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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현 Dec 05. 2023

그 남자의 행방이 묘연 (猫緣)하다  -5-

시루의 첫 병원 방문기

조막만 한 몸뚱이로 집안 온 구석구석을 쏘다니며, 이모•삼촌들에게 솜방망이 손으로 냥냥펀치를 날리던 ‘시루’의 눈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했다. 눈곱이 덥히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고양이는 태생이 길거리여서 허피스 전적이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시루도 역시 허피스라 생각하여 급히 영양제를 사서 습식사료•이유식을 섞어서 먹여줬다. 일단 면역력을 올려야 하기에.


주말에도 다행히 운영하는 인근지역 동물병원이 있었지만 말이 인근지역이지 시내버스로 1시간은 가야 해서 이동장에 시루를 넣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처음에 집에서 데리고 나갈 때는 아이가 자신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질까 봐 불안하지 않게끔, 패딩을 입고 품 안에 시루를 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동하는 내내 시루를 품에 넣고 진정시켜주고 싶었지만, 큰 차가 지나다니는 차도와 시내버스 안에서 아이가 놀라 뛰쳐나가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큰일이기에 이동장에 넣은 채로 이동을 했다. 내내 품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던 아이는 안심이 되었는지 이동장 안에 깔아준 담요 위에서 새근새근 잠을 잤다.


병원에 도착해 진단해 본 결과, 아이는 허피스가 아니라 ‘각막궤양’이었다. 미세한 상처가 있어 눈물이 생긴 거라고 한다. 다행히도 심한 건 아니어서 안약을 넣어주면 상태가 많이 호전된다고 한다.


진료가 끝나고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아이는 내 품을 벗어나 대기실 소파 구석에 몸을 말고 웅크려 잠을 자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인 나도 장거리 이동이 힘든데, 조그만 아이는 얼마나 지치고 피곤할까. 비상용으로 챙겨놓은 츄르를 꺼내어 주었더니, 눈을 뜨고 일어나 정신없이 먹어치우며 이미 안에 있는 내용물이 다 나와서 속이 비어버린 텅 빈 츄르 비닐봉지를 게걸스럽게 씹어댔다. 녀석.. 너 그래도 여자아이야.. 아마 길에 있던 아이여서 이번에 내가 준 츄르가 묘생 처음으로 맛본 것인가 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까지 시루는 이동가방 안에서 하염없이 잠을 잤다. 집에 도착해서도 물그릇에 있는 물만 조금 할짝거리다가 내 침대로 올라와서 몸을 말고 잠을 잤다.


어린 시루한테는 오늘 하루가 기나긴 여정이었을 거다. 잘 자렴 아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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