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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Feb 20. 2024

매일 새벽 공사장으로 향하는 당신에게

형광색에 내 마음이 시리다

유통회사 입장에서는 권고사직이지만 횡령의 비리를 알고 있는 당사자는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에 대한 부당하고 뻔한 처사를 알고 있었다. 40대의 말단 신입사원은, 20대 젊은 과장이 들이미는 '권고사직'에 관한 서류에 사인을 했고 남편은 그 즉시 말단 신입직원 생활을 끝냈다.


40 먹은 남편은 회사의 더러운 탕비실에서 20대 상사들이 먹은 점심까지 설거지하고 화장실 청소를 시킨 들 자신에게 주어진 회사생활에 한 부분이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히 일했다.


어린 나이에 일찍이 뉴질랜드에서 자리 잡고 사는 그들에게 한 가지라도 배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 묵인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횡령과 도박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모른채.


도박에 영혼까지 내다 판 직원들이 얕은 모래로 덮어놓은 횡령의 폭탄을 남편이 발견했을 때, 도박중독자 어쩌면 횡령의 중심 일 수도 있을 그들은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지레 겁먹고 남편을 내쫓았다.


누구보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을 겪은 남편은 화를 낼 기운도 불합리한 처사에 맞대응할 의지도 없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잃었다. 남편은 한순간 인생의 길을 잃은 듯 자신의 상황에 대한 비참함과 처참함에 아내의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린 또다시 뉴질랜드의 작은 이민사회가 원망스러웠다. 비영주권자라는 것이 약점이 되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좁은 이민사회에서 미래를 위해서라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기가 찼다.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두려워하며 입을 다물어야 한다. 회사의 횡령에 대한 사실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 비밀을 알게 된 당사자를 해고시킨 일은 20대 과장, 과연 그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도박꾼들의 작당모의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여전했지만 남편은 더 이상 그 회사 사람이 아니다.


남편은 허술한 회사에  짤렸단 생각에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을 테지만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남편이 하루빨리 그 회사를 나온 것이 잘 된 것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카지노에 영혼을 판 세명의 정신 나간 도박꾼들과 조금이라도 일을 더 길게 했더라면 횡령이라는 죄로 엮여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내 남편은 도박에 정신 팔려 가족에게 버림받은 세 사람과 같은 자리에서 동급으로 내려쳐질 하찮은 존재가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는 나였기에, 남편의 옆을 지키며 속상한 일을 귀담아듣고 대신 욕해주며 위로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뉴질랜드도 대면에 관한 제한이 많이 생겼다. 당연히 집단 회사생활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일을 찾아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채워 넣지 않으면 매주 지불되어야 하는 렌트비로 금세 텅장이 될 우리의 상황은, 남편이 짤려 억울해도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짤린 그 회사의 물류팀 직원과 알고 지냈는데, 남편의 억울하고 갑작스러운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힘든 일이라도 괜찮다면 코로나 시기에도 할 수 있는 소방설비 일을 소개해줬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뉴질랜드도 점차 셧다운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은 당장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몸이 힘든 일이라도 정신적 고통을 둔감시킬 수 있어 오히려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물류팀 직원이 소개해준 소방설비 회사의 사장님과 면접을 봤고 2주 뒤 출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방설비 회사의 사장님은 남편에게 20대 어린 친구들도 힘들어하는 일이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랬단다. 물류팀 직원도 스프링쿨러 일을 하다 힘에 부쳐 그만두고 유통회사 물류팀으로 들어왔다 하니 보통 힘든 일은 아닌 듯했다.


남편의 직장은 이제 공사장이다.







남편의 두 번째 취업



우리 집은 차가 한대다. 아이들의 등하교를 위해 내가 쓰고 있기 때문에 남편은 현장 소장님과 다른 직원의 차를 얻어 타고 출퇴근한다. 기름때가 잔뜩 낀 현장 공구들과 물품들로 꽉 찬 트럭의 앞자리에 운이 좋으면 남편 혼자,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직원과 함께 어깨를 부딪혀가며 일을 하는 현장까지 1시간을 넘게 간다고 한다.


겨울로 접어들고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면서 더 이상 차를 얻어 타고 다니는 게 미안해 중고차를 한대 사고 싶다 했다. 200만원 남짓한 낡은 소형차를 샀다. 시동을 켤 때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는 오래된 중고차지만 그동안 힘든 일을 끝내고 집 앞까지 내려주겠다는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큰 길가에 내려 무거운 워커를 끌고 왔던 남편은 이제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했다.


발을 주무르고 있는 남편을 보다 앞으로 다가가 발마사지를 해주었다. 시원하냐고 물으니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발가락 끝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동상에 걸렸다. 추운 겨울에 워커를 신고 바쁘게 움직이다 땀이 마르고 다시 땀이 나고 반복하다 결국 동상에 걸려 발가락 끝에 감각을 잃은 것이다. 공사현장이니 노동자들이 쉴 공간은 따로 없었고 점심도 차 안에서 잠깐 배고픔만 가시게 때우다시피 먹는 게 다였다. 남편은 잠깐의 쉬는 시간에 차에서 쉴 수는 있었지만 히터를 틀어도 금세 따뜻해질 리 없는 중고 소형차는 찬 겨울의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었다.


남편은 동상에 걸렸고, 손톱엔 멍이 들어있고 열개의 손가락 끝은 하나도 빠짐없이 건조함으로 갈라지고 터져서 수시로 피가 난다. 무거운 파이프를 어깨로 짊어지다 생긴 피멍은 없어질 줄 모르고 매일 높은 건물의 끝까지 올라가는 리프트에 몸을 싣는다. 리프트의 흔들리는 진동에 두려움을 느끼며 밑을 내려다보면 사람들의 머리가 엄지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그곳에서 온몸이 떨릴 만큼의 공포도 느낀다. 하루종일 들려오는 공사현장의 소음에 두통이 밀려오고 이를 꽉 물고 무거운 자재를 옮기다 치아뿌리에 금이 갔다.


남편은 '이민'이라는 총대를 메고 '가장'이라는 무게를 있는 힘껏 버티며 산다. 아내와 아이 둘. 뉴질랜드에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형광색 현장복을 입고 딱딱하고 무거운 워커를 신고 이마에 짙게 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맞는 헬맷을 쓰고 새벽동도 트지 않은 길을 나선다. 깜깜한 새벽녘의 조용한 동네에서 남편이 걸을 때마다 현장복의 야광선은 더욱 반짝이고 남편이 나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왈칵 눈물이 난다.


다치게 않게 해 주세요
사고 나지 않게 해 주세요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오늘도 남편은 진통제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 출근했다. 뉴질랜드의 차가운 6월, 겨울의 찬 공기가 야속하다. 나는 그가 입는 공사장 현장복의 형광색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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