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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Jan 30. 2024

데이트 신청 받아 봤나요?

우편함에 고이 넣어놓은 할머니의 마음

우리 집 남매는 매일 우편함을 열어 우편물이나 광고지가 들어있는지 확인한다. 그러다 우리 집 뒤쪽 길에서 지팡이를 짚고 올라오시는 뒷집 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하다가 첫째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엄마! 우리가 뒷집 할머니 할아버지 편지와 신문을 갖다 드릴까? 할아버지 매일 지팡이 짚고 올라오시는데 힘드실까 봐. 우리는 하루에 열 번 넘게 우편함을 열어보잖아! 편지가 오면 바로 갖다 드릴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밖에 있을 때 post man을 볼 수 있으니까 할아버지 mail을 바로 갖다 드릴 수 있어! "


뒷집 할머니 할아버지는 남매의 예쁜 마음을 허락하셨고 아이들의 책임감은 빛이 났다.


할아버지는 신문을 구독하셨는데 덕분에 아이들은 매일 눈뜨자마자 우편함을 열어 신문을 들고 할아버지 집에 갖다 드리며 칭찬을 선물로 받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햇빛을 즐기기 좋은 날 뒷집 할머니는 우리 집 우편함에 아이들을 향한 데이트 신청 쪽지를 남겼다.

"2시에 Grady(강아지 이름) 보러 가자! 1:45분에 할머니 게라지에서 만나!" 할머니가 남기신 데이트 신청 쪽지


강아지를 좋아하는 우리 집 남매를 위해 가까이 사는 아들 집에 래브라도를 보러 가자고 한 약속을 오늘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며칠 전 나에게 먼저 아이들의 스케줄을 물어보셨던 할머니께서는 아이들에게 깜짝 데이트 신청을 위해 우편물에 쪽지를 남겨두셨던 것.


남매는 그날도 어김없이 우편함을 열었다가 뒷집 할머니의 데이트 신청 쪽지를 보고 기뻐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우리는 할머니의 아들집에 방문하며 선물로 드릴 에그타르트를 만들기 위해 마트로 가서 장을 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첫째와 베이킹을 했다. 맛있게 만들어진 에그타르트를 선물상자에 담고 보라색 끈을 둘러 둘째가 리본을 예쁘게 묶었다. 한 박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한 박스는 할머님의 아들집에 보낼 것으로 아이들은 각자 선물 상자를 챙겼다.


아이들은 그동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아지의 목둘레를 대충 짐작해 언젠가 만나게 될  래브라도를 위한 스카프를 부지런히 만들었었고 드디어 그것을 챙겨 할머니가 만나자고 한 게라지로 갔다. 나는 아이들의 카시트를 할머니 뒷좌석에 설치해 주었고 아이들은 할머니 차의 뒷좌석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며 할머니의 아들이 살고 있는 30분 거리의 집으로 놀러 갔다.


에그 타르트 두박스 야무지게 챙겨 할머니 만나러! 둘째는 할머니 우편물 배달까지!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온 남매는 할머니 아들의 집에 강아지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있고 큰 수영장도 있어서 다음에는 수영복을 가지고 놀러 갈 수 있다며 신나 했다.


염치없이 아이 둘을 맡긴 것 같아 본의 아니게 죄송한 마음에 할머님께 시간 되시면 차 한잔 어떻냐는 제안을 드렸고 흔쾌히 우리 집으로 오셔서 대화를 나누며 티타임을 가졌다. 힘드시진 않았나 여쭤보니 아들 셋과 딸 둘을 키운 사람이고 손주도 여럿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하신다. 손주도 다 커서 심심했는데 자신에게 새로운 재미가 생겨 요즘 너무 재밌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아들집에 갈 때 우리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본인의 아이패드를 가져가셨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으니 내 메일로 보내주신다 했다. 어쩜 이리 친절하고 따뜻하신지 보내주신 사진에도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어 감사했다.


남매가 할머니 아들집을 방문하게 만든 주인공 Grady. 첫째가 만든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할머니가 이메일로 보내주신 사진에는 할머님의 50살이 넘은 아들과 8살, 6살 우리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사진도 있었다. 나도 아이들의 사진을 찍을 때 나란히 앉혀놓고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하고 찍는데 라는 생각에 그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사진 속 할머님의 아들도 우리 아이들처럼 카메라 렌즈를 보고 활짝 웃고 있는 거 보니 50이 넘은 아들도 엄마 말 잘 듣는 자식이고 할머님 눈에는 8살, 6살 남매와 다르지 않은가 보다.


할머니의 다정함을 아들과 며느리도 닮은 걸까. 그날 저녁 모르는 이메일이 와서 열어보니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보낸 메일이었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나와 내 딸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보내온 메일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강아지의 스카프까지 예쁘게 걸어주고 가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아이들이  방문했을 때 자신의 부재로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다음 방문에는 꼭 시간을 맞춰 같이 보자는 인사도 덧붙였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엉성하게 만든 강아지 스카프이지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아이 엄마에게 고맙다고 잊지 않고 전하는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있다. 온 마을은커녕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이 나라에서 천방지축 양쪽으로 나뉘어 뛰는 남매를 나와 남편은 온 마음을 다 해 키우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웃이 남매의 육아에 힘을 실어주고 온 동네가 우리 가족을 돌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자발적 왕따지만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이웃들이 있기에 뾰족한 마음이 들려할 때 이따금씩 잠재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도 낯선 땅의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하며 우편함에 데이트 신청을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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