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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trospect Apr 18. 2023

남자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공감 능력 부족"을 검색했다

생각지 못한 결과에 눈이 뜨이다 3

몇 달 만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그가 자주 가는 커피숍, 그가 자주 걷는 길. 나도 그와 함께 걸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설렜다.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남자친구를 보는 순간 오만가지 감정이 들면서 뛰어가 안겼다. 그의 체온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안은 상태로 평생 있고 싶을 정도로 그리움이 컸다. 드디어 내가 그의 생활 반경에 들어가고, 이제 내가 그를 위해 그를 이해하고 그를 배워나갈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장시간의 비행 때문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있던 내가 마땅치 않았다. 계속해서 그 양말이 그 바지와 어울리는지, 그 신발과 어울리는지 나에게 물어왔다. 해외에서 오랜 시간 살았던 남자친구라서 한국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던 남자친구였지만, 나는 감히 누군가의 옷차림이나 스타일링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 옳을까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었기에, 단 한 번도 그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반대로 나의 친구가 그의 긴 머리에 대해서 논할 때, 단칼에 그런 지적은 하는 게 아니라고 잘라 말했던 나인데, 이런 사소한 아이템으로 이제 막 스무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그와의 만남을 반가워하고 있는 나에게 할 소리인가 싶어 서운했다. 그래서 나의 서운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말했다. 그저 양말일 뿐이고 어울리지 않아서 한 소리일 뿐인데 왜 서운한지 이해가 안 간다고. 아무리  자신이 돌려 말하고 예의 있게 말해도 내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말이라서, 나도 남자친구가 예의 있게 내 스타일에 대한 지적을 하면 오픈 마인드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락되었다.

이런 사소한 다툼은 점점 커지고 또 커졌다. 우리에게는 귀여운 규칙이 있었다. 내 남자친구는 입을 쭉 내밀고 뽀뽀해 달라고 기다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좋고 귀여워서, 남자친구가 그 행동을 하면 나는 항상 다가가서 뽀뽀를 해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자친구 역시 그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그럴 것이라고 해서 생겨난 우리의 전통이다. 대부분의 케이스에 남자친구는 입을 쭉 내밀고 있었고, 내가 다가가서 뽀뽀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따라 나도 뽀뽀가 받고 싶어 입을 쭉 내밀고 눈을 꾹 감고 남자친구 쪽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지나도 그가 움직이는 기척도 없자 나는 눈을 뜨고는 "에이~ 너무해. 자기는 저 뽀뽀해 주는 게 그렇게 싫어용?" 하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교를 보태 서운함을 가벼이 표현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0.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일그러졌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나는 계속 그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웃기웃거렸다. 

그는 그랬다. 내 표정이 귀여워서 몇 초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본인의 마음을 의심하는 쪽으로 해석하고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냐고. 나는 그런 게 아니었다고, 남자친구의 마음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서운해서 한 말이었다고,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내가 사과할 때마다 반복되는 우리의 패턴이 있었다. 내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나의 사과는, 내 마음 편하자고 사과를 해서 본인이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며, 그것은 본인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사과보다는 그에게 머리를 식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의 생각을 존중하고 싶었기에, 더 이상 사과할 수 없었다. 냉랭해진 그는 쌀쌀맞은 눈빛으로 나를 흘기는 데에 아무런 고민이 없다. 그는 바쁘다며 나가버렸고, 나는 더 이상의 사과도 할 수 없고, 나가는 그를 붙잡을 수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그렇게 타지에서 새벽까지 그를 기다리다 말라갔다.


나는 우리가 다투고 화해할 때마다 남자친구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해서 서로를 좀 더 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안 싸우면 좋겠지만 서로 각자 다르게 자라온 두 명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의견 충돌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조금씩 더 성숙해졌을 거야. 그래서 나는 우리가 더 돈독해졌을 거라고 믿고 어느 한편으로는 감사해.' 

하지만 남자친구는 대화로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왜 다퉈야 하며, 대화를 해봤자 돌고 돌텐데 그게 어떤 식으로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왜 좋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의 말버릇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이다. 맞다. 우리의 대화는 많이 돌고 돌았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그의 말을 적극 수용해서 이해를 시켜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여 계속해서 내 감정이 왜 생성되었는지,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우리의 어떤 대화가 있었고 어떤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설명에 설명을 더했다. '나를 풀어주려면 이런 수수께끼를 풀어야 해~'라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내 서운함을 풀 수 있는 위로의 방법까지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내 감정에 대한 동의나 위로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다.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잖아. 위안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고? 이해가 가야만 안아줄 수 있는 거야? 그냥 안아주면 안 될까? 그럼 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떻게 네가 하라는 데로 다 해줄 수 있어? 나는 그건 못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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