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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조용하다. 조용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된다.
가끔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대화처럼 느껴질 정도다.
결혼 초엔 그 침묵이 어색해서, 나도 한 번씩 말을 꺼내 보곤 했다.
“오늘 날씨 좋네.”
아내는 고개만 끄덕였다. 대화 종료.
내가 용기를 내 두 번째 말을 이어보면 “그렇지?”
“응.”
끝.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세 줄짜리 시가 되어버렸다. 제목은 <날씨>.
세월이 흐르며 그 ‘시’는 더 짧아졌다. 이제는 눈빛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내가 배가 고프다는 눈빛을 보내면 아내는 김치찌개를 데운다.
내가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면, 아내는 티 안 나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말이 없어도 소통은 이루어진다. 다만, 그 소통이 Wi-Fi보다 느릴 뿐이다.
그러나 가끔은 TV 속 부부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서로 티격태격하다가도 금세 웃고, 재치 있는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
“여보~” 하고 부르는 그 소리만 들어도 집안이 환해지는 것 같다.
우리 집은 그런 게 없다. 나는 결혼 후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여보~”라는 소리를 TV에서만 듣는다.
아내가 나를 부를 때는 언제나 “진이 아빠.” 딱 마침표 하나 붙은 음성이다.
높낮이도 없다.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문장이다.
한번은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고 나도 TV처럼 해봤다.
“자기야~ 오늘 저녁은 뭐야?”
아내는 조용히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말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날 저녁은 김치찌개였다. ‘자기야’ 실험은 그날로 종료됐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지, 이 조용한 관계가 싫지만 않다는 것이다.
처음엔 대화가 부족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침묵이 편안하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많다. 내가 퇴근이 늦을 땐, 아내는 괜히 전등을 한 개 더 켜놓는다.
말은 없지만, 기다림의 온도가 느껴진다.
물론 가끔은 상상도 한다. 만약 아내가 수다스럽다면 어땠을까.
“오늘 장 보는데 말이야, 그 아주머니가…”로 시작해서 40분 동안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아마 나는 10분쯤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을 것이다.
그럼 또 아내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됐다.” 한마디로 대화를 끝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조용히 사는 운명이다.
하지만 조용함에도 나름의 음악이 있다.
아내가 식탁 위 그릇을 옮길 때 나는 그 ‘딸그랑’ 소리가 좋다.
그건 우리 집의 음악이고, 대화의 리듬이다.
주말 아침, 커피포트가 끓는 소리는 우리 부부의 아침 인사다.
“안녕?”이라는 말 대신, 커피 향으로 서로를 깨운다.
가끔 손님이 오면 놀란다.
“두 분은 사이가 어디 안 좋으세요?”
그럴 때마다 우린 서로를 한번 쳐다보고, 동시에 미소 짓는다.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하는 부부. 그게 바로 우리다.
싸울 일도 없고, 떠들 일도 없고, 그래서 오래 간다.
생각해 보면, 말이 많을수록 오해도 많다.
조용하다는 건, 어쩌면 서로를 믿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으니까.
아내의 한숨이 오늘의 피로를 말해주고,
내 한숨이 아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우리의 언어는 소리보다 느리지만, 마음에는 빠르게 와 닿는다.
이제 나는 TV 속 재잘거리는 부부를 봐도 부럽지 않다.
우린 이미 우리만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으니까.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리로, 가장 깊은 사랑을 나누는 가족.
그게 바로 우리 ‘조용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