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한 결과에 눈이 뜨이다 5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소파에 반쯤 누워있었고 나는 꼿꼿이 앉아있었다.
나는 내가 우는 것을 보면 꼴 보기 싫은지 물어봤다. 남자친구는 그렇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우는 것이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꼴 보기 싫은 감정이 든다면 이 관계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남아 있기는 한 것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나의 눈물은 본인이 준비해 놓은 것에 대한 공격이고, 자신이 모자란 남자친구라는 것을 나타내는 방증이기에, 내 얼굴이 서운해져 있고 울려고 하면, '아, 내가 또 뭔가 잘못했구나.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이 사람은 또 이러는구나. 고마움이나 인정은커녕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구나.'라고 생각이 든다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남자친구에 대한 공격이 아니고,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또 그 상황 자체에 짜증이 나서 운 것이라 해도 본인은 계속 저렇게 느낄 것이라고 했다. 내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서, 무섭고 그래서 짜증 날 수 있다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다시 재미있게 시간 보낼 방안을 같이 모색해 보면 어떨까라는 내 제안에 그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너는 자기중심적인(self-centered) 사람이고 나 역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야. 나는 알파 남성(alpha male)인데 너 역시 알파 여성(alpha female)이다 보니 너는 순종적인 남자를 만나는 게 어떨까?'
이 말은 우리가 헤어질 때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우리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관계를 개선해 나가 보자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너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지배적(dominant)이기에 나를 지금도 뜯어고치려고 하잖아. 나는 네가 나를 위해 노력을 1000%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을 때 나는 0, 너는 1000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이제 보니 네가 1000을 할 동안 나도 500% 정도는 하라는 거였네.'
누가 알파고 누가 베타임이 도대체 왜 저 대화 중간에 나와야 했는지 저 당시에는 몰랐다. 모르기에 별 대꾸도 하지 않았고, 별 재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이켜 보면 그는 나와 사랑, 연애를 한 것이 아니라 파워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꾸 다투고, 그 와중에 우리 다툼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를 위해, 또 우리 관계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100%라면 1000%를 할 의지가 있다라고. 그는 매우 좋아했고 감사해했다. 나중에 나에게 천이라는 숫자가 가장 싫다고 상처되는 소리를 여지없이 했지만, 나의 저 다짐이 굉장히 그에게 인상 깊었기에 저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의 뇌리에 깊게 새겨졌던 이유는 내 노력과 의지에 감사해서가 아니라 그가 혼자 플레이하고 있던 파워 게임의 승자로 나아가는데 굵직한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