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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y 09. 2024

그날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필사하면서 한자는 귀찮아서 쓰지 않았다- 아래 원문참조




그날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지라

시대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아니될 수 없고

빠르게 진행된 하루의 사건전개처럼 인생도 시간도

물살처럼 흘러가며 사람은 그대로인데 

사건들로 배경이 바뀌며 결국은 우리도 변해간다.


너무 빠른 진행 속에 사람들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로

흘러가고 있다. 고통도 사랑도 불감증인가?

          



시인 李晟馥씨는 1952년 경북 상주에 서 태어나 1978년 서울대 인문대 불문과 를 졸업했다.     

1977년 겨울, 시 「정든 유곽에서」를 『文學과知性』에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장한 그는 개인적 삶을 통해서 얻은 고통스런 진단을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면서 우리를 끈질기게
 그리고 원초적으로 괴롭히는 病든 상태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많은 미발표시 들을 포함한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이같은 우리의 아픔 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진실의 추구에 서 얻어진 귀중한 소산이다     

-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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