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김떡꿀감귤
25.10.28
아내가 일찍 출근하는 화수금요일, 딸의 아침은 내가 차린다.
이것저것 과일을 깎고 계란 프라이와 우유를 주었더니 잘 먹는 것 같더라.
다음엔 계란 위에 다양한 치즈를 올려주고 케첩이나 마요네즈도 뿌려주었더니 처음엔 맛있다 해서 거의 한 달 동안 토핑만 좀 달리하여 차려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가 원래 계란 프라이를 좋아했는데 아빠 때문에 아침에 먹는 계란은 싫어하게 됐다 말을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메뉴 고민을 하면서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딴에는 시간을 들여 야심 차게 준비했는데, 음식을 남겼을 때면 상심이 크다.
나중엔 아이에게 네가 먹고 싶은 요리들을 적으라고 했더니 몇 개를 주었다.
...
먹는 거에 다소 진심이기에 아이의 아침을 준비할 때면 신경이 쓰인다.
서울에선 오가며
다양한 종류의 베이커리와 디저트를 사먹일 때마다
처음 맛보는 것들이라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런데 이사를 온 뒤부터 근처에 유명한 빵집도 없거니와
출퇴근을 1시간씩 차로 하면서 중간에 어디 들리기도 힘이 부친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서 점심시간을 먹고 잠깐 나가서 장을 보곤 한다.
어제는 떡집을 지나가는데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유명 셰프님의 레시피가 떠올랐다.
가래떡을 노릇하게 구워서
김에 말아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김에 발린 참기름과 소금때문에 고소하고 짭조름하다 생각하니 군침이 돌았다.
상상만으로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떡집 사장님께 내일 아침에 딸아이 식사로 산다고 하자
굽지 말고 차라리 끓는 물에 5분 동안 삶으면 흐물흐물해진다고 맛있다고 하셨다.
일종의 물떡처럼.
사장님의 추천대로 해보자.
끓는 물에 데친 다음 말랑해진 것을 확인하고,
통에 든 김의 길이에 맞춰서 3등분으로 잘랐다.
조금 없어 보이는 것 같아 꿀을 그릇 한편에 듬뿍 짰다.
꿀떡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조합이 아니던가?
아이는 보자마자 말했다.
"이게 뭐야?"
"아빠가 유명 셰프님한테 듣고 만든 김떡이야, 김밥 같지?
아빠도 처음인데 같이 먹어보자~"
"아빠! 말할까? 말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돼?"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그래, 해~. 대신 아빠가 정성스럽게 준비했다는 것만 기억해 줘."
"아빠! 나 가래떡 싫어하는 거 몰라?!"
아뿔싸!!!
망했다.ㅠㅠ
"근데 먹어보니 맛있네~" 이 녀석 밀당의 정석이다.
이름하여 단짠김떡꿀감귤을 싹 비웠을 때,
어릴 때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자식 입에 맛있는 게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불러~'
어릴 때 항상 맛난 거를 내 앞으로 주시면서
당신은 입에도 안 드시길래 조금 궁금했었다. 사실일까?
...
초콜릿 듬뿍 들어간 조각 케이크나
좋아하는 말랑복숭아를 깎아서 주면
딸아이 혼자 다 먹었을 때
배가 부르지는 않고 좀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마음이셨구나.
어렸을 적 맛난 걸 혼자 다 먹어치웠을 때
옆에서 당신도 얼마나 드시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미소로 쳐다만 보셨던 어머님 얼굴을
한 번만 더 본다면 소원이 없겠다.
대신 내일 새로운 메뉴를 준비해서 딸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눈에 꾹꾹 담아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