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찹찹 와구와구 냠냠냠
묘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 중 하나가 언제이냐고 물으면, 모디는 아마 뭐 그런 것을 다 물어보느냐는 말투로 당연히 간식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촉촉하고 향긋한 간식을 먹기 위해 다이어트 사료의 씁씁함을 견디는 모디, 간식만 앞에 나타났다 하면 갑자기 어렸을 때처럼 순진한 눈망울을 갖게 되는 모디, 집사의 요구까지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주는 모디. 그만큼 간식 시간에 강렬한 의미 부여를 하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갈망 혹은 갈구라는 단어가 인생에서 쓰일 때는 많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능에 충실한 채로만 살기에는 너무 복잡한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단순한 모디에게는 상대적으로 본능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들이 더 있을 것이고, 모든 신경세포들이 깨어나 이글거리는 상태로 하루의 많은 부분이 채워져 있겠지요. 무언가를 추구할 때 어떤 제동도 걸 필요가 없는 시간 말입니다. 집사가 매일 준비해 주는 간식을 먹는 시간이 바로 그 중 하나일 테고요.
모디는 제가 퇴근을 하고 들어오면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그래서 일단 반갑다는 인사를 한 후에는 계속 와아옹와아아옹 울어대지요. 하지만 저는 보통 저녁밥을 먹을 때 간식도 함께 주기 때문에, 가엾은 모디는 아직 좀 기다려야만 합니다. 요리를 해서 상을 차릴 때까지는 보통 30분 이상 걸리는데 모디는 10분 정도가 지나면 울기를 그만두고 스크래처나 침대 위에 푹 늘어져 버리지요. 집사가 간식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당장 먹고 싶지만 때가 오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솟구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진 채로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저는 일부러 모디를 놀려 주고는 합니다. 요리를 하는 중간중간에 짬이 나면 모디 앞으로 가서 간식을 주지 않겠다고, 주기 싫다고, 혼자 알아서 꺼내 먹으라고 빈 간식 그릇을 든 채로 골탕을 먹이는데 표정이 아주 볼 만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간식 그릇에 코를 킁킁거리다가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얼굴을 하는데, 그때의 울음소리는 고양이어로 내뱉는 욕지거리임이 분명하답니다. 물론 제게는 전혀 들리지 않으니 상관이 없지만요.
요리를 마치고 상을 다 차려 놓으면 그제야 간식 시간이 찾아오는데, 모디는 간식이 들어 있는 찬장에 손만 대도 바로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부엌으로 들어오거나 그 옆에 있는 자기 화장실 위에 개구리처럼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우와아아아 하고 웁니다. 때로는 눈까지 꾹 감으면서 우는데, 얼마나 간절한지 이때도 복식호흡을 써서 뱃살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나온답니다. 또한 평소의 나태한 눈은 어디 가고 간식 그릇이 뚫릴세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만이 남아 있습니다. 저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다면 벌써 한글 정도는 떼고도 남았겠군요. 간식을 들고 방 한쪽으로 가면 고개는 간식 그릇을 주시하느라 쳐든 채로 발발발발 따라오고, 이때는 미야아아 소리에 가깝게 운답니다. 간식을 먹을 시점이 확실하게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고양이도 사람처럼 상황에 따라서 어조나 목소리가 바뀌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군요. 지금은 아까처럼 무작정 요구하기보다는, 간식이 나왔으니 어떻게든 집사를 잘 구슬려서 한시라도 빨리 그릇을 눈앞에 놓는 일이 더 중요함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간식을 먹기 전에는 약간의 통과의례가 필요합니다. 우선 모디만의 간식송을 불러 줘야 합니다. 간식 간식~ 모디가 좋아하는~ 집사보다 좋아하는~ 간식~ 하고 엉망진창 노래를 부르면 모디가 중간에 애처로운 울음소리로 추임새를 넣어 주지요. 그리고는 모디가 궁둥이를 붙이고 앉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그냥 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앉아, 혹은 궁둥이 붙여 정도로 말을 거는 편인데, 동거인은 엉덩이~ 엉덩이~ 하고 노래까지 해주더군요.
모디가 마지못해 툴툴거리면서 앉고 나면, 검지손가락을 얼굴 쪽으로 갖다댑니다. 손가락 끝에 코를 제대로 대면 간식을 주는, 일종의 보상을 한다는 개념을 부여한 훈련이라길래 통과의례에 포함시켰습니다. 모디는 코를 댄다기보다는 거의 얼굴을 들이박는 수준이기는 한데, 그래도 오래 해서 그런지 매번 나름대로 잘 해낸답니다. 이때도 저는 그냥 코, 하지만 동거인은 코~ 코 주세요~ 코 대세요~ 하고 노래를 합니다. 집사들마다 간식을 주는 방식이 다르기는 한가 봅니다. 평소에는 제가 더 시끄러운 편이지만 간식 먹이는 과정은 더 간결하거든요. 아무튼 동거인은 요새 앞발로 악수하는 훈련까지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모디는 가뜩이나 급한데 소중한 앞발을 건드리니 괘씸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간식을 얻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니 나름대로 맞춰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제야 간식 그릇이 모디의 앞에 놓이고, 모디는 한참을 기다린 간식이니만큼 식사예절 따위는 창 밖으로 던져버린 채 게걸게걸 먹기 시작합니다. 워낙 근육질 뚱뚱이인지라 주는 간식 양 자체는 많지 않아서 금세 다 먹어치우는데, 조금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열정적으로 촵촵촵 소리를 내지요. 사람이 저런 식으로 먹으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있겠지만, 고양이는 아무리 버릇없이 먹어도 다들 귀엽다고 난리니 이것 참 올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간식을 다 먹으면 모디는 입을 쫙 벌리고 입맛을 다십니다. 학캭캭 소리를 내면서요. 그리고는 열심히 앞발을 핥거나 고양이 세수를 하는데, 몇 년을 관찰해 보니 시간을 오래 들일수록 괜찮은 간식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더군요. 그다지 포만감이 들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대강 하는 편이랍니다. 쓸데없이 오랫동안 몸단장을 하고 나면 물도 좀 마시고, 꼬리를 빳빳이 세운 채 침대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한참 식사 중인 집사의 다리 위로 뛰어 올라옵니다. 저희는 식탁을 따로 두지 않고 침대 위에 앉아 밥을 먹거든요. 집사의 다리 주변을 돌다가 위에 털푸덕 앉으면, 간식을 잘 먹어서 행복하다는 고롱고롱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는 식곤증이라도 오는지 후루루룩 한숨을 쉬고 금세 잠들어 버리지요. 얼굴에는 이것이 바로 대접받는 삶이라는 만족감이 가득하고, 두툼한 뱃살은 위로 아래로 천천히 움직이고, 아직 입에 남아 있는 간식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지 짭짭거리기도 합니다. 바로 잠들지 않을 때에는 집사에게 애정표현을 하는데, 팔꿈치 살을 깨물거나 팔을 핥고, 때로는 팔뚝살을 깨무는 바람에 밥 먹다 말고 조금 놀라곤 하지요.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패왕이자 폭군에서 무릉도원의 신선으로 환골탈태라도 한 마냥 조용히 포만감을 즐긴답니다. 그러면 저도 안심하고 마저 식사와 설거지를 한 다음, 씻고 함께 누울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간식을 먹는 시간이야말로 무료한 모디의 일상에서 몇 없는 일대 사건이기는 합니다. 사람은 돈이 있고 마음을 먹으면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지만 고양이들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집사가 돌아올 때까지 사료만 먹다가 향긋하고 촉촉한 간식이 나오면 눈이 뒤집히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겠군요. 우리도 매일 같은 것만 먹다 보면 새로운 음식을 찾기 마련이니까요. 간식뿐 아니라 요리하거나 배달된 음식도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안타깝네요. 그래도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고품질의 간식들이 우후죽순 개발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모디가 중년으로 접어든 만큼, 앞으로는 건강식도 꾸준히 찾아 보고 여러 가지 간식들을 때맞춰 대접해 드려야겠습니다. 입맛이 아주 까다로우시니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집사들은 모디님이 사는 동안 새로운 맛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시고 거나하게 포만감을 즐기셨으면 하는 뚜렷한 바람이 있으니 다 잘 해결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