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창가에 앉아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새 깊어진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잘 띄는 별무리가 있다. 북두칠성이다.
어릴 적엔 그 별들이 국자 모양이라서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 별들이 왜 그토록 또렷해 보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버지가 예전에 하신 말이 문득 떠오른다.
“밝은 별은 혼자 빛나는 건 아니야.
그 곁에 머무는 수많은 별들이 있어야, 그 하나도 더 또렷해지는 거야.”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사람도 별처럼 함께 있어야 빛난다.
얼마 전,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분주히 걷고 있었다.
조금은 허리가 굽은 어르신,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걷는 아이,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젊은 연인.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 순간,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이게 조화구나.’
서로 다른 걸음, 서로 다른 나이, 서로 다른 삶이
묘하게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마치 색이, 다른 실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천을 짜듯,
서로 다르기에 더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 같았다.
이런 조화는 거리에서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그렇다.
하지만 조화롭게 산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자기만의 고집, 생각, 살아온 방식이 있다.
그 모서리들이 부딪히면 상처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때론 그 상처를 서로 꿰매주며,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렇게 하루를 지나간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 하나가 기억난다.
자폐가 있는 주인공이 회전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그를 향해 누군가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쿵, 짝짝. 이 박자에 맞춰 봐요.”
처음엔 잘 되지 않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그 리듬을 따라 회전문을 무사히 통과한다.
그 장면을 보고 나도 알게 됐다.
세상은 ‘쿵, 짝짝’ 그 박자를 맞춰야 지나갈 수 있는 문이구나.
조화란 그런 것 같다.
누군가 나보다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소리 없이 묵묵히 걷고,
또 어떤 이는 수다스럽게 움직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할 때 더 잘 어울리고, 더 큰 힘이 생긴다.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감독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조명, 소리, 소품, 연기…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영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한 끼 밥상에도 어울림이 있다.
깻잎이 삼겹살을 감싸고,
콩나물이 해장국 속에서 제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할 때 더 맛있는 식탁이 된다.
북두칠성이 쉽게 눈에 띄는 이유는 그 곁에 다른 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밝은 별만 모여 있으면 오히려 찾기 어렵다.
조금은 덜 밝은, 조금은 희미한 별들이 있기에
그중 밝은 별 하나가 더 또렷해지는 것이다.
사실 북두칠성은 일곱 개가 아니다.
그 곁에 있는 또 하나의 별, ‘북두팔성’까지 있어야 진짜 완성이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구도 혼자서는 빛나지 못한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내가 또 다른 누군가의 짐을 함께 져 줄 때,
우리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이는 몸이 불편하지만 마음이 깊고,
어떤 이는 말이 느리지만 생각이 단단하다.
조화는 거창한 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한 걸음 물러나볼까?”
그렇게 작은 배려가 모여 조화를 만든다.
북두팔성처럼 말이다.
조금씩 다르지만, 함께 있을 때 더 밝은 별무리가 되는 것.
오늘 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익숙한 별무리 사이,
조금 희미하지만 따뜻한 빛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별이 누구든, 어떤 모습이든
함께할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쿵, 짝짝.
인생의 박자를 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