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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n 26. 2023

발톱 깎기

날카로워지면 그때그때 잘 깎아주세요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생존을 위한 몸단장은 아주 중요합니다. 고양이들은 끊임없이 자기 몸을 핥으면서 몸단장을 하지요. 냄새를 숨기고 위생을 지키는 일은 그들이 야생에서 살아남아서 지금껏 수많은 자손들을 퍼뜨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반려동물이 되어서 투실투실 살찐 다음에도 끙끙거리면서 하루종일 핥핥핥 자신을 정돈하는 모습을 보면 본능이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살려면 고양이들은 스스로 하는 몸단장 말고도 집사들이 해주는 몸단장을 받아들여야 한답니다. 거기에는 양치질, 빗질, 발톱 깎기, 코딱지파기, 귀 파기, 목욕하기, 항문낭 짜기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주 얌전한 고양이들이 아닌 이상 상당한 반항을 하기 때문에 집사들은 매번 주인님들을 어르고 달래야 하지요. 모디가 특별히 성질이 더럽기는 합니다만, 영상에서도 많은 고양이들이 집사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 역시 남이 해주는 몸단장은 고양이들과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중에서도 난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발톱 깎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발톱 깎기 싫다고 엉엉.




 고양이의 발톱은 몹시 날카롭습니다.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겉껍데기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면서 점점 날이 서는데, 잊고 있다가 어느새 보면 자그마한 흉기나 다름없이 변해 있지요.


 모디가 춥춥이를 할 때에만 꾹꾹이를 한다고 말씀드렸지요. 꾹꾹이를 할 때에는 모디가 힘껏 앞발을 번갈아 내밀면서 제 허벅지를 미는데, 발톱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큰일이 납니다. 고양이의 앞발은 젤리에 압력이 가해지면 발톱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를 갖고 있어서 왼발 오른발 번갈아 발톱이 제 허벅지를 찌르게 되거든요. 그 예리함은 한 번에 잠옷바지 천에 구멍을 낼 정도랍니다. 더구나 그냥 발톱을 내밀었다 숨겼다 하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긁어 내리면서 한 발을 떼고 다른 발로 밀기 때문에 찔리는 고통뿐 아니라 긁히는 고통 또한 고스란히 전해지지요. 모디의 춥춥이를 멈추자니 실망할 것이 분명한데 가뜩이나 민감한 허벅지살이 아프고 따가우니 미칠 지경입니다. 천을 살짝 들어서 살에 발톱이 직접 닿지 않도록 하거나 검지손가락을 끼워 넣어 그나마 감각이 덜 느껴지게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프기는 매한가지랍니다. 제때 할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집사에게 가해지는 응징은 이토록 엄격하지요.


 비단 춥춥이를 할 때뿐 아니라 사냥 놀이를 하면서 모디가 잔뜩 흥분했거나 양치질이 하기 싫어서 반항할 때, 갑자기 이유도 없이 고장나서 화닥닥 뛰어갈 때도 발톱은 위협적입니다. 집사가 근처에 있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살에 기다란 자국을 남기게 되거든요. 이런 일들을 예방하려면 춥춥이 중 살짝 따갑다는 느낌이 들고 나서 이틀 혹은 사흘쯤 후에는 반드시 발톱을 깎아 주어야 한답니다.




 발톱을 깎을 때에는 우선 모디를 다리 위에 벌러덩 눕히는데, 왼손으로는 앞발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발톱깎이를 준비합니다. 젤리를 눌러야 발톱이 나오기 때문에 손 안에 앞발이 제대로 들어와야 하지요. 저는 왼손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젤리를 누르면서 다른 손가락들로는 앞발을 감싸줍니다. 고양이의 발톱은 반투명하고 안쪽에는 분홍색 심이 들어 있습니다. 그 심에 닿지 않는 부분까지만 깎아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가 고통을 느끼고 출혈이 일어날 수 있으니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도 손발톱을 지나치게 짧게 깎으면 아프듯이요. 모디처럼 성격이 포악하다면 집사를 전혀 믿지 않고 몸을 마구 뒤틀면서 빠져나가려 하기에 거기까지 깎아 버리지 않도록 정말, 정말 세심하게 보면서 발톱을 깎아야 합니다. 또한 고양이 발톱은 폭이 좁은 낚싯바늘 모양인지라 집사가 편하자고 앞발에 수평으로 발톱깎이를 사용하면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한 번에 깎여나가지 않습니다. 수의사 선생님 정도의 전문가가 아니면 잘 깎아내지 못하겠더군요. 그러니 고양이의 앞발에 수직이 되게 발톱깎이를 세워 대고,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서 한 번에 일을 처리해야 하겠습니다.

 

 이때 제 왼손은 이빨 사정거리 안에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모디도 어리둥절한 상태라 비교적 위쪽에 있고 고르게 튀어나온 두번째~다섯번째 발톱까지는 무리없이 깎을 수 있지요. 문제는 아래쪽에 숨어 있는 첫번째 발톱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엄지손가락이 손목 밑에 붙어있는 느낌이랄까요. 자세를 다시 잡고 손가락을 밑으로 내려 숨겨진 발톱을 꺼내야 하는데, 이때쯤에는 모디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채서 격렬하게 자기를 놓으라고 항의하기 시작합니다. 제 왼손을 삼킬 기세로 입에 집어넣고 이빨로 세게 깨무는 모디를 뿌리치면서 발톱까지 깎으려니 난리법석 그 자체입니다. 심지어 다른 발톱들과 달리 약간 비스듬하게 나 있기에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 더욱 주의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만큼 모디에게 깨물리는 시간도 더 길지요. 다른 쪽 앞발까지 잘라낼 동안 제 손은 모디의 이빨자국이 숭숭 나고 빨갛게 부어오른답니다. 요즘에는 그나마 동거인이 모디 얼굴과 뒷발을 잡아서 깨물기와 뒷발차기 공격을 막아주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은 언제나 매한가지입니다.


발톱 안 깎겠다고오오오오오오오오!!!




 앞발톱을 다 깎았으면 뒷발톱도 정리해 주어야겠지요. 이번엔 모디를 털썩 앉혀 놓는데, 모디는 집사가 팔뚝살을 깨물리면 미치도록 아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다른 곳보다 살이 많아 물기 좋기도 하고요. 그래서 몸을 뒤틀어 제 팔 바깥으로 상반신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고 팔뚝을 물어제끼려고 합니다. 모디의 이빨 사정거리에 불쌍한 제 팔뚝이 들어오지 않으려면, 왼팔로 모디의 등을 단단히 감싸고 왼손으로는 뒷발을 잡아서 모디의 배 쪽으로 살짝 끌어당긴 상태를 만들어 주면 된답니다. 유연성 테스트를 할 때처럼 몸이 동글동글 말린 모디는 여전히 화가 나 있지만 반항을 하기 어려운 자세라 어찌할 도리를 찾지 못하게 되지요.


 뒷발톱은 양쪽 네 개씩으로, 준비만 단단히 해두면 앞발톱보다 더 쉽게 깎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모디가 탈출했을 때 다쳐서 비뚤어진 발톱 하나는 조심해야 하지요. 여덟 번 딱딱 소리가 더 나야 비로소 모디는 집사의 손에서 풀려납니다. 투덜대면서 멀어지는 모디의 뒤에는 사방에 흩어진 채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발톱 조각들과 지쳐서 너덜너덜해진 집사들이 있답니다. 동거인이 도와주더라도 이빨공격을 다 막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제 손과 팔에는 자국이 가득하고요. 열여덟 개의 조각들을 찾아 손에 쓸어 담고 쓰레기통에 버리면 마침내 발톱 깎기는 마무리가 되지요. 발톱을 깎은 뒤의 모디는 자신의 무기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약간 의기소침해져 있습니다. 집사분들은 발톱 깎기를 마친 다음에는 꼭 주인님을 칭찬해 드리도록 합시다. 가능하면 간식도 대접하시고요. 아무리 공생하기 위해서 발톱을 깎는다지만 본능적으로 조금이나마 충격을 받으실 테니까요.



 

 사람은 손발톱이 필요없도록 진화했고, 야생에서 벗어나면서 손발톱 관리는 위생과 미의 범주로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그러면서 문명의 길로 접어들기는 했습니다만,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겉과 속이 다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지요. 그리고 자기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억눌러야 할 때 으레 발톱을 숨긴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물론 올바른 사람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고 할 말과 못할 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아픔을 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발톱은 깎지 않고 숨겨 두면서 겉으로 보이는 손발톱만 잘 정리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진정으로 남에게 해가 될 만한 감정이나 생각은 억지로 감추면 되려 자기 자신을 공격하게 됩니다. 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 주변을 마구 할퀴게 되지요.


 모디는 집고양이니 발톱이 날카로울 필요가 없지만, 발톱이 날카롭지 않다고 해서 마음속에 다른 이들에 대한 분노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다. 반면 발톱을 깎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해를 입히려고 하지도 않지요. 그저 자기 본능에 따라, 고양이답게 그때그때 맞추면서 행동할 따름입니다. 사람의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본다면 그보다 더 진실한 모습이 없겠지요. 모디의 발톱 깎기를 마치고 제 손발톱을 정리하면서 스스로는 과연 얼마큼 진실한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분노를 품고, 애먼 곳에 묵은 감정들을 풀어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와 동시에 제 자신마저도 갉아먹고 힘들어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자신에게 피해를 줄 만한 감정과 생각이 든다면 그저 꾹꾹 눌러 담아두어서는 안 되겠고, 손발톱을 깎아내는 것처럼 깎아내야겠어요. 부정적인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도록 말이지요.


그래 집사가 뭐라도 깨달았다니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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