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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May 23. 2023

설화 <아기장수>: 민중들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아차산 서쪽 기슭에 살고 있는 부부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매일 아차산의 바위 봉우리를 바라보며 빌었다. 어느 보름달이 꽉 찬 날 소원을 빌고 나니 천둥 번개가 치고 사흘 동안 비바람이 몰아쳤다. 봄이 되고 아내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다음 해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부부는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런데 일을 나갔다 오면 걷지도 못하는 아기는 늘 높은 다락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가는 척하고 몰래 숨어서 보니 아기의 겨드랑이가 부채처럼 넓어지면서 날개로 변하였다. 아기는 날갯짓을 하여 다락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기둥에 묶어 두면 기둥을 뽑아 지붕으로 올라가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근심에 쌓인 부부는 아기의 곁을 떠날 수 없어 아내가 늘 곁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춘궁기에 두렛일을 빠질 수가 없어 아기를 연자방아의 후리채에 묶어 놓고 일을 나갔다. 아기가 연자방아의 윗돌을 끌고 날개를 퍼득이면서 아차산으로 올라가자 부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기에 대해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괴이한 장사가 태어나면 역적이 된다고 믿었던 마을 사람들은 결국 아기장수를 죽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기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볍씨 가마니를 놓아 아기가 나오려고 할 때마다 볍씨가 쏟아져 내렸다. 아기장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만 죽고 말았다. 그날 밤 아차산에서는 아기장수를 기다리던 날개 달린 용마가 밤새도록 울었다. 용마는 해가 뜰 무렵 아차산을 벗어나자마자 태양이 떠올라 날개를 접고 용당산 앞 한강에 떨어진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용당산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아기장수는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비극에서는 고귀한 신분의 영웅적인 주인공이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서 현재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미래의 구원자로 등극하게 된다. 영웅이 나아가는 여정은 힘들고 고되지만 그 결과는 창대하여 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웅이 나아가는 매 순간 그에게 동화하려고 애쓰거나 동화되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감정을 승화시킨다.


그러나 <아기장수>에서 아기장수의 운명은 일반적인 영웅에게 느끼는 감정과 달리 청자에게 공포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산기슭에 사는 평범한 집안에 태어난 아기장수의 비범함은 미래의 구원자가 아닌 ‘반사회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현재의 안정을 깨뜨리는 파괴자의 숙명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가 더욱 비극적인 이유는 부모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데 걸음마도 떼지 못한 갓난아이라는 점이다. 아직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은 어린 아기를 역적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죽인다.


사실 역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현재의 지배층에 대항하는 반세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아기장수는 현재의 불안정한 세상을 새롭게 열어줄 구원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아기의 몸에 날개가 달렸다는 것 역시 상서로운 징후이다. 날개는 하늘과 연결할 수 있는 도구로 아기장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인물이라는 반증이다. 그 부모가 매일 밤 달(하늘)을 보고 정성으로 빌었더니 사흘 밤낮으로 비바람이 불어, 즉 하늘을 열고 세상에 나온 인물이다.


지배층에 의해서가 아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민중들 스스로 자신들의 대표자를 죽임으로써 그들의 현실이나 운명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들이 직접 아기장수를 처단했지만, 아기장수의 용마가 하늘로 가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아기장수가 나타나리라는 민중들의 희망을 소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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