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일
누구나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즐기고 싶은 법입니다. 집에서 단조롭고 단순하게 시간 때우기를 좋아하는 모디도 예외가 아니지요. 어쩌면 그저 본능에 충실할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면 일단 가 봐야 한다는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도요. 앞서 말했듯 모디는 아무래도 다른 집에서 탈출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제게 발견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고양이의 탈출에 대해 아무런 경각심이 없었는지라 전혀 방비를 해 두지 않았었지요. 그리고 몇 번의 대탈출을 경험한 다음, 고양이가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경우라는 점을 거듭 말씀드리고 싶군요. 운이 나쁠 경우, 고양이와 영영 헤어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집사로서의 자격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모디의 탈출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첫 탈출은 2017년 자취방에서 있었습니다. 모디와 함께 산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모디는 슬슬 자신의 힘과 성질을 표출해내고 있었습니다. 넘치는 체력을 감당하기에 그 집은 너무 좁았지요. 저는 그저 여기가 편해지고 장난이 좀 심해졌구나 정도로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고요. 원래 침대나 책상 위에서 얌전히 웅크리고 있거나 굴러다니기만 하던 모디는 언젠가부터 제가 현관문을 통해 드나드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더군요. 그리고 어느 날 밤 제가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마자 쏜살같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쳐나와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달려갔지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가더니, 제가 헐레벌떡 옥상으로 쫓아 올라갔을 때에는 이미 폴짝폴짝 뛰면서 새로운 환경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온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냄새도 맡고, 괜히 발바닥에 닿는 감촉에 놀라 와당탕하기도 하고, 옥상에 있던 평상에도 뛰어올라 뒹굴거려 보기도 했지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그래도 집에 들여보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에 모디를 잡으러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모디는 어떻게 알았는지 저를 피해서 도망치기 시작했고, 너무 빨라서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지요. 고양이를 밖에서 놓치면, 스스로가 되돌아올 때까지 사람의 능력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답니다. 무엇이든 쉽게 뛰어올라 버리고, 사람이 도저히 들어가지 못하는 틈새에도 잘만 들어가고, 무엇보다도 네 발로 뛰어다니니까요. 건물들이 얽히고설킨 골목길에서 고양이가 네 발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는 직접 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예감에 사로잡혔지요. 모디가 밖에 나왔을 때부터 망했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고양이는 애초에 제가 부르거나 잡으려고 했을 때 제게 다가오지도, 잡히지도 않는 동물인데 지금껏 집 안에서의 모습만 주로 봐 왔으니 이런 상황을 떠올려 보았을 턱이 있나요. 한심하게도 모디를 마치 사람 아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망치다가 옥상 담장에 올라가 버린 모디는, 별 망설임도 없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휙 뛰어서 다른 집 지붕으로 건너가 버렸답니다. 모디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이며, 한창 뛰어놀 나이의 어린 고양이가 마음먹고 본능에 충실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를 이때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삽시간에 50m는 떨어진 다른 집으로, 날다시피 뛰어가 멀어지는 모디를 보며 저는 거의 공포에 질렸습니다. 모디가 이대로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떨어져서 다치거나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제정신이 아닌 채로 집 밖으로 달려 나가 모디가 도망친 건물 쪽으로 가니, 지붕 위에서 저를 쳐다보고 야옹거리는 모디가 보이더군요. 내려오라고, 제발 내려오라고 빌다시피 말을 하고 발을 동동 굴러도 모디 또한 이미 제정신이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심취해서, 본능에 잠식된 느낌이었달까요. 눈빛 자체가 멍해져 완전히 다른 고양이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아서 약간 소름마저 돋았답니다. 저를 비웃는 것인지, 놀다 오겠다고 통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디는 다시 한번 와앙 울더니 휙 몸을 돌려서 시야에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 쪽으로 다가오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지, 간식으로 유인해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갔습니다.
집으로 허청허청 뛰어들어가 간식을 챙기고, 모디가 어디에 있는지 좀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당시에는 지금보다 모디의 털색이 조금 더 밝았기 때문에 가로등 불빛에도 잘 보이더군요. 멀리 가지는 않아서 아까 그 건물 옥상에서 놀고 있는 모디 쪽을 향해 뜯은 간식 봉지를 놓고, 흔들면서 냄새가 퍼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오, 간식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모디는 곧 몸을 돌려 자취방 쪽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건물이고 에어컨 실외기고 휙휙 넘어서 달려오는데, 다칠까 봐 심장이 오그라들고 방광이 쥐어짜지는 느낌이었지요. 염려가 무색하게 사뿐히 옥상 담장에 착지한 모디는 간식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고, 저는 한 손으로는 모디를 안아 올린 채 다른 손으로는 간식을 먹이면서 최대한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사 품에서 벗어나고는 싶은데 간식도 먹고 싶었던 모디는 발버둥치면서도 열심히 봉지를 들쑤셔 대더군요. 무사히 들어오기는 했지만 역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빈털터리 그 자체였던 시절이라 모디의 탈출을 저지할 만한 무엇을 설치하기는 버거웠고, 방문을 열면 바로 바깥과 연결되는 구조라 늘 위험 요소가 있었거든요. 결국 드나들 때 문을 늘 조심히 열고 닫아야 했고 집을 나설 때는 모디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이나 간식을 사용해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점점 자라면서 더 용의주도해지는 모디의 탈출 본능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한눈을 팔면 뛰쳐나가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렇다고 밖에 나가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집안에서 편하게 누워 있고 싶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다른 쪽 창문을 보고 싶을 때는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문이 열리는 순간, 마침 그쪽을 보고 있으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라도 하는 것이었을까요. 첫 탈출 후에도 모디는 네다섯 번 정도 밖으로 나갔는데, 간식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거나 바람이 지나치게 찬 날에는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이때는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집에 살았던지라 주변에 위협적인 것들도 없었고, 길고양이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으며,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다칠 일만 아니면 딱히 걱정할 일이 없기는 했지요. 그래서 모디가 탈출할 때마다 아찔하기는 했어도, 20분 정도 놀다가 매번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기에 바깥 공기를 좀 쐬게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답니다.
집사분들은, 준비도 없이 해 버리는 이런 지레짐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남은 계약 기간 동안은 잘 버텨냈습니다만, 정말 문제가 되는 순간들은 두 달 정도 후 이사한 다른 집에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