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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연 Jun 26. 2023

나란 사람에 관한 정의

내가 나를 모르고 살았다

나는 누구고 어떤 사람일까요?

육십년을 훨씬 넘게 살면서 늘 이게 의문이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비치는 나란 사람과 내자신이 생각하는 나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어느때는 나를 참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그 상황에 맞게 나를 수정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내가 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나다운 나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글을 쓰시고 책을 출간하신 많은 분들은 과연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까요?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한 소크라테스의 시대부터, 아니 인간이 창조된 그때부터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나 그 답을 알고 완벽하게 살아간 분이 한명이라도 존재할까요?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규정해놓은 큰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삶의 방향성을 쫒아서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최대목표로 삼습니다만 그게 쉬운 일일까요? 그렇게 살지 못해서 오늘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깊은 골방에서 소리내어 참회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세상논리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 때문에 기독교 자체가 엄청난 비판과 욕을 먹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그 방향성조차도 찾지못하고 평생을 상황에 따라 자기자신을 규정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읽으면 이렇게 살아야 될 것 같고, 저 책을 읽으면 저렇게 살아야 될 것 같고 문뜩 생각하면 전에 읽은 내용이 맞는 것 같고....

이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카멜레온 처럼 색깔옷을 갈아입으며 살아갑니다.  


나는 누구고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쉽게 남을 단정짓고 그들의 등짝에 주홍글씨를 깊게 새기고 있는건 아닐까요?  지금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단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는 내자신은 또 누구일까요?

두렵습니다.


아내와 삼십년을 함께 살면서도 문뜩 아내가 새롭게 보일때가 많습니다.  저런면도 있었나 싶어 이와 비슷했던 아내의 모습을 기억해내려고 해보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아내는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들을 뭉뚱그려서 이런 사람일거야라고 하는 추측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물론 아내나 그밖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고로 남을 안다는 것은 내가 설정해 놓은 기준들을 바탕으로 타인들을 대입시키고 이로써 추측하고 단정지은 허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진솔하게 나를 아내에게 각인시키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최소한 서로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면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근접한 서로에 대한 정의는 가지고 살아야 되는건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나는 늘 나자신을 수정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편하지 않는 부분은 스스로 고쳐서 나름 좋은 방향으로 고쳐 나가려고 합니다.  

성질머리가 고약해서 아내가 무척 고생을 하며 살았으므로 그 성질을 고치려고 스스로를 담금질합니다.  나로 인하여 많이 힘들었을 내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나의 나쁜면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성이 옳바르다는 소리를 듣기를 바랍니다.  그 바램때문인지도 모를 나의 변화가 진정 옳바른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세상평가에 마음을 빼았긴 건 아닐까요?


새월은 좀 더 나를 교묘하게 만듭니다.  남들이 나를 세상시선으로 좋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상황에 맞추어  나의 옷을 적절하게 갈아 입을 지혜가 나이를 먹을수록 쌓여갑니다.  이것은 점점 더 교묘해져갑니다.  갈아입은 나의 옷을 보고 남들이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할때 희열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그러는 도중에 또 의문이 듭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를 알고 살아가는 것인가?


여러분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육십이 넘도록 살아온 사람입니다. 언젠가 근엄한 표정을 한 점잖은 모습의 나를 만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님을 알아주십시요.

이 거짓되고 가식으로 가득찬 삶에서 벗어나고자 오늘도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한마리의 카멜레온임을 알아주십시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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