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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공기가 바뀌고, 모든 것이 노출되는 순간)
Prologue — 총장이 움직이는 날은, 공기가 먼저 변한다
강무헌 총장이 직접 움직이는 날에는
사람보다 먼저 캠퍼스의 분위기가 반응한다.
복도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갑자기 꺼지고,
편집실 문 앞에서 웃던 학생들이 말을 삼키며 이어폰을 뺀다.
행정팀은 메신저 답장을 유난히 빨리 보내고,
교수들 목소리는 이유 없이 한 단계 낮아진다.
편집실 모니터는 계속 켜져 있는데
잡담은 사라지고,
카메라 삼각대는 평소보다 반듯하게 벽에 기대 있고,
회의실 화이트보드의 낙서들이 급히 지워진다.
누군가는 조용히 말한다.
“오늘 총장 내려온대.”
그 한 문장으로
캠퍼스는 알아서 정렬된다.
총장이 오면
이 학교는 촬영 중지 상태에 들어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Scene 1 — 오전 9시, ‘총장 호출’
연구실 문을 열자마자
홍달래가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다람달래
“교수님… 교수님… 큰일이에요.”
박양이
“달래 씨, 숨부터 쉬어요.
무슨 일인데요.”
달래는 숨을 한 번 삼키고
속삭이듯 말했다.
다람달래
“총장실에서…
교수님을…
지금 오시라고…”
내 손에 들린 커피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박양이
“…총장실에서요?
저를요?”
달래는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그 순간
심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총장이 교수를 부르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정말 큰 기회
아니면
정말 큰 문제
그리고
지난 몇 주를 떠올리면
이건 절대 기회 쪽이 아니었다.
Scene 2 — 총장실 앞, 말 없는 압력
총장실은
본관 최상층에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공기가 먼저 무거워졌다.
총장 비서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총장비서
“박 교수님,
바로 들어가시죠.
총장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이 열렸다.
총장은 창가에 서 있었다.
등만 보였는데도
그 등에서
압력이 느껴졌다.
바위처럼.
강무헌 총장
“박 교수.”
박양이
“네, 총장님.”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표정은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첫 문장이 나왔다.
강무헌 총장
“학생들이
요즘 당신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나는 숨을 삼켰다.
이 문장은
칭찬일 수도 있고
폭탄의 핀일 수도 있다.
그는 이어 말했다.
강무헌 총장
“문제는—
교수들도
당신 얘기를 한다는 거야.”
아.
이건 분명
문제 쪽이었다.
Scene 3 — 총장의 질문
총장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강무헌 총장
“당신 수업이
학생들한테 흥미롭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칭찬 같았지만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강무헌 총장
“그런데 말이야, 박 교수.
왜 당신 때문에
회의 분위기가 흔들립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양이
“학생들과 소통하다 보니
의도치 않은 오해들이—”
그는 손을 들었다.
강무헌 총장
“박 교수.”
그 한마디에
몸이 굳었다.
강무헌 총장
“오해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잠깐의 침묵.
강무헌 총장
“만드는 사람이 있지.”
그 말이
나를 향한 건지,
다른 누군가를 향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문장은 분명했다.
강무헌 총장
“학과 내 갈등이
내 귀까지 오게 하지 마시오.”
이건 조언이 아니었다.
경고였다.
Scene 4 — 뜻밖의 결정
총장은
책상 위 서류 하나를
내 쪽으로 밀었다.
강무헌 총장
“학생 설명회,
준비 중이라지?”
박양이
“…네.
학과장님 제안으로.”
강무헌 총장
“그 설명회,
박 교수가 주도하시오.”
나는
말을 잃었다.
박양이
“…제가요?”
그 자리는
견제, 사린, 그리고 나.
공식적인 공개전이다.
그런데
총장이 나에게
주도권을?
박양이
“총장님,
그런데 왜—”
그는 말을 잘랐다.
강무헌 총장
“학생들은
당신 방식에 흥미를 느낀다.”
잠시 침묵.
강무헌 총장
“그건 대학의 경쟁력이다.”
그리고
아주 낮게 덧붙였다.
강무헌 총장
“하지만
동료 교수들이
당신을 인정하게 만드는 건
당신 몫이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건
기회가 아니라
시험이다.
강무헌 총장
“해내시오.
난 결과만 봅니다.”
Scene 5 — 총장실 밖, 두 사람
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장견제.
윤사린.
견제가 먼저 말했다.
장견제
“…총장님이 뭐래요?”
사린은
미소를 얹은 채 물었다.
윤사린
“표정 보니
쉽진 않았던 것 같은데요?”
나는 짧게 말했다.
박양이
“이번 학생 설명회,
제가 주도한대요.”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무너졌다.
견제는 분노.
사린은 계산 실패의 얼굴.
장견제
“뭐라고?!
당신이?!”
윤사린
“…총장님이
직접요?”
그때
복도 끝에서
달래가 달려왔다.
다람달래
“교수님!!!
행정팀에서 벌써 난리예요!!!
설명회 박 교수님 주도라면서요!!!”
견제와 사린이
동시에 말했다.
장견제 / 윤사린
“달래 씨!!!”
달래는 움찔했다.
Scene 6 — 여우의 등장
그때
복도 끝에서
정해문 학과장이 나타났다.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정해문
“오호…
총장님이
박 교수에게 판을 맡겼군요.”
모두의 표정이 갈렸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정해문
“박 교수.”
박양이
“네, 학과장님.”
정해문
“이 기회,
잡을 준비 됐죠?”
그 말은
응원이 아니었다.
확인도 아니었다.
시험 통지였다.
정해문
“이번 판의 승패는—
진짜로
당신에게 달렸어요.”
여우는 웃고 있었다.
판은 완전히 새로 깔렸다.
Epilogue — 모든 길은 설명회로
연구실로 돌아오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하루 요약.
총장은 움직였고
나는 호출됐고
주도권을 받았고
함정도 함께 받았고
학과는 술렁였고
소문은 퍼졌고
나는 무대 위에 섰다
그리고
마지막 생각 하나.
이제는
피할 수 없다.
학생 설명회.
그곳이
나의 첫 공식 전장이다.
All is well.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