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 처음 말해보잖아
캐나다에 있으면서 총 세 군데서 일을 했다. 공교롭게도 셋 다 일식집이었는데 첫 번째 집은 바로 라멘 집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웃기고 어이없는 일들이 가장 많았다. 나의 업무는 디시워셔, 즉 설거지 담당이었다. 스태프를 위한 스태프밀이 따로 준비될 만큼 나름 큰 곳이었는데 사장이 우리 지점에 없어 직원들끼리 끝나면 술 한 잔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술은 매일 밤 달라졌다. 맥주, 양주, 와인, 위스키.. 원하는 주종을 말하면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아주 직원 복지가 훌륭한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교자 포장, 교자 옮기기, 설거지, 뒷정리, 쓰레기 버리기 등 잡다한 업무를 맡아서 하였다.
첫날, 인수인계를 받는데 셰프가 말하길 "설거지하고 찌꺼기는 바닥에 버리면 돼요.""네? 바닥에요? 그럼 바닥은 물청소 하는 건가요?""아뇨."하고 머쓱하게 그가 말을 이었다. "쥐가 먹을 거예요." 나는 이때까지 농담인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니 알 수 있었다. 아, 농담이 아니구나.
실제로 캐나다는 쥐가 많다. 대부분의 식당에 쥐가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식당은 유독 쥐에 관대했다. 그냥 키우는 수준으로 매일 그렇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밤에 술 한 잔 할 때, 뒤를 보면 쥐들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다들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던 나도 시간이 지나니 쥐들에게 인사할 수 있을 만큼 무신경해졌던 기억이 있다.
일이 끝나고 다들 한 잔 하는 분위기 속, 대화를 나누게 된 필리핀계 캐나다인이 있었다. 마침 필리핀 여행을 몇 번 갔던 나는 그 친구와 처음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어느새 우리의 주제는 필리핀, 한국, 영화, 노래, 책 등 다양하게 펼쳐졌다. 맥주 한 잔에 적당히 취기가 올라 기분 좋게 얘기하는데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그의 목소리. "Can I kiss you(너에게 키스해도 돼)?" 어이가 없어서 술이 확 깨더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나의 목소리. "No(아니)." 단호한 나의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Sorry(미안)."라고 말하는 필리핀 보이. 오늘 처음으로 얘기한 사이에 뭔 키스냐고 내가 묻자 분위기에 휩쓸린 것 같다고 사과하는 그에게 그런 분위기 나는 느끼지 못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그렇게 우린 내가 그곳을 퇴사하기 전까지 친구로만 남았다는 웃긴 사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