ~ 나는 원래 감자를 좋아하니 맛있게 먹었다. 홈스테이 집주인 할머니 자존감이 뿜뿜하신 여장부 타입이셨다.
늦가을 풍경이 고즈넉하니 좋았다. 트리니티 칼리지
오래 된 트리니티 칼리지 입구문
모헤어 절벽
내 평생 비를 맞고 온 종일 쏘다닌 적은 없는데 이번 주말여행은 그런 일상을 벗어난 체험을 하게 됐다. 빗 속 우연에 가려 모헤어 절벽은 못 봤지만 11월 우기의 전형적 날씨 속에 대서양 바다를 마주했다. 안개에 가린 절벽을 보면서 갑자기 안개의 몽환적 분위기 탓일까? 추락하는 것은 아름답다?날개를 달고 사뿐히 바다로 뛰어 내리는 상상을 하고 있던 나였다.
8 킬로가 넘는 해변에 200 미터 높이의 절벽을 내려다보며 나는 '아 드디어 내가 대서양에 왔다'를 외치며 빗 속에 바다를 만끽했다.
피쉬 앤 칩스 본 고장 백년 원조집에서 대구 한 마리 통으로 튀긴 것과 두껍게 썰어 일품인 감자 튀김을 춥고 배 고프던 터라 허겁지겁 먹었다. 함께 마시는 핫 블랙 티 홍차가 비와 안개에 젖어 솜뭉치가 된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기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피시 앤 칩스와 비 안개에 가린 몽환적인 모헤어 절벽
모헤어가 안 보여 그곳에 전시된 사진을 찍었다. 원조 식당 창문에 장식그림이 이뻐서 가져왔다.
Taste of Korea 가 성황리에 잘 끝났다.
더블린 IH(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우리 교사팀은 매일 영어수업을 듣거나 아니면 수업방식을 배우기 위해 다른 영어수업참관을 했다. IH가 워낙 다국적 학생들이 모이는 어학센타다 보니 한국문화 소개하는 시간을 해 달라는요청을 해 왔다. 처음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좋은 기회이긴 하나 내가 교사팀 리더이다 보니 행사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뭐 어쩔? 우리에게 온 기회니 이 참에 한국도 알리고 우리 교사들 존재감도 알려야겠다 싶어 수락했다.
일단 더블린 한국식당에 customized 고객맞춤형 김치와 한국음식을 주문해 놓고 동료샘들께는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게 하는 한 가지씩 미션을 주었다. 그리고 한국의 밤 시작을 아리랑을 소개하면서 시작을했다
음식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았다. 먹고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며 젓가락 사용법이나 윷놀이, 제기차기, 공기놀이 등을 준비해서 같이 놀이하면서 한국을 느껴보도록 했다.
그리고 K pop소개 코너랑 오리엔탈 조디악인 12띠설명등을 부스별로 마련해서 돌아보면서 한국문화를 조금 맛 보도록 하는 시간이 되게 했다.
오후 네 시면 벌써 밖이 컴컴해지니 다들 수업 마치고 평소엔 집에 가기 바쁜 시간인데도 이 날은 최다 참석율에 모임후 갈 생각도 안 하고 다들 머물러 놀고 있었다.
그러니 더블린 IH에서도국제학생들이 보이는 높은 관심도가 기대이상이라며 빅 스마일~~^~^*로 좋아하고 동료영어샘들도 하고나니 정말 하길 잘 했다는 생각과 기분좋은 후련함을 느낀다고 했다.
나도 처음 시작할 때 부담은 있었지만 행사가 잘 끝난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We are the World 우리 모두 하나로 소통하고 나누며 '한국을 알리고 조금이나마 맛보게 한 시간'이 된 거 같아 뿌듯했다. :0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