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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부부의 결혼 25주년기념 스페인 자유여행기_16

V. Day 6 세비야_02


세비야에서의 첫 식사. 물론, 맥주와 상그리아도 함께!!


숙소 옆으로 좀 걸어가보니 세비야 대성당이 보인다. 숙소에서 5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이다. 내일 가 봐야지. 오디오가이드도 준비했다. 그런데, 세비야 대성당 주변으로 말이 끄는 마차가 다닌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인데, 마부들이 우리말로 호객행위도 하네. 뭐 관광 겸 마차를 타고 세비야 구경을 하는 것도 나름 재밌겠다 싶지만, 결정적으로 우리 부부가 냄새에 약하다.


와, 말과 말똥 냄새가.. 거리 군데 군데 말똥도 보인다. 

오우 노! 마차 관광 노 땡큐! 아니 ‘No gracias!!’


그나저나 확실히 태양이 그라나다보다 더 뜨겁다. 그늘을 찾아가자. 자세히 비교검색하기도 귀찮다. 타파스바, 레스토랑, 카페가 줄지어 있는 지라, 일단 가까운 곳에 들어가고 보자며 한 곳에 들어갔다.


Cervecería Giralda Bar

Cerveza가 맥주, Cerveceria는 양조장이니, 히랄다 바에선 맥주를 한잔 해야 할 것 같은데? 


웨이터를 불렀는데, 영어를 못하는 지, 영어를 하는 사람을 불어주겠단다.

몸집이 큰 웨이트리스가 왔는데, 예쁘면서 씩씩하며 명랑하다. 영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메뉴 고르면 부르라길래, 일단, 맥주 한 잔 씩을 시켰다. 그래 오전내내 알코올 공급이 없었어.

메뉴를 골랐다. 빵은 기본으로 깔려있었고(우린 처음에 이거 공짜인 줄 알았다.),

Spanish omelette with cumin sauce 

Shiitake mushrooms, alioli, prawns and pico de gallo sauce

그리고 당연하게 상그리아! 아예 저그(Jug)로 시켰다. 그렇다. 아직 우린 달달한 알코올음료가 필요하다.


내부도 넓지만, 저 안쪽으로도 좌석이 있는 듯했다. 일하는 사람이 적어서 많이 바쁘다. 주문 받고, 음식 가져다주고, 계산하고 나면, 다시 테이블 정리하고.. 미소 잃지 않고 일하는 게 용하다 싶다. 어딜가나 서비스업이 쉽지가 않아. 게다가 스페인은 팁도 안받는다. (이건 너무 좋다. 최근 미국 쪽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불친절과 팁플레이션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팁 없는 문화권이 훨씬 나은 듯 하다.) 


하여간, 메뉴 성공~ 맛있다. 찾아보니, 이 타파스바가 평이 좋았다. 내부 인테리어도 인상적이고,음식도 맛있으면서, 친절도 하고. 세비야에서의 첫 식사로서 좋은 인상이 남았다.


메트로폴 파라솔 그리고 엠빠나다

세비야대성당 옆을 지나 메트로폴 파라솔까지 걸어갔다. 골목을 지나다보니 플라멩고 박물관도 보인다. 그래, 내일 플라멩고를 보기로 했지. 바르셀로나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세비야가 플라멩고의 중심지라길래 이곳에 와서 보기로 했었다.

조금 더 걸으니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이 나온다. 대형 목재 구조물이다. 모양이 언뜻 파라솔 내지 버섯을 닮았다고 해서 "세비야의 버섯"이라고 불린다는 데, 하여간 중세풍의 세비야 대성당 같은 건물들에 더해서 현대적인 독특한 외관이 안어울릴 듯하면서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전망대와 포토포인트도 있고, 아래쪽에 상점과 레스토랑 등의 시설도 있다. 


전망대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사진을 찍고 둘러보다가 저녁식사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스페인 기준으로 오후 7시는 약간 이른(?)느낌이 있어서 저녁때 마실 와인(까바)를 먼저 사러 가기로 했다. 세비야 시내 엘 코르테 잉글레스를 찾아라.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스페인은 엘 코르테 잉글레스가 꽉 잡은 듯.


일단 세비야 지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싶어 전체적으로 스윽 구경을 했다. 6층에는 gourmet experience란 섹션이 있어서, 와인샵도 있고, 식당도 있었다. 테라스쪽으로 바와 레스토랑이 있는데, 밤이 되면 야경이 멋질 것 같다. 내일이면 추석. 음력 8월 15일이니 스페인의 달은 어떻게 보일까도 궁금하다.


자, 이제 슈퍼마켓 – 이것도 다른 곳과 동일하게 지하에 위치해 있다. -으로 가서 과일하고 와인을 봤다. Reserva이면서 맛은 brut인 Cava. 이 기준만으로도 여러 개 있다. 이런 기준이면 20~30 유로 사이의 가격이다. 적당하다. 


맘에 드는 병 모양의 까바를 사고 나오는 데, Malvon이라는 엠빠나다를 파는 곳이 있었다. 둘째가 조금 있다가 다시 산세바스티안에서 세비야로 비행기를 타고 온다고 했는데, 스페인에 와서 먹은 아르헨티나식 만두(?)인 엠빠나다를 몇 번 이야기한 것이 생각났다. 좋아. 웰컴 만두다.

메뉴판도 스페인어, 파는 종업원도 예쁘장하고 친절은 한데, 영어는 전혀 못한다. 에구. Jamon Y Queso, Atun, Berenjena parmesana.. 뭔가 상상도 안된다. 하여간 걸려있는 큰 메뉴판에 6개 들이 1박스에 얼마..라고 쓰여있길래, 그것을 선택하니까, 자 뭘 담아줄까요?라고 말하는 듯.

“chicken!”

“chicken?” 왠지 그건 아닌데? 하는 표정이다.

“Not popular?”

“No, no.” 역시.. 에이 할 수 없다.

“Recommend, por favor” 

했더니, 담아준다. 물론, 넣기 전에 물어는 본다.


담으려는 것 중에 “goat?”이라고 묻길래, 그것만 “No!”라고 했고, 나머지는 추천해주는 대로 담았다. 6개에 17유로. 물론, 우리나라 왕만두와는 다른 것이긴 하지만, 좀 비싸네? 하여간 별미라니 이따가 작은 애가 오면 함께 야식으로 먹자.


테라스에서의 저녁식사


아까 돌아볼 때 봤던 테라스 카페가 어떨까 싶어진다. 저녁 장소를 또 찾아헤매느니, 휘둥근 달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게 어떨까? 다시 올라가보기로 했다. 역시, 해가 지니까 야경이 좋다. 여기서 저녁을 먹자! 


그런데, 웨이터가 영어가 전혀 안된다. 멀쩡하게 잘생긴…그러나, 12라는 숫자를 영어로 뭐더라 곰곰 생각해야 하는 그런. 엠빠나다 가게의 아가씨보다 더 의사소통이 안된다. 안되겠는지 ‘Ingles’(영어)되는 스텝을 불러오겠단다. 


그런데, ‘아니 이런 수준의 영어도 안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 게 아니라, ‘야, 이렇게 영어니 뭐니 신경 안써도 잘 사는 구나. 글쎄, 임금이 얼마나 되는 지 모르겠다만, 사는 데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 여행 며칠 만에 노력, 경쟁, 위기, 자기계발, 생존, 노후대비… 이런 단어들이 녹아내리고, 여유, 낮잠, 와인, 긴 식사, 쉼… 이런 류의 단어들이 종유석처럼 자라났다고나 할까. 상상의 나래가 이어진다.


엄청난 부나 지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이 날씨 좋고 역사적 유물이 많아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나라에 테어나, 대략 즐겁게 학교를 다닌다. 영어? 수학? 필요없다. 로스쿨? 그런 걸 왜가? 의무교육이나 마친 후에 식당에서 일하면서 살아간다. 사는 데 전혀 지장도 없다. 


식당이 싫어? 그럼, 호텔업 hospitality. 아니면 버스기사나 철도노동자는 어때? 긴 점심시간, 일이끝나고 나면 8시부터 12시까지 긴 저녁.. 술, 맛있는 음식, 파티, 노래 하하하. 좋겠다. 올리브 농사나 포도 농사,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건 어떨까? 


조금씩 저축을 할 수 있다면, 20년 적금을 들어서, 마련한 돈으로 작은 호텔을 사자. 아예 짓든지.그리고 호텔업이나 민박업을 하는 거야. 관광객은 내가 죽기 전까진 줄어들지 않을 거야. 하하하. 기분이 좋네. 건강한 이성을 만나 결혼이든 동거든 하고. 뭐 못 만나면 그냥 살구. 


상상만으로도 미소 짓게 되고, 성격이 좋아지는 것 같다. 물론, 진짜 스페인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 이런 말 하면 헛소리한다고 따귀 맞을지 모른다. 어쩌면 심각한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 때문에 거의 재난 상황일 수도 있지. 하지만,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그리고 세비야까지 내 눈에 비친 스페인의 모습이라는 게 그렇다는 거다. 아님 말고.


한창 이런 상상을 아내와 이야기하는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웨이터가 영어 메뉴판을 가져와 건넨다. 우선 화이트와인 한잔씩 시키고, 메뉴를 골랐다. 

빵, Vieiras con ajo blanco라는 가리비요리와 데리야끼소스 파스타.

특히 가리비요리가 와인과 잘 어울렸다. 

하여튼, 스페인에 와서 맛없게 먹은 식사가 없다. 아내가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시켰던 치아바타가 충분히 데워지지 않아 맛없었던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게다가 테라스의 야경이 환상적이다. 구름이 없고 공기가 맑아서 그럴까? 스페인에서 보는 달은 훨씬 맑고 밝은 것 같다. 이 정도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상당히 비쌀 것 같은데, 가격은 여느 레스토랑과 큰 차이 없어 보이는 것도 장점이랄까. 하여간 만족스러운 공간과 음식이었다.


늦은 밤 (아니 아직 이른 밤) 타파스 바에서 한잔 더..


9시가 넘어서 둘째에게 연락이 왔다. 숙소에 도착했단다. 우리도 서둘러 숙소로 갔다. 며칠 만에 보니 더 반갑다.


엠빠나다와 와인으로 파티를 할까 하다, 일단 나가자고 했다. 세비야의 첫밤인데, 호텔에서 보내긴 좀 그렇잖아. 게다가, 숙소로 돌아오면서 본 세비야의 밤 거리가 솔직히 너무 아름다웠다. 달도 밝았지만, 전반적으로 약간 오렌지색 톤의 거리와 아직 한창 음식과 술을 즐기고 있는 타파스바의 사람들의 모습이 바깥으로 나가 한 잔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자, 어디를 갈까? 주변에 갈만한 곳이 참 많다.

먼저 가려던 바는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없었다. 10시가 넘었는데 말이다. 우리에겐 늦은 밤이지만, 여긴 한창이다. 그 근처의 다른 곳을 찾았다. 타파스바였다.


우리는 맥주와 클라라 한잔씩, 둘째는 오징어요리와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를 시켰다. 그래 맞다. 스페인에선 상그리아도 많이 마시지만, 여름에 틴토 데 베라노도 즐겨 마신다고 했다. 그냥 와인에 레몬맛 탄산음료(환타)를 섞은 후 얼음 넣어 주는 간단한 음료.

오징어요리는 Calamar a la brasa con parmentier de oloroso y aceite de pimenton이란 긴 이름이었는데, 뭐 구운 오징어를 감자퓨레 정도에 올리고 피망오일을 뿌렸다는 뜻이란다. 빵과 함께 먹기도 좋다.


어쨌거나 맛있다. 호텔에서 대충 먹고 자지 않길 잘했다.


한 잔씩을 하며 다양한 인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둘째가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학교에는 유럽전역 뿐 아니라 남미 쪽에서도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많이 온다고 한다. 말 그대로 다양한 인종의 전시장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보는 사람들/학생들/젊은이들은 - 관광객이 아닌 듯 보이는 사람들 -은 상당히 건강하고 건장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미 넘친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쩌면 이런 건강미가 더 예쁘고 잘생기게 보이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별로 심각하지 않은 심각한 이야기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세비야 대성당 부근 건물과 골목길, 그 위로 보이는 달이 정말 예뻐보였다. 

자유로움과 편안한 마음이 행복감이 되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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