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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 Nov 30. 2023

터미널 1

유서연(2023)

 오늘로 7일째, 나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창문이 없어 시간 가늠이 안 되는 작은 방, 항상 거기서 꿈은 시작된다. 침대 두 개, 책상 두 개가 나란히 양쪽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놓여있고, 그 옆에는 우드 시트지를 붙인 작은 옷장이 하나 놓여있다. 얼핏 보면 기숙사 같기도 한데 단정은 못 짓겠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에서 나간 적이 없다.


 7일째, 나는 오른쪽 침대에서 눈을 뜬다. 어제의 꿈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원래도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자잘한 물건 하나 없는 방이지만, 이곳은 내가 전날 어떤 짓을 하더라도 다음 날이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내가 침대를 뒤집어엎고, 책상을 발로 차고, 옷장을 넘어뜨려도 다음 날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 

이 방 하나뿐인 문을 부수어보려고 쳐보기도 하고, 두드려보기도 하고, 문고리에 체중을 실어보기도 하지만, 이 약해 보이는 나무문은 어떻게 된 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 방에서 나갈 수가 없다. 한 마디로 갇힌 거다.


 인간은 고등 생명체라고, 이곳에 있는 시간 동안 내가 아무것도 못 알아낸 것은 아니다. 내가 알아낸 것은 바로 포기하는 법. 가장 쉽게 포기하는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이다. 다시 잠을 자면, 나는 잠에서 깬다. 

이곳은 시계도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에서 1분을 있든 10시간을 있든 현실에서는 똑같이 7시 알람 소리에 깨는 것이다. 꿈 속 시간과 현실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당연히 꿈 속이니까 그렇겠지만. 

 아, 또 하나 알아낸 것은 자기 전에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자면 그걸 꿈에 들고 올 수가 있다. 이건 이 꿈을 꾸지 않으려고 이틀 밤을 새운 어느 날, 핸드폰을 보던 중에 못 버티고 잠들었을 때 꿈에서도 그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당연히 핸드폰 전파는 터지지 않았다. 모든 건전지, 배터리, 전자기기는 이 방안에서 먹통이었다. 


 이곳을 나가려는 마음은 3일째 되는 날 끝났고, 이곳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5일째 되는 날 끝났다. 오늘은 언젠가 이 악몽이 멈추겠지 하며 현실도피하는 7일 째이다. 오늘도 빨리 포기하자. 침대에 누운 채로 다시 잠들려 눈을 감는다. 이제 막 잠에 들었는데 다시 잠이 올 리가 없으니 이럴 때를 위해 수면제와 물을 가져왔다. 


 항상 같은 천장, 항상 같은 채도의 방, 모든 건 나 빼고 멈춘 것 같은 느낌. 방 온도조차도 춥지도 덥지도 않다. 모든 게 미적지근한 이 꿈을 난 언제 그만 꾸려나. 병원에서는 스트레스가 이 꿈의 원인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전후관계가 다르다. 나는 이 꿈을 꾼 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전에는 야식 한 번과 맥주 한 잔에 스트레스가 사라지던 단순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이 꿈에 영향을 줄까 봐 못한다. 이게 더 스트레스다. 지금 나는 약이 아닌 술이 지독하게 그립다. 


 마음속으로 양을 500마리 정도 셌으니 30분 지났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의 흑역사를 하나하나 들춰봤으니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거기 떡볶이 참 맛있었는데, 형섭이가 나 좋아했었는데, 놀이공원 안 간 지도 오래됐네, 세연이랑 내일 점심 먹어야겠다, 그 오빠 어떻게 지낼까, 내일 퇴근길도 엄청 막히겠지, 취미를 하나 만들어볼까, 걘 이름이 뭐더라, 난 10년 뒤에 어떻게 살까, 설마 그때까지도 이 꿈을 꾸고 있진 않겠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딴생각을 하다 보니 서서히 정신이 아득해진다. 감은 눈이 무거워지면서 조용한 방에는 내 숨소리만 들린다.


.



"하-."


뭐지?

이건 내 숨소리가 아닌데?


눈을 뜨고 싶지만 지금 눈을 떴다간 잠에서 깨버릴 것 같아 섣불리 눈을 뜨지 못한다. 무엇보다 무섭다. 나도 모르게 두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지만.. 무서운 게 아니라면? 놓칠 수도 있는 기회라면? 이게 새로운 발견이라면? 이 꿈에서 나갈 수 있는 실마리라면? 이제 이 꿈을 멈출 수 있다면? 

그래, 용기를 내자. 나는 47일 동안 같은 꿈을 꿔도 미치지 않은 사람이야. 할 수 있어. 짧은 시간 동안 순식간에 지나가는 무수한 감정을 누르고 조심히 눈을 떴다. 소리가 들렸던 침대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



거기에는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꿈을 꾼 지 7일째 되는 날, 나는 꿈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아니, 우리는 서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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