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침마다 각종 야채와 과일을 넣은, 냉장고 털기식 해독주스를 마신 지 2주가 지났다. 끝을 모르고 고공행진하는 몸무게를 걱정하는 마음과 고기라고 하면 가리지 않고 식탁에 올리는 나의 식탐이 타협을 했다. 남편도 아침식사는 너무 무겁다고 빵이나 구운 계란만 챙겨 출근했는데, 이참에 주스로 아침 식단을 바꿨다. 고기에 싸 먹을 때만 구입했던 초록 채소, 좋다고는 들었지만 차마 손이 안 가 방울 몇 개만 집어 먹다 썩어 버린 토마토, 연어 사케동에 반해 곁들임으로 산 처치 곤란 아보카도 등이 순식간에 입 속으로 사라졌다.
문제는 이 블렌더가 용량이 600ml 밖에 안 되는 사은품이었다. 오늘로 벌써 두 번째, 푸시식, 연기를 내며 작동을 멈췄다. 한계치까지 꾹꾹 눌러 담는 나의 욕심 탓이었다. 너덜너덜해진 형체들을 숟가락으로 퍼서 씹어 먹었다. 그냥 버릴까 하다 어제 쪄둔 당근, 양배추, 비트가 생각났다. 한 시간 정도 모터에게 쉼을 주었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무기한 파업을 하기 전에 새로운 블렌더를 맞이해야겠다.
검색창에 '블렌더'를 치자 수많은 제품이 나왔다. 이왕 사는 거 돈 좀 투자해 좋은 제품으로 사고 싶었다. 채소가 뭔지도 모르게 갈려서 영재도 마시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언뜻 인스타에서 팔로워 하고 있는 한 분이 공구를 했던 기억이 났다. '바이타믹스'라는 블렌더였다. '이게 뭐지?!' 눈을 의심케 하는 가격. 내가 '0' 하나를 더 붙였나? 음식 갈아먹는 게 백만 원이 넘다니? 댓글에는 너무 빨리 품절됐다고, 제품을 더 풀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이 블렌더로 주스는 기본, 스무디, 죽, 아이스크림 등이 짜잔 하고 만들어졌다. 한번 구입하면, 3대가 쓸 수 있다고 할 만큼 긴 수명을 자랑했다. "오! 좋긴 좋네... 그래도..." 쓰지 않으면 비싼 쓰레기나 골동품 아니겠는가?
마침 주스를 잘 만들어 마시던 지인을 만났다.
"블레더 잘 알아? 추천 좀 해줄래?"
"지금은 10만 원대 쓰고 있긴 한데, 나중에 블렌텐 사려고!"
알고 보니 블렌더계의 쌍두마차, 샤넬과 에르메스였다. 나보다 태어난 지 오래된 명품 브랜드 이름을 이번에 접하게 된 것이다. 계속 듣다 보니 가격이 적당한 것 같다. 보급형으로 50만 원 대도 있다. 갖고 싶다는 열망에 심장이 요동친다. '당근' 중고 어플도 뒤적거려 판매자에게 말을 걸어 본다. 100주년 스페셜 패키지를 포함한 공구가 곧 시작된다. 이제 곧 내 품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이다!
마지막으로 둘 중에 어떤 제품을 결정할지만 고르면 된다. 아직 찾아보지 않은 유튜브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말한다. "이 제품들 좋죠. 가게에서 쓸 정도로. 근데 여기까지 필요 없어요. 그냥 10-20만 원 대도 만족스럽습니다." 김새는 말이었다. 근데 내가 10만 원 이상의 제품을 써본 적이 있던가? 사은품만 써보고는 불만스럽다고 갑자기 백만 원짜리 블렌더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분명 처음에는 가격에 콧방귀를 뀌었는데, 여기저기 구입했다는 인증글에 현혹당한 건 아닌지.
결국 십만 원 대의 가성비 좋다는 블렌더를 택했다. 아직 나에게는 이 정도의 사치가 딱 적당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