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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Aug 22. 2023

설화 <죽음의 말>에 나타난 삶과 죽음

아무개 망자가 액운을 당하여 저승지부왕이 일직사자, 월직사자, 강림도령 삼차사를 보내어 저승으로 데려오게 하였다. 

망자의 집에 당도하니 자식들이 자문지장산, 별머리위성, 면전나전식상을 차리고 무당을 불러 축원을 하고 있어서 월직사자가 인정으로 머뭇거리자, 일직사자가 망자를 매섭게 재촉하였다. 망자의 조상과 성주신, 지신이 애걸하자 일직사자 역시 인정에 망자를 데려가지 못한다. 이에 강림도령이 인정사정없이 망자를 잡아간다. 

망자의 자식들이 삼차사를 위한 채전을 차려놓고 정성을 바치자 그 정성을 칭찬하며 저승사자들은 망자를 고이 모시고 저승으로 들어간다. 망자는 지부왕 앞에서 거짓말을 하여 형벌을 당하고 바른말을 한다. 서낭자를 지내 신에게 공덕을 쌓은 덕으로 사흘의 시간을 받아 세상에 나와 새남굿과 수륙재를 받아먹고 시왕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시왕으로 가는 길에 열 시왕이 다스리는 지옥을 지나고, 극락을 지나면서 여러 부처들을 만나고 망자는 그 신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서천서역국을 지나 시왕극락에 도착한다. 그때 망자의 자손들이 정성과 많은 재산을 들여 진오기와 새남굿, 수륙재, 지방더미, 전네미, 위귀사살지게 등을 지내 망자의 저승길을 닦아 준다. 자손들의 공덕으로 망자는 인도 환생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존재가 신이 된 일반적인 신화와 달리 무명의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의 말>에서 저승의 임무를 담당하는 신과 가정 내에서 역할을 하는 신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에도 질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안이다. 특히 눈에 띄는 내용은 저승차사의 역할, 저승의 경치, 망자의 자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승차사는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상황에 따라 그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망자의 자손들이 그들을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무당을 불러 축원 등의 정성을 보이면 인정에 이끌려 임무수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것은 신에게 사람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시왕극락으로 가는 여정은 아주 흥미롭다. 일단 저승에 도착하면 지부왕 앞에서 자신의 죄와 공덕을 말하고 가야 할 곳을 배정받는다. 이승에서의 공덕이 발휘되는 곳이다. 시왕으로 가는 도중에 열 개의 지옥을 지나는데 그 지옥의 명칭을 보면 도산지옥, 화탕지옥, 한빙지옥, 거해지옥, 비시지옥, 독사지옥, 양설지옥, 탐심지옥, 철상지옥, 흑암지옥으로 사람이 살면서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의 내용을 나타낸다. 

각각의 지옥을 다스리는 신의 이름과 생일까지 자세히 나타나 있는데 이는 듣는 사람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느낌을 주어 바르게 살도록 경각심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왕으로 가는 길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들을 지나야 한다. 이승의 경치와 다를 바가 없다. 웅장하게 뻗어 있는 나무라든지 색색의 꽃들이 피어있는 모양새는 저승이 차갑고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이승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는 곳이다. 

망자의 여정은 망자 자신의 공덕뿐만 아니라 그 자손의 공덕까지 포함된다. 망자가 강을 건너야 할 경우와 갈래길에서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등에서 자손의 공덕이 하늘과 신에게까지 미쳐 망자에게 도움이 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은 이승과 저승, 극락과 지옥, 삶과 죽음이 별개로 존재하는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있음을 보여 주는 우리 문화의 큰 특징이다.


우리의 신화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늘과 땅을 분리하지 않으며 죽은 자와 산자를 이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놓는다. 실과 실의 사이에 생긴 공간은 그저 빈 공간이 아닌 교류와 소통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우리 신화는 사람을 연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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