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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부부의 결혼 25주년기념 스페인 자유여행기_21

VI. Day 9 마드리드_03


츄러스 at 솔광장


너무 피곤했다. 이동을 최소화하려 숙소위치를 애당초 가야할 곳 근처로 잡고, 차량으로 한시간 이상 가야 하는 관광지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식으로 일정을 계획했지만, 그래도 하루 2만보 이상은 꾸준히 걷게 된다. 지속적으로 걷지 않더라도 성당이나 미술관 등 거의 모두가 서서 관람을 해야 하는 지라 여행의 처음 3-4일 이후엔 체력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행. 한 살, 아니 하루라도 젊을 때 더 많이 가야 한다.


우리 모두 9시간을 자고서야 겨우 일어났다. 두꺼운 커튼으로 아침해를 가리고 한껏 잤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씻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우선 솔광장 근처 츄러스 식당

처음 가려했던 곳은 너무 붐벼서, 다른 곳을 찾았다. 여기도 나름 유명한 듯. 여기도 이미 가게 안은 가득 차 있다. 다행히 한 가족이 일어나기에 기회를 얻었다.

츄러스 두 종류, 딥핑을 위한 쵸코와 커피


술 없이 식사(간식?)를 한 건 스페인에 와서 처음인 듯하다. 

츄러스 자체가 튀김이라서 그런지 술보다는 커피가 어울린다. 스페인사람들은 이것으로 해장도 한다니, 말 다했다.


달달하고 따뜻한 츄러스를 핫쵸코에 듬뿍 찍어 한 입 베어문다. 입 한가득 채워지는 단 맛. 여기에 쓴 커피. 환상적이다. 정말 맛있다. 


간단히 먹으려 했으나, 간단하지 않은 든든한 아침식사였다. 

먹고 나서 나오니 바로 옆은 스페인 여행 기념 선물로 많이 사오는 뚜론 가게였다. 구경도 하고 시식도 하고. 역시나 달달한 뚜론이 힘을 북돋운다.

그러고 나서, 슬슬 솔광장을 산책했다. 벌써 해가 쨍쨍하고 덥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0 km (Kilometer Zero)지점부터 가자!


찾기는 쉬웠다.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찍을 순서를 기다리는 곳이 바로 거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처럼 솔광장 중심에 위치한 이 마크로부터 스페인의 모든 도로가 시작된단다. 여기를 밟고 나면 다시 스페인에 온다고 해서, 모두가 이 마크 위에 발을 얹고 사진을 찍고 있다. 물론, 우리도 찍었다. 진심으로 다시 오고 싶다.

광장을 둘러보니 저 멀리에 Tio Pepe 광고 표지판이 보인다. 밤에 보면 예쁘고 이를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는다는 데, 대낮이라 그런지 큰 감흥은 없네. 


그보다 솔광장의 곰돌이가 보인다. 공식명칭이 ‘El Oso y el Madroño’라는 데, 곰과 마드로뇨(산딸기?)나무란 뜻이라고 한다. 0km 표지처럼 솔광장 아니 마드리드 명물 중 하나라,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있다. 우리도 줄을 서있다가 찰칵. 


001 버스 - 공짜는 참 좋다. 그리고 언제나 옳다. 


솔광장 근처를 걸으며, 쇼핑몰, 의류상점도 몇군데 들렸지만, 비싸다.  환율 효과가 강력하다. 쇼핑은 패스~ 

어디를 갈까? 미술관 어떨까? 어제 프라도 미술관의 감동과 여운이 아직도 남았다. 그런데, 둘째가 검색해보더니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주말이라 일찍 닫는데, 빨리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다. Why not?

걸어갈 수 있는 거리긴 하지만, 햇볕도 강해서, 메트로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가까운 메트로 역으로 내려갔다. 어라? 카드를 사고, 탑승권을 충전해서 타야하는 데, 비용이 2.5유로+1.5유로*3명. 복잡도 하고, 너무 비싸다. 이것도 패스~

버스를 타보자.

아토차 역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라. 가까운 정류장을 보니 마침 있다. 001번. 탔다. 일단 Hop-in~

어? 그런데 돈을 안받네?? 001, 002번은 공짜라네요. 하하하. 완전 gracias! 지하철 탔으면 어쩔 뻔.


어쨌거나, 공짜는 참 좋다. 그리고 언제나 옳다!!


레이나 소피아 그리고 게르니카

레이나 소피아.. 레이나가 뭐지? 소피아는 이름? 성? 찾아보니 정식이름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다. 줄여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내지 소피아 왕비 미술관으로 불리는데, 따라서 레이나(reina)가 왕비라는 뜻이다. 


며칠 전 그라나다 타파스바에서 웨이트리스 이름이 소피아였다. 그냥 ‘올라!’ 내지 ‘헬로?’라고 불러도 손님이 너무 많아 바쁘면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어 잘 안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난 종업원이 명찰을 달고 있으면, 이름을 외워서 필요할 때, ‘올라’ 대신 이름을 부른다. 그때도 “소피아!!”라고 불렀다. 그러면 안올 수 있나? 하하.


그 생각이 나서 아내와 둘째에게 이야기 하며 “종업원이 근처에 잘 안오면 이름을 불러봐. 올라 보다는 잘 들릴 거 아냐. 그라나다에서도 ‘소피아!!’라고 이름을 불렀더니 재깍 알아채고 오더라구”라고 설명하며, ‘소피아!!’를 약간 크게 말했는데..


순간, 앞에 가던 스페인 아주머니들이 휙 뒤돌아보는 게 아닌가! 마치 우리 나라에서 길을 가다“순자야!”라고 불렀더니, 전혀 안면 없는 여러 아주머니들이 뒤를 돌아보듯이 말이다. 그분들이 지나가고 나서 한참을 웃었다.


어쨌거나, 둘째 말로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도 프라도, 티센-보르네미사와 함께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으로서 유명한 미술품이 많다고 한다. 특히 피카소의 게르니카.

미술관 앞에 도착해서 줄을 섰는데, 오지랖퍼 직원이 오늘 두시 반이면 문닫는다고 줄 선 사람들에게 안내 중이다. 알아요~ 무료니까 시간 되는 데까지 볼라네요 하며 서 있는데, 조금 있다가, 다른 입구에서도 들어갈 수 있다. 어여 저쪽으로 가봐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다시 한번 Gracias! 냅다 서둘러 그 입구로 갔다. 드디어 공짜표를 받고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입장.

1층(우리나라로 치면 2층)으로 향했다. 게르니카부터 봐야지. 그림이 엄청 크다. 이렇게 큰 그림이었다니. 몰랐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로, 프랑코 군을 지원하는 나치가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해 2천여 명의 시민을 숨지게 한 폭력을 표현한 그림이다. 사실적인 표현을 한 그림이 아니고, 우리가 ‘피카소’하면 떠오르는 표현법과 단조로운 색상으로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쓰러진 병사, 미친 듯 우는 말 등을 그려냈다. 


미술책이나 인터넷의 화면에선 여러 번 봤던 그림인데, 막상 눈앞에 마주하자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벽면 하나 가득 채워진 어둡고 절망적인 모습들이 확 다가왔다. 아, 이래서 이 그림이 유명하구나…딱 느껴졌다. 


다른 전시실로 이동해서,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미로와 칸딘스키 작품 옆에서 사진까지 찍고 나왔다. 그림 옆에서 찍으면 작가처럼 보일 줄 알았는데, 막상 찍힌 사진을 보니, 그렇진 않구만. 슬프다. 뭔가 깊이있고, 품위있으면서 멋있는 중년이 되고 싶었는데, 머리는 없고, 배는 나왔고, 작가틱해보이지도 않고, 그리 지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급우울.. 하여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작품들을 무료로 봤다는 것에 위안 삼으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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