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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Apr 12. 2023

1920년대 시대적 배경으로 『진달내꼿』읽기

김소월, 『진달내꼿』, 소와다리, 2015.



우리가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밝히려 할 때, 반드시 작가가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시대를 참고하여 작품을 읽어낼 필요는 없지만 작품 속에 당시의 사회 문화적 영향이 거의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은 거듭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김소월의 시에 대한 해석도 역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사회문화적 해석이나 개인의 서정성을 주로 해석하는 등 무수히 많은 해석이 있다. 그의 시 중 상당수가 대중가요나 동요로 불리고 있을 정도이니 해석이 얼마나 다양한 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20년대는 낭만주의 시대로 내용과 형식에 큰 변화가 있었다. 형식에 있어서 이전의 정형시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내용을 표현하는데 훨씬 용이해졌다.


시의 역사에서 낭만주의는 그 이전과 이후를 경계 짓는 가장 큰 분기점로 근대화의 시작점이다. 낭만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워즈워스는 당시 지배층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닌 천시 받은 서민들의 일상 언어인 영어를 시에 사용하여(주1) 자국어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중시되었다. 그것은 기성세대의 도덕과 인습을 부정하고 더 나은 사회를 열망하는, 즉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1920년대는 1910년에 국권의 피탈로 인하여 근대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김억을 비롯한 일본의 유학생들은 『학지광』과 『태서문예신보』등의 유학생 잡지와 신문을 통해 서양의 자유시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시기”였다. 1919년에 동인지 “『창조』의 발간 이전부터 이미 일본에서 활동하였던 주요한은 「불놀이」를 『창조』에 발표하면서 국내에서도 자유시인의 대표 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 . . 이들 대부분은 낭만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보였다. 대표적으로 이상화, 김소월, 한용운 등을 들 수 있다.”  


『진달내꼿』에 수록된 시는 그 형태만으로도 이전의 정형시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시의 길이가 다양하고, 민요조의 율격이 사용되기도 하고 단어의 반복이나 화자의 발화 방법 역시 그 맥락에 따라 완전히 반대의 상황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본인은 여러 시 중에서 「진달내꼿」, 「엄마야 누나야」,「닭은 꼬꾸요」등 세 개의 시를 위주로 1920년대 낭만주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교재와 강의에서 배운 비유나 상징, 이미지, 리듬, 어조, 시어 등 시론의 주요 용어들에 맞추어 읽어 보고자 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김소월의 시는 시적 언어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일상 언어를 그대로 시에 끌어들인 낭만주의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로 자주 사용하는 이런 언어들은 독자에게 ‘특별히 고안해서 만들어 낸’ 언어나 시 또는 학문적 배경과 관계없이 그 의미가 훨씬 더 명백하고 강하게 다가온다.


  엄마야 누나야 江邊살자,

  뜰에는 반짝는 金모래빗,

  뒷門박게는 갈닙의노래

  엄마야 누나야 江邊살자. (「엄마야 누나야」) (p. 229)


 햇볕이 따사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노래하는 듯이 보이는 이 시에서 우리는 그리움과 아픔, 죽음이나 나라를 잃은 현실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화자가 부르는 엄마와 누나는 국권을 상실한 우리 민족이고, 강변은 나라 또는 고향을 등지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처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일상이었던 강, 뜰, 모래, 갈대 등은 1920년대의 사회문화를 생각해보면 평화로운 자연풍경을 이용하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藥山

  진달내꼿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꼿츨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진달내꼿」) (p. 190)


이 시의 화자인 여인은 순종하고 인내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순종과 인내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덕목으로 강요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시의 화자는 전통적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를 떠나는 상대방에게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만큼 당당함을 보여준다. 사랑에 매달리며 우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낭만주의적 인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에 매달리며 떠나는 이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의 여성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이상화된 수동적인 여성상으로 작가인 김소월 또는 당시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여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에는 술어에 마침표가 없다. 이것은 이러한 여성의 모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닭은 꼬꾸요, 꼬꾸요 울제,

  헛잡으니 두팔은 밀녀낫네.

  애도나리만치 기나긴밤은

  꿈깨친뒤엔 감도록 잠아니오네.


  . . . . .


  대동강뱃나루에 해도다오네. (「닭은 꼬꾸요」)


 이 시는 청각, 촉각, 시각 등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신체의 감각을 의미와 연결하고 있는 이 시에서 정신 또는 이성을 형이상학에 두고 감각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 이성중심의 사유체계를 부정하고 있는 시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정신(이성)과 신체를 별개의 존재가 아닌 불가분의 관계라는 데 그 중요성을 두고 있는 현대 철학의 정신을 얼마나 쉽고 잘 보여주고 있는가. 또한 아침에 닭이 울면 출산의 고통처럼 힘들었던 밤도 결국은 지나가고 멀리 대동강의 나루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보이는 아침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비록 지금은 국권을 빼앗기고 암흑의 처지에 놓여 있지만 우리 민족의 국권회복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는 염원을 비유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시는 “하나의 대상을 지시하는 단일한 언어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조밀하게 함축된 시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소외된 목소리의 존재와 그 가능성, 곧 비논리적이고 복합적이며 또한 즉각적인 이해가 불가능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내포한 타자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김소월의 『진달내꼿』은 1920년대 낭만주의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개인의 감수성을 전달한다는 단순한 의미에서부터 당대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사회문화적 방법으로 또는 현대 철학의 영역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해석하게 한다.




  

1. 1798년 코울리지(S.T. Coleridge)와 함께 영국 최초의 낭만주의 선언서라 할 수 있는 『서정민요집』(Lyrical Ballads)을 편찬.

그 서문에서 ‘시골 가난한 사람들의 스스로의 감정의 발로만이 진실 된 것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언어야말로 시에 알맞은 언어’라고 하여 18세기식 기교적 시어(詩語)를 배척하고 있다. 

네이버, 두산백과 참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1006&mobile&cid=40942&categoryId=3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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