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축하해 주고, 축하받는 날이 더 괴롭다
어제는 종일 뿌옇던 안개처럼 우울했다. 남편의 1박 출장과 주말 가족 여행 사이에 생일까지 있어 박진감 넘치는 한 주의 시작인데도 마음이 좀처럼 차오르지 않았다. 첫째를 선생님 손에 떠나보내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탁에 앉아 밥 대신 휴일에 손님이 먹고 간 남은 과자들을 끄집어 입 구멍에 마구 넣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지난번 카페에 갔다 옆자리에 앉은 분이 읽던 책 제목이 떠올랐다. 내용을 보지는 못했지만 동감하는 주제였다. 구글홈에게 백색소음처럼 켜두던 클래식 대신 신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방법을 몰라서 그런지, 내가 원하는 태도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못해 저녁 준비만 마치고, 둘째 하원을 하러 나갔다.
"영재야~ 엄마 왔어."
"엄마~ 연우는? 연우랑 놀 거야!"
"연우 먼저 간 것 같은데? 그리고 오늘은 비가 와서 밖에서 놀기 힘들어."
"집에서 놀면 되지."
"그럼 다음번에 초대해서 같이 놀자."
"아니야, 지금 놀 거야. 집에 가면 심심하단 말이야."
"매번 친구랑 놀 수는 없어. 집은 가족들이 있는 공간이지. 그럼 엄마가 동생을 낳아야 되나?"
"응, 가족이 더 많으면 좋겠어."
"대신 동생은 아기니까 영재처럼 클 때까지 엄마가 종일 안아주고, 놀아줘야 돼. 영재도 장난감이나, 맛있는 것도 나눠줘야 되는데, 괜찮아?"
영재는 떼를 쓰다 곧 울상이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우리는 침묵했다.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을 텐데. 아이는 집에 도착해 곧장 화장실에서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자 주룩 눈물이 흘렸다. '첫째만 안 아팠으면, 지지고 볶더라도 심심하지는 않았을 텐데.'
지난 금요일 저녁 9시경에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첫째 영웅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거론하며 책가방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교과서나 준비물 등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누워서 뭘 보고 듣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괜찮다고 거절을 했는데, 다음날에는 어머니와 새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래도 선물을 챙겨 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아이들 기죽을까,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없어서 못 산다는 몇십만 원짜리 명품 책가방을 사주고 싶다는 이야기인 거지.
월요일 아침, 남편과 둘째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새벽에 잠은 잔 건지, 첫째 영웅이가 기저귀를 갈아줘도 꼼짝 안 하고 잠들어 있다. 돌보미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아침밥을 챙겨야 된다. 언제 깨워야 될지, 깨운다고 일어나지도 않을 텐데. 잠든 애를 어설프게 깨우다 실패하면 점심도 거르고 잠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밥을 데웠다. 소파에 앉아 내 왼쪽 다리를 올려 베개를 끼우고 영웅이를 기울여 앉혔다. 살짝 벌려진 입 사이로 손톱만큼 밥을 넣어 두고 잠시라도 정신이 돌아 삼키도록 발바닥이나 허벅지를 주물렀다. 한입 한입에 희비가 교차한다. '그래, 그거야! 잘 먹네' 꿀꺽 한 번에 잘 넘어가다 푸~ 푸~ 사방에 밥알들이 튄다. 겨우 눈을 떴나 싶으면 몇 초도 안돼서 퓨즈가 나간 것처럼 다시 잠에 빠진다. 아밀라아제가 범벅된 밥이 물이 되어갔다. 한 시간 동안 씨름한 끝에 준비한 식사의 절반 넘게 먹였다.
이제 그만 괴롭히자! 세수와 양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덩달아 내 옷도. 마침 딱 맞춰 선생님이 오셨다. 가방에 대해 언급했더니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단다. 가방이 필요한데 보통 친척들이 해준다, 요즘 가방이 비싸니, 오빠가 해주면 좋겠다고까지. 오빠에게는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있다. 입학 때 외국에 있어서 별도로 챙겨주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뭐 사주고 싶다고 말만 전했다. 실속을 챙기는 분위기라 여태 생일 같은 기념일에도 서로 암묵적으로 간단한 케이크나 말로 때웠는데 이번은 뭐가 특별한가. 오히려 그 호들갑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재활이 더 필요하지만 의무교육이라 어쩔 수 없이 입학 서류를 작성했다. 평일에는 선생님집에서 생활하니까 등본상 배정받을 수 없는 학교라 교육청에 구구절절 사유서를 써냈다. 겨우 허락받은 입학에 감흥이나 설렘이 있을 수 없었다.
영웅이가 태어난 지, 그러니까 아픈 지 7년이 되어 간다. 이제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담담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이 상태에 콧줄 식사를 안 한다는 게 어디냐며 감사해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축하한다며 해준다는 그 초등학교 입학 선물이, 그 블링블링한 반짝거리는 책가방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영웅이의 상태를 확인시켜 줬다. 평생 남들과 다를 것이라는 절망감과 슬픔에 짓눌렸다.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어두운 낯빛을 읽은 짝꿍이 어디 아프냐며 일찍 눕길 권했다. 아이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누워 있는 나를 찾아와 상태를 살폈다. 불 꺼진 방에 열도 없이 코를 훌쩍이는 나를 오래 안아줬다. 잠자리에 든 영재가 물었다.
"아까 울었어?"
"응. 조금"
"왜 울었어?"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랬지 ㅎㅎ 혼자 잘하던데?"
"엄마가 울어서 나도 한번 울었어."
샤워를 하겠다고 혼자 욕조에 들어가 물을 틀었던 걸 말하나 보다.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다 갑자기 또 흐른 눈물에 영재가 욕조를 밟고 올라가 키를 맞추고는 나를 안아줬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영재 눈에도 눈물이 비친 것 같았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 그랬나 보다.
"내일은 아빠가 일하느라 안 들어오시니까, 내일도 엄마 잘 도와줘야 돼."
"응, 내일도 도와줄게. 내가 엄마 많이 사랑하니까."
힘들었던 하루의 해가 졌다. 오늘은 마음껏 우울했으니, 내일은 고요해지길 바라며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