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 시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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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

아침 8시,

눈을 비비며 호가창을 열어 본다.

프리(pre)장이 개설된 뒤로 굳어진 습관이다.

커피 물이 끓기 전에 먼저 주식 시장이 끓는지부터 확인하는 셈인데, 누가 보면 대단한 전문 투자자인 줄 알겠지만

사실은 그저 오래 버틴 개미 한 마리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서른 후반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성인이 되어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 초년생 티도 벗었을 시간이다.

그러나 내 주식 계좌는 여전히 사춘기 소년처럼 예민하고 돌출적이다.


처음 주식을 접한 건 친한 대표의 권유였다.

“정말 소액으로만 해요.”라는 충고는 신기하게도 그때만큼은 귀에 잘 들어왔고, 덜컥 계좌를 튼 뒤

조심스레 N*N이라는 종목을 샀다. 지금의 네*이버다


그리고 한 달 뒤, 수익률이 50%가 넘었다.

그때 알았다. 월급쟁이 세계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사실을.

‘아, 이래서 다들 주식을 하는구나!’ 하는 철없는 깨달음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이미 부자가 된

내 모습이 럭셔리하게 뛰놀고 있었다.


물론 그 환상은 시장의 변동성이 한 차례 흔들어주자마자 바로 날아갔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시절, 상한가를 치는 종목은 많았지만 하한가로 추락하는 종목도 넘쳐났다. 내가 산 종목은 대부분 후자였다.


며칠 만에 피 같은 돈이 반토막 나고, 어떤 건 상폐까지 되는 걸 보며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세상에, 피 같은 내 돈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다니. 그래서 경제신문을 구독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신문을 접어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시시각각 시장을 읽으려 애썼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개미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세력을 이기기 어렵다는 씁쓸한 진실을.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원금만 찾고 나오자’는 마음으로 물타기를 시작했다.

그것도 대출로 아내 몰래. 지금 생각하면 이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투자가 있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구멍난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나도 나름 투자 인생의 굴곡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의 수익률을 결산하면 어떨까

다행히도(?) 전체 투자 대비 원금 손실은 없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라고 말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은 여전히 어렵다. 기회비용을 따져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만,

그 시절 나의 투자 철학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단 한 줄에 모든 것이 집약돼 있었다.


최근 시장은 다시 불장이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천만 원 벌었다, 이천만 원 벌었다는 자랑이 들린다. 축하할 일임에도, 솔직한 마음은 부럽다. 내 종목들은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 때 문득 떠오르는 옛 어른들 말씀이 있다. “주식은 패가망신이야, 거들떠도 보지 마라.”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건전한 투자는 장려해야 한다. 기업은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모으고, 우리는 투자자로서 경제에 참여한다. 즉, 자본 시장은 나라 경제의 혈관 같은 곳이다.

비록 나는 큰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소액이나마 경제에 기여했다는 점에 작은 위안을 찾곤 한다.


그렇다고 손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해서 그런 생각 하나가 버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호가창을 보며 소망을 건다. 상한가? 굳이 필요 없다.

제발 완만한 상승곡선 하나만 보여달라. 아주 현실적이고, 아주 소박한 바람이다.


결국 이런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지도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글쓰기가 더 소중해지는 것 아닐까. 오랜 시간 시장에서 구르고 부딪히며 얻은 작은 깨달음 하나쯤은, 렇게라도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의 나는 또 내일의 나에게 묻는다. “그래도 계속해볼 거냐?” 그러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그래, 아직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