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묘생을 위해 노력할게요
새로 들어온 집은 이전보다 넓었지만 시설이 여러모로 형편없는 집이었습니다. 급히 구한 집이기도 하고, 금전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으며, 저나 모디나 지금보다 더 젊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겠다 싶어 들어왔습니다만 돌이켜보면 대체 어떻게 그곳에서 4년을 살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재개발만 기다리고 있는 구역이라는 핑계로 집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집주인이 각종 보수를 하기는 했는데 완전히 비전문가 그 자체라 분기별로 문제가 터지고는 했답니다.
원래는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는 집이었는데,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약을 해 버린지라 간신히 허락은 받았지만 계속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기도 했고요. 할 말이 참 많은 집이지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마음이 불편한 곳이라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사람에게든 고양이에게든 최악만 면한 환경이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 집엔 덧문이 하나 있었는데, 잘 닫고 다니면 모디가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저절로 열려 버리거나 모디가 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대강 달려 있어서, 매일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창문도 허술하기 그지없었지요. 바람만 불었다 하면 우르릉 하고 울리는 소리가 집 전체를 진동시킬 정도로요.
또한 오래된 골목에 있는 집이다 보니 주변에는 길고양이들이 꽤 있었답니다. 모디가 이사를 오자 고양이 냄새가 났는지 길고양이들이 자꾸 집 주변으로 몰려들더군요. 화장실 창문, 방 창문 등에서 멀뚱히 안쪽을 쳐다보는데 모디는 호승심이 발동했는지, 친분을 쌓고 싶었는지 매일 길고양이들과 눈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길고양이들이 허술한 방충망을 뚫고 집 안까지 침범을 하더군요. 사실상 싸구려 모기장을 방충망이랍시고 방범창 사이에 끼워 둔 것에 불과했기에, 유연하고 모디에 비해 몸집이 훨씬 작은 길고양이들은 잘도 그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길고양이들은 제가 집에만 들어오면 화다닥 창문 틈으로 다시 도망쳤는데, 모디와는 어찌저찌 평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서로 신경전 중이었는지도요.
어느 날은 제가 문을 열자 다같이 침대 위에서 한덩어리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는데, 사료 그릇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두 마리 이상이 들어오면 다같이 어울려 놀았는지, 그들끼리 합심해서 모디에게 대항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길고양이들이 나가면 그들이 마음대로 집 안팎을 드나드는 것이 부럽기라도 했는지, 모디는 화장실 쪽 창문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있고는 했답니다. 하지만 모디가 사료를 자꾸 뺏기는 꼴도 볼 수 없었고, 병균이라도 옮아서 아프면 안 되니 제가 따로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챙겨 주면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 길고양이들이 들어오지 않게 되자 모디는 안달이 났는지, 부쩍 창문을 오래 쳐다보다가 결국 일을 내고 말았어요. 창문을 열고 방범창 틈새로 뛰쳐나간 것이지요. 아무리 구식 나무 창문이라고 해도 그것을 열고 나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제 예상보다 모디의 힘은 훨씬 셌답니다. 집에 돌아오는데 너무 낯익은 고양이가 밖에서 뛰어다니고 있더군요. 분명히 집 안에 있어야 할 모디가 밖에서 놀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었지요. 다른 고양이들은 체급이 월등한 모디가 다가가면 집 안에서와는 달리 놀라서 도망가거나 하악 소리를 내기 바빴고, 모디는 그 뒤를 신나게 쫓아가고…그렇게 이 집에서의 첫 탈출부터 골목을 제패했답니다. 아무래도 처음 길고양이들과 대면했을 때는 모디가 좀 겁을 먹었던 모양인데, 집 밖에서 각개전투가 시작되니 아무도 모디를 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담장을 넘고, 쭈그린 채 오리걸음으로 골목 사이를 다니고, 온갖 난리를 친 후에 겨우 붙잡기는 했지만 모디의 눈은 또다시 저번 집에서의 멍한 눈, 본능만 남은 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확실히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고, 활동 영역을 넓혀서 자기를 과시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았지요.
그 후에 몇 번 더 탈출이 있었습니다. 덧문을 누군가 열어 놓고 나갔는데 제가 확인을 하지 않아서, 다음으로는 화장실 공사를 하느라 집이 엉망진창이 된 틈을 타서 탈출을 했지요. 그러자 모디는 탈출을 일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듯하더군요. 제가 잡으려고 하면 절대 잡히지는 않으면서도 항상 집 근처에서만 놀았다는 것은 아직도 신기합니다. 다만 예전처럼 단순히 놀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역 관리라도 하려는 심산이었는지, 간식 냄새로 유인해도 제 쪽을 돌아보지 않았답니다. 1시간이 넘게 실랑이를 벌여서야 잡아올 수 있었는데, 배고파하기는 했지만 모디의 눈은 맹수의 의기양양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른 고양이와 싸움 자체가 될 수 없으니 다친 곳도 딱히 없었고, 콘크리트 바닥에 뒹굴면서 온몸으로 자신감을 표출하는 모디는 저와 집 안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 보였답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그 당시에 알았어야 했는데, 저는 차라리 모디가 답답해하지 않도록 매주 한 번씩 산책을 내보내자는 결론을 내려 버렸지요. 저렇게 좋아하는데, 적어도 날이 지나치게 추워지기 전까지는 실컷 즐기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잡아서 데려오기도 너무 힘드니 알아서 집 근처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예, 솔직히 인정합니다. 모디의 성질머리를 받아주기도, 일일이 찾으러 다니기도 힘이 들어서 그랬지요. 구태여 변명을 해보자면, 정신적으로 너무 몰려 있었기에 여러 가지를 놓아 버리고자 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떤 대비도 하지 않고, 어떤 경각심도 갖지 않고 편한 대로 행동해 버린 것을 지금은 너무도 후회합니다.
이후로 세 번의 큰일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처음 만난 고양이에게 당했는지 얼굴에 상처가 났고, 두 번째는 어딘가에서 뛰어내리다가 착지를 잘못했는지 뒷발톱이 상해 피를 흘렸더랬습니다. 사실 상처 난 얼굴로 들어왔을 때 다시는 내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간절히 산책을 바라는 모디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또 내보냈다가 두 번째와 같은 사달이 벌어졌지요. 결국 세 번째, 모디는 제가 깜빡하고 미리 닫아 놓지 않은 덧문을 통과해 무엇을 해볼 새도 없이 달려 나갔고 무언가 잘못 주워 먹었는지 장염에 걸려 들어왔답니다. 설사를 주룩주룩 해 대는 모디를 보고 기겁을 한 저는 다음날 바로 병원에 모디를 데려가서 약을 타 왔고, 게거품을 물며 거부하는 모디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는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요.
모디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무모하게 내보내지도, 다른 고양이들이 쉽게 들어오도록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부터는 안전을 경시했을 때 발생할 일들이 진심으로 두려워졌습니다. 저는 그 후 창문을 더 꼼꼼히 막았고, 방충망은 그냥 제 돈을 들여서 따로 수선을 했으며, 모디가 나갈 만한 구멍은 다 막고 덧문도 두 번 세 번씩 확인하면서 닫아 놓았지요. 그렇게 모디의 탈출기는 후회만 남기고 끝이 났습니다.
그 후 모디는 매일 제가 집을 나설 때마다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가고 싶은데 제가 절대 내보내지를 않으니 화가 나서였겠지요. 어르고 달래기를 한 달가량 하고 나서야 모디는 마음을 접고 바깥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되었답니다. 여전히 본능 자체를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지만요.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밖에서 무슨 소리만 들리면 그 눈, 소름돋도록 멍한 눈이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지요.
현재는 저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 새 집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탈출 걱정을 할 일은 없어졌습니다. 이미 저보다 훨씬 잘 알고 있으시겠지만, 집사분들은 급하다고 아무 집이나 구해서는 절대 안 되며 오로지 고양이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또한 고양이가 간절히 원한다는 핑계로 불필요한 산책을 시킨다든지 하는, 집사 마음이 편하자고 일을 벌이는 것도 금물입니다. 그것은 고양이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한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니까요. 비뚤어진 모디의 뒷발톱을 보면 제가 얼마나 멍청하고 한심한 집사였는지 상기하게 됩니다. 어떤 정신 상태로든 반드시 잊지 말고 놓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는 법인데, 제가 힘들다고 모두 잊어버리고 놓아버린 결과가 모디와의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