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ore FOMO. But…
2025년 9월 말, 시장은 짧지만 급격한 조정을 겪은 후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건강한 조정이었다"고 안도하며, 연말 상승장(산타 랠리)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김개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차트를 분석하며 비트코인이 주요 지지선에서 성공적으로 반등했고, 상승 추세로의 복귀가 임박했다는 기술적 신호를 포착했다.
2025년 10월 8일 오전 9시, 김개미는 확신에 찼다. "지금이 바로 공격적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다." 그는 단기적인 큰 수익을 위해, 바이낸스(Binance) 선물 거래소에서 가장 대중적인 'BTCUSDT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 계약에 레버리지를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김개미는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마진 모드: 격리 마진(Isolated Margin)
(격리 마진은 포지션에 투입한 증거금($5,000)만 위험에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교차 마진(Cross Margin)의 경우, 선물 지갑에 있는 모든 자산을 증거금으로 사용한다.)
투자 원금 (초기 증거금): $5,000 (약 690만 원)
레버리지: 20배 (20x)
포지션 방향: 롱 (Long, 가격 상승 예측)
진입 시점 비트코인 시장가 (Entry Price): $112,000
김개미의 거래창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표시되었다.
총 포지션 규모 (Size): $5,000 × 20배 = $100,000
계약 수량 (Quantity): $100,000 / $112,000/BTC ≈ 0.8928 BTC
강제 청산 가격 (Liq. Price): $106,980.50 (이 가격까지 내려가면 거래소는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포지션을 강제로 종료, 즉 강제매매를 실행한다)
이로써 김개미는 단돈 $5,000을 보증금으로, $100,000(약 1억 3800만 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게 되었다. 그의 화면에는 '미실현 손익(Unrealized P&L)'과 '수익률(ROE %)'이 0에서 시작하여 실시간으로 깜빡이기 시작한다.
10월 9일, 비트코인 가격이 $113,500까지 상승했다.
미실현 손익: +$1,339 (약 +185만 원), 수익률(ROE %): +26.78%
김개미는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전고점을 뚫을 거야."라며 포지션을 유지한다.
그런데, 10월 10일 오후 갑자기 "미국 정부가 중국산 기술 제품에 대한 100%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라는 속보가 전해졌다. 미·중 무역 갈등 재점화 우려로 글로벌 위험자산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비트코인 가격은 김개미의 진입가 아래인 $110,500로 하락한다.
미실현 손익: -$1,339, 수익률(ROE %): -26.78%
거래창 수익률은 녹색에서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김개미는 "일시적인 패닉일 뿐이야."라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10월 11일 새벽 아시아 시장이 개장하자 매도세가 거세지며, 주요 기술적 지지선이었던 $108,000가 힘없이 무너진다.
미실현 손익: -$3,571, 수익률(ROE %): -71.42%
김개미 계좌의 증거금이 70% 이상 사라졌다. 거래소 앱에서 "마진 콜: 증거금이 부족하여 청산 위험이 높습니다. 증거금을 추가하거나 포지션을 축소하십시오"라는 강력한 경고 알림이 뜬다. 그럼에도 김개미는 애써 알림을 무시하며 반등의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10월 11일 오전, 시장에 결정타가 날아든다. 특정 대형 투자자(고래)가 수천 개의 비트코인을 시장가로 던졌다는 소문이 퍼지며,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의 투매(Panic Selling)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호가창은 거대한 매도 벽으로 가득 차고, 가격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전 10시 15분: 비트코인 가격, $105,000 붕괴
오전 10시 28분: 비트코인 가격, $102,000 붕괴
오전 10시 31분: 비트코인 가격이 $100,000라는 강력한 심리적 지지선마저 무너뜨리며 $99,800까지 하락한다.
바로 그 순간, 김개미 씨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바이낸스의 청산 엔진(Liquidation Engine)이 자동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그의 0.8928 BTC 규모의 롱 포지션은 시장에 남아있는 가장 가까운 매수 호가에 강제로 매도되었다.
확정 손실: ($112,000 - $106,980.50) × 0.8928 BTC ≈ $4,483 (청산 가격 기준)
남은 증거금: $5,000(원금) - $4,483(손실) - (수수료 등) ≈ $0
김개미의 휴대폰에는 최종 사망 선고와 같은 알림이 떴다.
"귀하의 BTCUSDT 무기한 선물 포지션이 강제 청산되었습니다."
그의 선물 지갑 잔고는 $5,000에서 $0.00으로 바뀌어 있다. 불과 며칠 만에 그의 확신과 희망, 그리고 원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수십만 명의 투자자들이 겪었던 대규모 청산 사태의 현실이다. 김개미와 같은 수많은 포지션들이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청산되면서 시장에 엄청난 매도 압력을 가했고, 이는 더 큰 가격 하락과 또 다른 투자자들의 연쇄 청산을 불러오는 비극적인 악순환을 만들었던 것이다.
부동산, 주식 등으로 남들이 큰 돈을 버는 것을 지켜만 보며 벼락거지가 된 느낌에 속쓰려했던 김개미. 이제 더 이상 FOMO는 없다며 야심차게 발을 들여놓은 가상화폐투자. 하지만, 세상 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