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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걸어온 몸말

한강의 서랍 속 한 뼘의 저녁

by 청와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1쪽)


[몸말로 읽은 한강의 시]


밥이 걸어온 몸말


1. 한강의 시 한 그릇

아내는 한강 작가의 책들을 읽고 책꽂이에 차려 놓았습니다. 그녀에게 한강은 오래전부터 밥을 지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는 그 밥상 앞에 이제야 조심스레 수저를 들었습니다. 소설이 아니라 시집부터 손에 들었습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그 중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라는 짧은 시, 아니, 말 그대로 몸의 언어로 흘러드는 한 줄의 진동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 시의 중심에는 밥이 있고, 김이 있고, 시간과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있습니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어떤 울림. 이 시를 읽고 해석하려 하기보다,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를 느끼고 있는 내 몸의 반응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것이 몸말의 시작입니다.

2. 몸이 먼저 안 시간

한강은 말합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이 문장을 시간의 철학으로 풀어낼 수도 있고, 엔트로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말의 관점에서 이 구절은 단지 시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몸의 느낌, 곧 존재의 통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의 생각이 아니라 몸의 직감입니다. 말해지기 전의 인식, 즉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는 동안 몸이 먼저 알아채는 변화, 흐름, 사라짐입니다.

그 느낌은 ‘지금’에 갇히지 않습니다. 몸은 시간처럼 직선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은 기억, 감각, 감정, 의지, 인식 등으로 이루어진 다층적 생명입니다. 한강의 시에서 ‘지나가버린 무엇’은 시간 자체라기보다, 감각이 지나가며 남긴 울림입니다. 그것은 몸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3. 밥을 먹는다, 나는 존재한다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이 단순한 진술은 단지 한 끼 식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이 자신에게 건네는 명령이자 요청이며, 그에 대한 응답입니다.
몸이 말한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지’는 생명 자체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나는 밥을 먹었다”는 그 몸말에 대한 실천적 응답입니다.

몸이 말하고, 나는 듣는다.
나는 듣고, 그대로 따른다.

여기서 ‘밥’은 곧 몸의 말이자, 생명의 진동입니다. 단지 물리적 영양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슬픔과 사랑, 따뜻함과 공허함이 함께 스며 있는 존재의 음식입니다. 그래서 이 밥에는 ‘엄마의 손맛’도 있고, ‘그리움의 김’도 있고, ‘시간의 향기’도 있습니다. 밥이 밥이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차린 느낌의 덩어리입니다. 그것은 말보다 먼저 몸의 기억에 스며든 울림입니다.

4. 기억이 피어오를 때

‘지금’은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가 아닙니다.
‘지금’은 내 몸이 느끼는 지금입니다.

‘그때 알았다’는 말은 사실 그때 깨달은 것이 아니라, 몸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의식의 언어로 떠오른 순간입니다.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그 기억을 다시 일깨운 것입니다. 그것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몸말의 시간, 즉 감각의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은 영원히 지나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영원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억이 몸을 통과하는 순간, 그 시간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렇기에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몸의 기억을 재현하고 구성하는 의례가 됩니다.

5. 밥과 똥 ― 존재의 순환

몸은 항상 말을 합니다.
말보다 먼저 울립니다.

한강의 시에서 밥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몸에게 말을 거는 존재입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 말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몸과 밥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대화는 곧 생명의 공명입니다.

한용운은 말했습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이 다 님이라.”

몸말철학의 언어로 말하면,

“밥만 밥이 아니라,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이 밥이다.”

햇살도 밥이고, 바람도 밥입니다.
그리움도 밥이고, 눈물도 밥입니다.
그리고 그 밥은 결국 몸 안에서 소화되고, 다시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똥만 똥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가는 모든 것이 다 똥이다.”

밥이 곧 똥입니다.
그것이 곧 삶의 순환, 반대의 일치를 이루는 자연의 리듬입니다.
그리고 존재는 그렇게 말걸고 응답하며 살아갑니다.
그 단순한 진실이야말로,
몸이 말하는 생명의 철학, 몸말의 철학입니다.

6. 말보다 먼저 온 말

한강의 시는 조용합니다.
그 말은 목소리로 말하지 않지만,
몸에게 가장 선명하게 말을 겁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살아 있다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한강은 단지 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밥이 곧 말이고,
시이고,
지나간 시간이고,
사라진 관계이며,
여전히 흐르고 있는 생명의 떨림이라는 것을,
몸으로 써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를 느끼고 있는 우리의 몸 또한
그 시에 응답하는 하나의 시가 됩니다.

그 밥은 말이 되고,
그 말은 몸이 되고,
그 몸은 다시 시간을 부릅니다.

몸말은 말보다 먼저
말보다 깊이 존재합니다.

한강의 시는 그 말보다 먼저의 말,
곧 몸말로 씌어진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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