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ch Mar 05. 2024

참담함을 견디면 찬란함이 올까

한 치 앞이라도 볼 수 있다면

결혼 3년 차에 시댁과 상의 없이 둘째를 임신한 미운오리 며느리로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해외로 눈을 돌린 남편의 이민병을 고쳐보고자 '한번 살아보자!' 심정으로 해외이주를 결심했다. 그 순간부터 시댁에서는 시집살이 싫어 도망가는 며느리였고 잘 알지도 못하는 시댁 사촌언니에게는 풍요로운 시댁을 가진 어린애, 돈 잘 벌어다 주는 남편을 지 편으로 꼬드겨 편히 사는 팔자 좋은 애로 낙인찍혔더랬다.


그동안 내가 그들에게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여기저기서 험담으로 뭇매를 맞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우리의 해외이주 결심을 말할 때까지 내가 그동안 시댁 뒷담화의 주인공인지 몰랐을 만큼 그들은 철저히 나를 아꼈다.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순간 돌아섰다. 그들에게 이민병의 주인공은 남편이 아니라 내가 되어 있었고 급기야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오해의 실타래를 풀고자 노력했지만 혼자 의미 없는 외침이었을 뿐, 결국 그들에게 해외살이의 진실은 남편의 이민병이 아닌 며느리의 시집살이 해방이었다. 내 진심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귀를 닫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나는 한 아파트에서 시부모님과 시누이와 같이 살며 받는 시집살이를 피해서 도망가는 며느리였다.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울며불며 해외살이를 말리던 시누이는 우리가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기도 전부터 자신의 외동아들을 우리에게 유학 보낼 생각을 하며 동의를 구했다. 남편은 당연히 거절했고 그 원망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래, 이렇게나 어렵게 떠나온 자리다. 무거운 마음을 떠안고 온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착지였다. 따뜻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매일, 우리의 지금이 불시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연고도, 직장도 없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시작했다. 뉴질랜드로 어렵게 떠나왔으니 그곳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힘든 일이 생겨도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라면 오히려 감사했다. 하나 해결하기 무섭게 또다시 몰아치는 폭풍우를 마주치는 고통도 감내하고 있지만 도무지 곁을 내어주지 않는 뉴질랜드에서 우리 가정의 삶에 안정이 찾아오기는 할까 라는 의구심이 합해져 나의 하루 끝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겨진다.


뉴질랜드는 이민 생활 2년 동안 비자 상실, 갑질, 퇴거명령과 해고로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있었다.


남편은 오늘도 동상 걸린 발을 딱딱한 워커에 구겨 넣고 치아 뿌리에 금이 가 치통과 두통을 잠재우려 매일 진통제를 먹으며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에 야광작업복을 입고 출근한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지금에 우리 아이들은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생의 폭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있는 부모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더 좋은 것을 주고 더 맛있는 것을 해주는 노력으로 어느새 남편과 나는 이민 1세대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 흔들렸다.

이전 13화 매일 새벽 공사장으로 향하는 당신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