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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몬드 Apr 17. 2023

나의 날개가 되어 줄래?

(3화. 나는 울었다)

나는 울었다. 여자 탈의실로 들어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이내 꺽꺽 소리를 내며 한참을 울었다. 직원들이 들어와 달래 주었지만 눈물은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은행 업무가 끝나가는 3시 반. 마지막 손님이다 생각하고 호출을 했는데 할머니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끌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걸어온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핼쑥한 얼굴, 깡마른 몸매에 키가 크다. 눈이 부리부리 해서 인상이 강해 보이는 사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 앞에 고객용 의자를 번쩍 들어서 옮겨 버렸을 때 호출을 잘못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요청한 업무는 노모의 체크카드 발급이었다. 업무 자체는 간단했지만 편찮으신 노무가 스스로 자필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팀장님과 상의 후 가족관계 서류를 받으려고 하니 인상을 찌푸리며 본인 신분증을 나에게 던져준다. 뒤에 주소를 보니 할머니의 집 주소와 동일해 가족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업무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팀장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대출담당자였던 팀장은 대출 관련 매뉴얼을 보여주며 좀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선 지장을 받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가족관계 서류를 요구했을 때도 인상이 돌아가던 고객이었는데 지장을 받겠다고 하면 노발대발할 것 같았다. 자리에 와서 사정 설명을 하고 지장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 좀 참는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순순히 할머니 지장을 찍어준다.  

그렇게 업무가 끝나가는 듯했는데 다른 비대면 거래를 요구했다. 상황으로 봐서는 할머니가 비대면 거래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등록이 어려울 것 같다고 안내를 하고 정 하고 싶으면 가족관계서류를 첨부하라고 안내를 했다. 마침 은행 아래층에 위치한 대형마트에 무인발급기가 있어 서류발급이 가능한 점 안내하고 할머님은 거동이 불편하니 내가 모시고 있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이 돌변함을 알아챘다.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쏘아보며 "네가 먼데 우리 엄마를 두고 가라 마라 하냐, 지점장 나오라 그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소리 지를 사람이었는데 참고 있었으리라. 나도 최대한 친절하게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소리를 지르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했다. 

"제가 멀 그렇게 잘못했죠?" 늘 참고만 있던 소리. 목구멍에 걸려있던 말이 그만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와 버렸다. 

당황한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날리고는 어디서 눈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냐며 맞받아 쳤고 그때부터 갑질이 시작되었다. 

본인은 70억짜리 건물주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외국대학을 나왔으며 아는 기자가 있다며 전화번호를 보여줬다. 그리고 본인은 뒤끝이 지저분한 사람이라 친구들도 학을 때는데 그 뒤끝을 보여주겠노라 했다. 

당장 은행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직원의 모가지를 자르고 기자를 불러 기사를 쓰겠다. 지점을 폐쇄 시키겠다. 등 욕만 하지 않았지 온갖 협박을 해댔다. 

하지만 그때는 협박이라 느끼지 못했다. 그냥 손님 잘못 걸렸다. 재수가 없다고 속으로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기사를 쓰겠다는 말에 뇌리를 스치는 단어가 생각났다. "마녀사냥" 그때 한창 유행하던 단어였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속출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게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웠다. 

내 신상이 노출되고 내 가족이 노출된다. 사람들이 내 가족을 이유 없이 헐뜯고 그로 인해 상처받을 가족까지 생각이 미치니 죄송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 결국 또 죄송하다.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죄송하다고 얘기를 했다. 그 남자가 뒤에 멀뚱히 앉아 있던 팀장을 부를 때까지 모든 고객이 다 나가고 없는 텅 빈 객장과 직원들만 앉아 있는, 직원들이 숨조차 죽이고 있는 조용한 창구에서 나 혼자만 서서 그 사람을 응대하고 있었다. 


앞의 상황을 모른다는 듯 나온 팀장의 첫마디는 내 뒤통수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무슨 내용이죠?" 미친 건가.. 본인이 지시한 가족관계 서류로 일이 이렇게 까지 커진 걸 모른단 말인가? 시치미 뚝 때고 무슨 일이냐 묻는 팀장의 어이없는 질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팀장에게도 똑같은 자기 자랑과 기자 운운하며 전화번호 보여주길 반복하며 결국 다음날 다시 오겠다며 아윌비백을 외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난 힘이 빠져버린 다리를 이끌고 탈의실로 들어와 참았던 눈물을 토해냈다. 그렇게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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