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여행 중에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다. 베를린 여행 중 우연히 보게 된 조각상 때문이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운터덴린덴 대로를 따라 걷다가 오래된 건축물 하나를 발견했다. 독일 건축물치고 아담한, 웅장하지는 않지만 여섯 개의 원형 기둥으로 받쳐진 현관 지붕이 있는 예쁜 건물이다. 안은 통으로 텅 비어 있고, 한가운데에 조각 작품이 하나 덩그러니 앉혀 있다. 한 여인이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조각상이다. 유럽 교회에서 자주 보이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피에타가 아니었다. 또 다른 사연을 지닌,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조각상이었다.
항상 부지런한 아내는 스마트폰을 열더니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은 한때 경비병 초소로 쓰이던 건물이고 지금은 기억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노이에 바헤’이다. 비참했던 과거를 지닌 독일이 각종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공간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심장한 기억 공간에 단 하나의 조각상, 그것도 그리 창의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미 자주 본듯한 피에타 하나만을 배치하다니,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유대인 희생자 추모 공원에는 그나마 2711 개의 육면체 조형물을 설치해서 숙연한 마음이 들게 했더니만. 아내는 이 작품에 대한 내용을 더 읽어주었다.
추모관 중앙에 있는 작품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확대 제작한 조각상이란다. 케테 콜비츠는 히틀러 전부터 활동하던 작가로 소외 계층의 비참한 삶의 현장을 많이 그려왔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인데 이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아이러니컬하게도 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아들의 시체를 자기가 안게 되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손자까지 전장에서 잃게 되었다. 어찌 견딜 수 있었겠나? “다시는 전쟁은 안 된다. 죽음은 이제 그만, 내 아들 손자로 이제 그만!” 외치면서 그림에 나머지 인생을 갈아 넣었다.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부모를 보낸 자식은 잠시 슬프지만 자식을 보낸 부모는 마냥 아프다. 내 조국에도 그런 부모가 참 많다.
추모관 바닥 한가운데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다. 바로 위 천정은 둥글게 뻥 뚫려 햇볕이 핀조명처럼 공간 벽을 비추고 있다. 맑은 날은 해가 떠서 지는 반대 방향으로 저 핀조명은 천천히 움직이며 빈 방을 비추겠지. 아! 그런데 비가 오면 조각상이 젖으며 또 눈이 오면 하얗게 뒤덮인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카메라를 들어 눈을 급히 가렸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버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잊을 수가 없다. 고통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시사철 이 텅 빈 방, 구멍 뚫린 지붕 아래에서 아들을 보듬고 마냥 꺼이꺼이 울 뿐이다.
케테 콜비츠는 아들 손자를 잃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은 않았다. 당신이 해왔던 예술의 방향이 맞음을 확신하고, 자기 예술 작품에 평화와 반전 신념을 더 굵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자들은 눈물로 평화와 반전 의지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