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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Feb 13. 2024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짤렸다

내가 특별한 날을 싫어하게 된 이유

남편은 뉴질랜드에서 아시아 식자재를 유통하는 기업에서 일을 하게 됐다. 남편의 이력을 검토하고 면접을 담당한 젊은 직원은 남편의 이력에 대해 다른 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Over Qualified로 부담스러운 직원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기대가 크니 잘해보자 했다.


한동안 남편은 잘 차려입고 출근했다. 슈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와이셔츠와 면바지에 구두, 그러다 폴로티에 면바지에 구두, 나중에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나는 남편이 회사가 많이 편해졌나 보다 생각했다.


어떤 날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다른 파트의 직원과 거래처 사장님들께 자신을 소개할 시간도 필요했고, 인수인계를 위한 시간도 필요했으니 여기저기 직원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남편은 두 팔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회사에서 남편의 직무는 아시아 식자재 유통을 위한 영업팀의 말단 직원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라 딱 정해지지 않은, 그들이 말한 수습기간에는 창고 물류센터의 일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본 직업을 구하기 전 택배 아르바이트를 할 때 무거운 짐을 옮기며 일당을 받던 생활과는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오히려 남편은 수입 물류가 회사로 들어오는 날에는 수 천 킬로그램의 쌀과 김치, 고추장, 된장 등 각 종 장류와 무거운 세제를 하루종일 들고 나르느라 며칠 밤을 끙끙 앓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노동만 하며 그들이 칭한 수습기간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버텼다. 도대체 영업사원의 직무를 언제 맡게 될지 모른 채 이렇게 며칠을 더 하다가는 온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이라고 왜 묻지 않았겠는가.


사무실에 항상 앉아 있던 자신을 면접 본 20대의 남자는 자신을 과장이라 부르면 된다 했다. 남편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요청하면 바쁘다 자리를 피했고 그를 우연히 사무실 밖, 물류 창고에서 만나면 그는 남편을 또 피해 피우던 담배를 얼른 끄고 사무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하루는 그 20대 과장이 남편의 이름을 불러 세웠고 어깨를 툭툭 치며 때가 되면 위에서 수습생 딱지를 떼줄 것이란 말만 했다고 한다. 남편은 매일 물류창고에서 각 지방으로 배송 가는 물품을 차에 실어주느라 본 사무실은 면접 볼 때와 첫 출근 이후 구경도 못해봤다 했다. 윗사람이라고 하는 임원을 여태껏 본 적도 없으며 사장이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했다.


업무의 분담과 뽑아 놓은 직원의 역할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체계 없는 회사에 정이 떨어질 때쯤 드디어 남편에게 기회가 왔다. 20대 과장은 남편에게 몇 군데 거래처의 업무를 맡겼고 거래 내역을 모두 수기로 작성한 장부를 건넸다. 남편은 수와 셈에 능하다. 이미 물류창고에서 회사의 모든 제품 종류와 가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숙지했고 각종행사의 할인율과 그에 따른 가격까지도 파악을 끝냈다. 사실, 그전까지도 도대체 물류창고의 일을 왜 이토록 오래 시키는지, 택배업체 직원인지, 물류창고 직원인지 헷갈릴 만큼 수습기간도 길어 인내심과 체력의 한계를 매일 겪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업무에 들어가니 모든 상품을 파악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꼭 필요한 시간이었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몸은 힘들었지만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한 기업의 수습기간 의도를, 남편은 그렇게나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남편은 먼 거리의 지방 거래처라 할지라도 정기적으로 들르며 자신이 맡은 바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유연한 일처리로 거래처 사장님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믿음도 얻었다. 2020년임에도 아직도 일일이 수기로 적으며 이루어지는 거래장의 구시대적 작업이 왜 시정되지 않는지, 불편했지만 위에서 결코 바꾸고 싶어 하지 않기에 인수인계를 받은 그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신입사원의 등장



신입 영업사원이 한 명 더 입사했다. 물류창고에서 수습기간이 꽤 길었던 남편과는 다르게 새로운 직원은 일주일도 안된 채 남편의 거래처를 함께 다니며 일을 배웠고 남편도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남편과 동갑인 신입직원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노력했다. 원거리 출장에는 남편과 20대 과장, 배송기사, 또 다른 신입직원이 동행을 한 날이 많았고 그럴 때면 남자들끼리의 대화도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도박이야기로 번졌고 놀랍게도 그들은 도박을 끊지 못해 이혼당하고, 집도 차도 다 팔아먹고 빚이 산더미처럼 있는 카지노에 혼을 뺏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1불도 허투루 쓰지 못하는, 외벌이 가장이었기에 그들의 도박에 함께 맞장구 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말리기까지 했으니 도박중독자 셋의 눈에 남편은 눈엣 가시였을 터. 그렇게 도박으로 대동단결한 세명의 도박중독자들은 출장을 핑계로 지방의 카지노에 뭉쳐 다녔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탈출할 기회만 엿봤더랬다.


군대에서 폐를 다쳐 폐가 좋지 못한 남편은 특히나 담배냄새에 취약하다.

도박중독자에 필수 친구는 뭐다?

바로 담배다.


도박에서 돈을 왕창 잃은 날이면 남편을 제외한 남자 셋은 차 안에서 끝도 없이 줄담배를 피워댔고 그로 인해 남편은 머리가 어질 하고 숨쉬기도 어려워 이러다 딱 죽겠다 싶은 날도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근무시간이 끝나고 밤에 도박장에 가는 것도 모자라 원금회복을 위해 근무시간에도 도박장을 찾았다고 한다. 밤낮없이 도박을 하는 그들은 남편에게도 돈을 쥐어주며 시작해 보라고 등을 떠밀었고 불량청소년들의 단편을 40대에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했다.


남편은 어렸을 적부터 승부욕이 강해 게임을 한번 했다 치면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보는 성격임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어 내기가 걸려있는 게임은 절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또한 아끼고 아껴 우리 가족 외식 한번 더 시켜주고 싶은 가정적인 남편이기에 남자 셋이 도박장에 그를 밀어 넣고 돈을 쥐어주고 유혹한들 남편은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도박에 눈이 돈 그들을 설득해 함께 도박장을 빠져나가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느 날 남편은 장부를 들여보다 숫자가 맞지 않아 과거의 장부까지 다 들춰보았다고 한다. 수기로 적힌 거래내역의 숫자는 뒤로 갈수록 점점 맞지 않고 몇 번 확인을 해도 남편이 확인한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은 본인이 맡은 거래처의 내역과 장부를 엑셀파일로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스스로 투명했다. 하지만 상부에 보고되는 전 지역 거래내역에 오류가 번번이 발생됨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횡령 정황을 발견한 것 같아



남편이 발견한 횡령의 사실을 알리고 원인을 찾고자 20대 과장에게 보고했으나 놀라기는커녕 노발대발하고 당신이 잘못 봤을 거라며 더 이상 과거의 장부를 열람하지 못하게 했다. 남편은 퇴근하며 혹시나 20대 과장이 횡령의 장본인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더 이상 캐묻다가는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며칠 뒤 20대 과장은 남편을 사무실로 조용히 불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식자재를 주문하던 식당들과 아시아 마켓의 거래처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며 회사 사정도 좋지 않다고 했다. 더 이상 월급을 줄 수 없으니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며 이직을 권했다고 한다. 마침 주급날이니 오늘 날짜로 그만 두든지, 다른 일을 알아볼 동안 한 달의 기간까지 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이미 남편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남편이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에 울린 전화벨 소리에 어떤 소식일지 직감했다. 그리고 남편은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 달을 버티면 네 번의 주급을 받겠지만 그동안 남편은 횡령 정황을 발견 한 이상 물류창고로 좌천 돼 또다시 쌀 수천 킬로그램을 혼자 나르며 자신의 정직함이 오히려 가족에게 독이 됐다 생각하면서 자책할 것이다.  



미안해. 나... 잘렸어.
아니, 한 달은 더 다닐 수 있대.



"어서 집으로 와. 당신 잘못한 거 없어, 버티지 말고 곧장 집으로 와요"


아침에 아이들의 뽀뽀세례를 받고 현관문을 나섰던 남편이 두 시간 만에 같은 자리에 서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그는 억울하고 황망한 마음에  차오르는 눈물을 꾹 꾹 눌러 참고 집으로 돌아왔고 현관문을 열어주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안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서로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아이들 방을 치우고 저녁 준비를 했다.


그날은 우리의 10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뉴질랜드로 날아와 살며 첫 해에는

남편의 생일에 집에서 나가라는 퇴거통보를 받았고

두 번째 해에는

우리의 10주년 결혼기념일날, 남편이 직장에서 잘렸다.


여전히 뉴질랜드는 우리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고 조금이라도 안정을 찾으려 하면 새로운 절망을 안겨준다.


특별한 날, 기가 막히게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날이 싫다.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릴까 봐.

또 다른 절망이 찾아올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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