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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Dec 03. 2024

항조우 여행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항주


항조우는 중국에서 부유하기로 손꼽히는 저장성의 수도다.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18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상하이 훙차오역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정도 걸린다. 항조우 인구는 천 이백만이 넘는다.     


내게 항조우 여행은 한 마디로 하라면

청화방과 서호, 

그리고 동파육과 거지닭이 될 거 같다.     


역에서 내려 무조건 택시를 타고 청화방을 갔다. 청화방은 명, 청 시대 항저우에서 가장 번영했던 상업지구다. 지금도 그 시절 모습이 남아 있는 항저우의 명동이라 보면 된다. 당시의 상업적 분위기를 재현한듯한 시장 거리에 휴지통이며 앉는 벤치들이 아주 깨끗해서 22년 항조우 아시안 게임 이후 더 손을 본 거 아닐까 싶었다.     

청화방 옛거리에는 길거리 음식가게가 즐비했다. 다도를 경험할 수 있는 찻집부터 탕후루, 꼬치집등 먹거리 천국이다. 100년 역사의 한약방도 들어가보고 워낙 볼거리가 많아서 일일이 들여다 보는데 시간이 걸렸다.

윈도우 쇼핑 좋아하는 나는 가게 앞에 내어 놓은 것들을 시식하며  아, 이것이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하며 들떴다.


청화방 거리 입구 모습
입구 배뿔뚝이 동상이 풍요의 상징같다
울나라 고추장같은 양념과 반찬을 파는 가게
오렌지를 재료로 한 간식가게인 듯
두부를 쌓아놓고 파는 취두부 가게
무료차를 마시고 들어가 본 한약방 내부는 엄청 넓었다
검은 취두부

약 800년 전부터 7대에 걸쳐 내려오는 유명한 찻집도 있다는데 남송 시대의 태극권 동작에서 유래된 여러 동작을 선보이면서 차를 준비한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 알았기에 다음에 가면 들려봐야겠다.      

우리는 일단 터키 아이스크림 쇼 보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그 옆 가게에서 내가 젤 궁금했던 검은 취두부를 사 먹었는데 맛이 두부를 튀긴듯하고 소스가 매콤하면서도 특별했다.


취두부가 각종 야채와 소스에 버무려져 있다

나는 워낙 고기보다 두부를 좋아하는데 취두부가 발효된 냄새는 별로 안 나고 그냥 처음이라 특이하면서도 끌리는 맛이었다. 그런 취두부를 소스별 종류 별로 못 먹고 온 게 좀 아쉽다.      

강정 비슷한 간식 만드는 가게


예전 성문
손님을 기다리며 폰을 보고 있는
청화방 거리의 동상
남송 서점
왼편 계단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은 넓고 점원은 보이지않고 계산도 기계화되어 있어 현대적이었다
한자로만 된 책이 신기했다 ㅎㅎ


오래된 유럽식 건물과 옛 수도였음을 상기시키는  성벽이 조화롭다




청화방에서 서호까지는 걸어서 가도 15~20분 정도가 걸리는 가까운 거리지만 비가 오니 택시를 탔다. 배 타는 곳에 내려달라니 기사가 근처에 내려주었기에 나는 바로 배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가족전쟁이!!!      


나는 무조건 직진 돌격형이라 그냥 나무배를 타고 싶었는데 남편은 유람선을 타고 싶다며 자꾸 검색만 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여수에 온 것도 아니고 소동파가 시를 읊던 중국의 서호에 왔으니 당연히 그 정서를 따라 나무배를 타고 싶었고...아들은 알리페이가 잘 먹히질 않아 애를 먹다가 결국 내가 원하는 데로 나무배를 탔는데 이 나무배는 좀 흔들리며 가는 것이었다.      


나무배 두 종류 중에 한 유형은 더 납작해서 사공이 앉아서 노를 저으니 덜 흔들리고 우리가 탄 배는 사공이 일어나서 젓는데 배가 삐걱 소리를 내며 더 흔들림이 많았다. 해서 아들이 멀미가 난다고 했다.

아들은 엄마는 뭐든 승질이 급해서 항상 급히 결정하니 뒷탈이 있다며...인상을 짓고... 남편은 처음부터 이런 배는 타고 싶지 않았다고 아들 말에 가세를 하니...나는 이 좋은 서호에 와서 물안개까지 자욱하니 정말 소동파의 낭만을 느끼기에 딱 좋은 이 상황에서 두 남자의 설왕설래를 들어야하다니! 하며 속으로 부글거렸다.     


그러다 내 마음을 급 전환시켰다.     


집이 얹힌듯한 배가 이채롭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교각풍경이 여유롭다
수목원에서 보는 호수 언저리 풍경도 이뻤다
배 타고 풍경보며 무념무상 ㅎㅎ
서호와 수목원


기왕지사 지금 배를 탄 마당에 더 이상의 왈가왈부는 불필요하다 보았고 이제 나 홀로 여행이 아니니 일단 표정 관리부터 하자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서 엄마가 고집부리고 내가 원하는데로 해서 미안하다 말하고는 나 혼자라도 서호의 풍경을 즐겼다 ㅎㅎ

정말 멀리 보이는 이층 배들도 낭만적이고 주변 다리와 나무들도 볼 수 있는 서호는 뭔가 중국스러운 풍경이 정말 이곳 아니면 못 느낄 것 같아 잠시 이전 시대로 시간 이동을 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배타고 한 바퀴를 하다 마지막에 뿌루퉁하던 남편이 이럴 땐 음악이 있어야지~하며 한곡 찾아 틀기에 아, 기분이 좀 풀렸나 보다 했다.  호수만 바라보며 감상하느라 말이 없는 내게 아들은 ‘엄마 삐졌나’? 하며 물어오는데 아들도 자신이 짜증낸 거에 대해 좀 미안하가보다 했다 ㅎㅎ


가족여행은 중간중간 가족들끼리 한 번씩 오바 텐션해서 터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마치 첫날 내가 택시에 여권, 폰 든 가방을 두고 내려서 다들 혼비백산 한 거처럼. 그러나 그 시점만 잘 통과하면 더할 나위 없이 다시 즐겁고 함께 즐기는 여행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서호에서 그렇게 배를 타고 내려서 우리는 호숫가를 걷다 비도 그쳐서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근처 수목원에 들렸는데 또 한번 수목원의 크기에 놀랐다. 수양버들 늘어진 자잘스런 풍경의 호수와 정원을 맘껏 즐겼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수목원 내 표지판이 한글로도 되어있었다. 그러다 좀 쉴겸 티 하우스, 찻집에 들어가서 주인이 추천하는 차를 마셨는데 보온병같은 찻 주전자가 어마하게 컸다. 진한 녹차맛을 즐기며 차를 마시다 남편과 나는 골아떨어졌다. 여행이 즐거운 만큼 강행군이기도 하니 피곤했던 모양인데 나중 아들이 찍은 입 벌리고 자는 사진을 보며 웃었다.     


찻집안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탕수육과 동파육, 그리고 거지닭


항저우는 남송 시대, 1127년부터 1276년까지 수도였는데 남송은 중국의 통일왕조인 송나라 후기를 이르는 말이다. 덕분에 유서 깊은 문화적 유산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니 항저우는 도시 자체에 기품이 있었다.

청화방 거리를 벗어나 잠시 둘러 본 서점과 산성 비슷한 것도 상당히 중국스런 멋과 품격이 느껴지고 당일치기 여행으론 턱 없이 부족한 곳이라 나는 나중 다시 와서 적어도 보름은 있다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원나라 때 방문한 마르코 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칭하였고 중국 시인 소동파가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이라 했다. 즉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항저우는 중국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의 이상향으로 꼽혀서 예로부터 식재료가 넘쳤고, 덕분에 사람들의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항조우에서 북경까지 연결된 운하로 막힘없이 오가며 물자가 풍부했던 덕분이다.     

이 지역의 본격적인 발전은 일찍이 수나라가 건설한 강남 대운하의 종점이 되면서부터였으니 7세기부터다. 지금도 항주에서 북경까지 16000킬로의 운하는 중국의 맥이 되고 있다.


알리바바 그룹 창업주인 마윈이 사업을 시작한 곳이기도 해서 알리바바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마윈은 항저우 사범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력이 있어 지금도 모교에 많은 투자를 통해 학생들의 창업과 다양한 활동을 돕고 있다.

한국 영화감독과 결혼한 탕웨이도 이곳 출신인데 예로부터 물안개의 고장이라 햇볕에 타지않은 얼굴 흰 미녀가 많은 고장으로 알려졌다.            




바다 같은 호수 서호

서호는 원래 강이 연결된 해안의 포구였는데, 진흙·모래로 막혀 육지의 인공호수로 조성된 것이다. 지금은 중국의 10대 명승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호수는 둘레가 15킬로미터, 길이가 동서로 2.8킬로미터, 남북으로 3.3킬로미터, 평균 수심은 1.5미터, 최대 수심은 2.8미터로 그리 깊진 않은 호수다.     

호수는 5개의 작은 호수로 나뉘어 있는데 시내에서 가장 가깝고도 넓은 외호에 볼거리가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 여러 번 보아도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서호가 풍경과 명승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름다운 산수의 지세를 지녔을 뿐 아니라, 14명의 제왕의 수도였기에 서호 부근에는 관료와 부호가 운집했고, 그들의 정치적 배경이 되어 많은 문인과 묵객들의 소재가 되어 시와 그림으로 옮겨졌다.     


백낙천과 소동파가 즐겨 서호를 배경으로 시를 읊었다.     


물빛이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과 어우러진 산색이 또한 기이하네

서호를 서시에게 비교한다면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다 아름답다     


소동파가 서호의 아름다움을 월나라의 이름난 미인이자, 오나라를 망하게 했던 항주의 여인 서시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다. 비 오는 날 서호의 풍경을 옅은 화장한 미인같고 맑은 날의 서호는 짙은 화장을 한 여인같으나 어쨌든 다 아름답다는 식이다.     


아들은 상해에서도 먹었지만 항조우에 가서 동파육을 먹을 거라 별렀는데 저녁엔 아들이 검색한 맛집을 가 봤다. 소문대로 대기줄이 엄청 길었다. 잠시 카메라 건전지를 사러 자릴 비운 아들과 남편을 대신해서 나는 먼저 입장을 해서 구글을 이용해 중국어로 주문을 했다. 동파육과 거지닭, 그리고 탕수육과 중국식 두부요리등     


나중에 온 아들이 엄마 잘 했다며 칭찬을 해 주었고 소동파의 동파육을 항조우에서 먹다니 하며 더욱 기분이 좋았다. 거지닭은 노숙자처럼 살던 사람들이 닭이 생기면 진흙을 발라(남비가 없으니?) 땅 속에서 불을 지펴 구워먹은데 기원해서 거지닭이란 이름이 생겼다 하는데 먹어보니 쫄깃하면서도 맛이 있었다.    

  

항조우 맛집식당 내부
진흙으로 구운 거지닭을 망치로 깨서 먹는다는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항조우 메인 거리를 나가보니 정말 엄청 넓고 컸다. 사통오달 사거리에 서니 번쩍이는 광고에 좋든 싫든 중국도 이제 자본주의가 쩔은 나라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널찍한 상가나 거리는 이제껏 뉴욕과 런던에서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홍차우 역으로 가서 시간이 남아서 역에서 알리페이로 발 마사지를 하고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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