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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증여의 시대..

시장은 알아서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연쇄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시장은 상당부분 예상 밖의 문으로 빠져나갈 것이 예상된다. 정문인 ‘매매’가 잠기자 곧장 측면의 ‘증여’로 발길이 쏠리는 것이다. 한때 부유층의 상속세 절감 수단 정도로 취급되던 증여가 이제는 규제의 풍선효과이자 시장 심리에 가장 정직한 반응으로 부상했다. 이 현상은 법과 제도의 틈새를 노린 편법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자산 이전 지도가 재편되는 신호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사실, 증여 급증은 이번 정권들어 발표된 6·27 대책 이후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2024년 4분기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증여 비중이 10월 14.4%, 11월 13%대로 뛰며 이미 강한 신호를 보냈다. 전국 평균 비중(10월 5.8%, 11월 5.5%)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고, 강남 3구는 구에 따라 20~55%까지 치솟았다. (source: 한국부동산원 아파트 거래원인별 통계)


2025년 가을에는 이 흐름이 더 선명해졌다. 9월 서울의 부동산 증여 수증인 2,107명으로 전월 대비 44.1% 급증, 2022년 12월 이후 처음 2천 명을 넘겼다. 같은 달까지 전국 집합건물 증여는 2만 6,428건으로 3년 만의 최대치라는 집계도 나왔다. 상승장 기대와 규제 시그널이 겹치자 “팔지 않고 가족 안에서 넘긴다”는 경향이 구조화되었다는 것이다.


2023년 증여 취득세 과세표준을 ‘시가인정액’으로 바꾼 직후에는 비용 증가 탓에 증여 비중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으나, 2024년 하반기부터 다시 반등했다는 것은 제도 변화가 증여의 타이밍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스위치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증여일까? 증여가 급증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세금, 규제, 그리고 사회 구조적 또는 세대적 수요가 한데 얽혀, 유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규제가 만든 ‘상대 비용’의 변화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는 시세차익의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징벌적’ 구조다. 그리고, 종합부동산세 역시 인별 과세이기는 하나, 고가 주택 한 채만으로도 부담이 상당하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는 ‘파는 것’보다 ‘물려주는 것’의 매력이 부각될 수 있다. 특히 전세보증금이나 주택담보대출을 자산과 함께 넘겨 증여세 과세표준을 낮추는 ‘부담부증여’는 한때 가장 영리한 절세 전략으로 각광받았다. 물론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는 허가 대상이 되는 등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순수 증여가 다시 늘고 있지만, 여전히 증여는 높은 양도세의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제도 변화가 만든 ‘타이밍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시장은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최적의 타이밍을 찾는다. 2023년 증여 취득세 과세표준이 공시가격에서 실거래가에 가까운 ‘시가인정액’으로 바뀌면서 세 부담이 늘자 증여 시장은 잠시 숨을 골랐다. 하지만 이내 시장은 ‘더 오르기 전에, 규제가 더 강해지기 전에’라는 오래된 학습효과를 발휘했다. 정부의 정책 예고가 오히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조급함을 부추겨, 자산 이전을 서두르게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영끌’마저 불가능한 시대의 구조적 수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천정부지로 솟은 집값과 강력한 대출 규제는 청년 세대가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부모 세대에게 증여를 단순한 절세 전략이 아닌, 자녀의 주거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으로 만들었다. 10년 주기로 활용 가능한 증여세 공제 제도를 이용한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분할 증여’가 자산가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자산 이전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 구조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정권 들어 발표된 정책들(6.27, 9.7 그리고 10.15대책까지)은 앞으로 부동산증여와 관련해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필자가 보기에 시장을 옥죄기 위해 고안된 이들 정책들은 앞으로 증여를 더 증대시키는 영향을 주게 될 것 같다.


특히 10·15 대책은 유상 거래의 문턱을 결정적으로 높였다. 그 중 서울 전역과 경기 핵심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2년의 실거주 의무를 부과한 조치가 가장 눈에 띄는데, 여기서 주목되는 지점은, 이 까다로운 허가제가 매매·교환 등 ‘유상 계약’에 적용되며 ‘순수 증여’는 원칙적으로 허가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정부는 편법·위장증여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는 불법 채널을 막는 조치일 뿐, 합법적인 순수 증여의 매력을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까다로운 허가 절차와 실거주 의무를 피하려는 수요가 ‘순수 증여’로 쏠리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고나 할까.


게다가 ‘보유세·거래세는 추후 TF에서 검토 후 도입’이라는 신호가 더해졌다. 시장은 이를 향후 증세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선증여를 앞당길 것이다.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의 칼날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움직이려는 건 시장의 본능이니까.


결론은 명확하다. 증여 증가는 규제의 실패라기보다 ‘심리의 정직한 반응’이다. 돈줄을 조이고 허가 문턱을 높여도, 자산을 지키고 다음 세대로 이전하려는 본능은 언제나 다른 길을 찾는다. 그러므로 당국의 질문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여야 한다.


관련하여 몇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세제는 메트로놈과 같아야 할 것이다. 보유세나 거래세 조정은 방향과 속도, 순서를 중장기 로드맵으로 예고하고, 불복·체납·임대료 전가 등 데이터를 보며 천천히 그리고 일관성있게 움직여야만 한다. 2020~2022년 보유세 급증과 조세저항, 이후 정권교체 후 급완화가 남긴 학습효과는 세제의 예측 가능성이야말로 시장 신뢰의 핵심임을 보여준 명백한 사례 아니겠는가?.


둘째, 여러 전문가가 제언하듯 공급은 단순히 큰 계획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달력이어야 한다. 9·7대책의 큰 숫자(연 27만, 5년 135만)가 구역별·연차별 인허가·착공·분양·입주로 투명하게 공개될 때, 사람들은 ‘기다려도 살 수 있다. 아니 더 좋은 기회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때 비로소 증여도 과열이 아닌 합리적 타이밍의 함수로 수렴하리라.


당연하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 관리는 언제나 중요하다. 편법·위장증여는 강력히 단속하되, 합법적 순수 증여는 과도한 마찰 없이 투명하게 이행되도록 절차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허가제의 적용 범위(유상/무상), 자금조달 심사, 과세·취득 절차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조세저항이나 민원제기가 없도록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요컨대, 6.27대책에서 레버리지를 죄었고, 10.15대책은 유상 거래의 문턱을 확실하게 높였다. 물론, 9.7대책에서 공급계획을 내걸었지만 단기 마찰을 바로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에 세제는 ‘검토 후 도입’이라는 안갯속 신호가 겹치면서, 단기간에는 증여 쏠림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거래의 길이 막히고 보유의 부담이 커지는 한, 증여는 가장 유력한 선택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충격 요법이 아니라, 안심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명확한 정책의 리듬이다. 정책의 힘은 법 조문이 아닌,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읽고 예측 가능한 길을 열어주는 데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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