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적응력이 빠른 편인 나는 뭐든 빨리 질리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캐나다에 도착하고 2주 지나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보기 시작할 만큼 뭐든 쉽게 질리는 나는, 캐나다에 도착하고 1달도 안 돼서 여행이 너무 가고 싶었다.
캐나다는 캐나다고 여행은 여행인 법. 어느새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특별한 것이 아닌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 여행지를 찾아보았고 최종 세 군데로 추려졌다.
1. 빅토리아: 내가 있던 지역에서 나름(?) 쉽게 갈 수 있었던 곳.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혼자서도 별 무리 없이 갈 수 있었다. 작고 고즈넉한 마을로 유명하다.
2. 옐로나이프: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 쉽게 컨택할 수 있는 한인투어도 있었다. 대신 혼자 갔을 시에 숙소비용 때문에 꽤 많은 돈이 들었다.
3. 시애틀: 내가 있던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을 만큼 가까웠다. 미국이라는 특이점이 있다.
과연 이 세 가지 중에서는 나는 어딜 갔을까?
돈만 충분하다면 셋 다 갔겠지만 결론적으로 시애틀을 가게 되었다. 당시에 나와 친하게 지냈던 대만인 친구 W와 마카오 친구 W가 같이 가자고 해서 셋이서 숙소를 잡고, 버스 예약을 하면서 세부적인 여행 계획을 세웠다.
기대를 품고 간 시애틀은 환상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겁이 많은 우리는 저녁 10시만 돼도 빨리 숙소로 돌아와서 제대로 미국을 돌아봤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일단 내가 있던 캐나다의 지역과 너~무 비슷했다.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마저 비슷했다. 버스 모양도 비슷해서 내가 지금 시애틀에 있는 건 맞는지 의심스러울 수준이었다.
대신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데 그건 캐나다-미국 국경을 넘을 때였다.
버스를 타고 가다 다 같이 내려서 중간에 여권과 비자를 제출해야 하는데 버스 마지막 자리에 탄 우리는 마지막 줄에 섰었다. 앞에 사람들이 술술 빠지고 떨리는 마음으로 비자를 내려고 하는데 오잉? 갑자기 직원들이 다 사라졌다.
당황한 나머지 뭐지? 뭐지?를 생각했는데 우리 3명을 남겨두고 그 사이에 브레이크타임이라 간식을 먹으러 간 것이다.
그 작은 대합실 안에서 우리 셋만 덩그러니 남았고..
그 작은 선 너머에 버스 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차 안에도 몇 십 명의 승객들이 우리를 기다리는데..
직원들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간식을 먹으러 갔다..
보통 승객이 3명 남으면 직원 당 한 명씩 맡아서 빨리 처리하고 간식타임을 가질 것 같은데 브레이크 타임 시작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이 내 마인드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직원들은 돌아와서 우리 비자승인을 마저 해주었다. 그런데 웃긴 건 브레이크타임 시작 시간은 칼같이 지키면서 끝 시간은 애매모호한 것이다.
비자비용을 계산해야 하는데 그 직원들은 돌아오지를 않아서 또 10분 정도 기다렸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피가 흐르는 나로서는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비자 승인을 받고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기사한테 다가가니 기사님은 '얘네 원래 이래'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차 안으로 돌아가니 우리한테 박히는 수많은 눈들..
물론 부정적인 눈빛으로 보진 않았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한창 쫄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니 W가 딱 잘라하는 말.
"It's not our fault. Government problem(우리 탓이 아니고 제도의 문제야)."
이 말을 듣고 어딘가에 맞은 것처럼 띵-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나의 잘못이 아닌데 나는 너무 쫄아있었다. 이때의 일로 나는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남 탓'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감정임을 안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런 마인드는 세상을 살아갈 때 나를 보호해 준다는 것을 배웠다. 나를 지키는 사람은 나라는 걸 언제나 기억하며 조금은 뻔뻔하게 세상을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