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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카레 Jun 28. 2023

병원 가기

아프면 안 돼, 우리 고양이


 모디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이 녀석이 남에게 끌려나가는 것을 너무도 싫어하는데다가 심각한 겁쟁이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래도 1년에 한 번 받는 예방접종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기는 해야 합니다. 또한 그 외에도 가끔 모디를 이동장 안에 구겨 넣고 병원으로 가야 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이를테면 탈출한 후 뒷발을 다쳤을 때, 장염에 걸렸을 때, 결막염 증세를 보였을 때, 그리고 얼마 전 기침을 심하게 했을 때 등등이지요. 사람보다 훨씬 작고 약한 생물이라 가뜩이나 늘 걱정인데 고양이에게 해로운 것들과 심각한 병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요. 모디도 7살이 되어 슬슬 노묘가 될 준비를 하는데, 아직 건강하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슬프고 힘든 일들이 늘어나겠지요. 그 사실을 알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쪽은 저와 동거인임이 차라리 다행입니다. 반대로 모디가 늙어가는 저희 둘을 보며 그래야 한다면 더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병원 가기는 모디를 이동장에 넣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안에서 간식도 살살 흔들어 보고, 이동장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꽤 오랫동안 한 공간에 놓아두고, 아무튼 알아본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디는 평소에 딱히 거부감을 보이지 않다가도 안아 올려 이동장에 가까이 가거나, 아직 간식 시간도 아닌데 간식을 이동장 안에 넣어 주거나 하면 바로 눈치를 채 버린답니다. 공기로 분위기를 읽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평소에는 안아 올려도 조금 투덜거리기만 할 뿐 얌전히 잘 안겨 있고, 일반적인 간식 시간이라면 이동장에 머리만 넣은 채 힘겹게 몸을 늘여서라도 끝내 다 먹어치우는데 희한하게 병원에 가려는 낌새가 보이기만 하면 필사의 저항을 하지요. 그 눈치를 집사의 기분을 읽는 데에 써 줬으면 좋으련만, 그럴 생각은 없고 이럴 때에만 촉을 발동시킨답니다. 아무튼 발버둥을 치면서 낮은 목소리로 구와아아앙 우는 모디를 이동장에 밀어 넣고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무한반복, 지옥의 소리 고문이 시작된답니다.


병원에 데려가려거든 나를 밟고 데려가라!!!


 집에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계속 울어대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우는 탓에 집사들은 병원에 가는 일 자체보다 모디의 울음소리에 더 혼이 빠져요. 1~2초마다 한 번씩 무와아앙 와아아앙 으아아앙 하고 울면서 집사들을 압박하는 상황은 이동장을 들고 걸어가기도, 택시를 타기도 민망하도록 만들지요. 길거리든 택시 안이든 저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울어대니까요. 게다가 어찌나 무거운지. 며칠 전 모디가 기침을 계속 해대고 헛구역질까지 하는 통에 동거인이 혼자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있었답니다. 동거인은 몸집이 아주 작은 편이라, 모디와 같은 뚱뚱한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어서 데리고 다니기에는 사실 힘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걱정으로 인해 무슨 초인적인 힘이 발동했는지 택시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서도 모디를 병원에 데려가 씩씩하게 엑스레이 검사와 초음파 검사까지 마쳤지요. 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을, 모디와 함께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동거인이 혼자 해내는 것을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몰려온 근육통 때문에 동거인은 거의 하루종일 누워서 보내야 했더랍니다. 당시에는 마음이 급하니 근육들이 무리하게 힘을 당겨 써도 전혀 몰랐던 모양입니다.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조차 못하는 동거인을 보면서, 모디가 얼마나 함께 이동하기 힘든 고양이인지 다시 체감했습니다.




 끊임없이 울면서 난리를 치는 이 녀석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을 수도 없고, 한 번 다녀오자니 사람이고 고양이고 전부 기진맥진할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하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병원을 방문하기 전 일주일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정도이지만 절대 걸러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더 긴장되지요. 언제쯤 모디는 집사들을 믿고 얌전히 병원에 가 줄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단 1%도 집사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지만요.


 그와는 별개로 병원에 갈 때면 수의사 선생님들의 실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생난리 끝에 죽어라 살아라 모디를 끌고 와서 반쯤 정신이 나간 저희와 다르게 그분들은 언제나 평온합니다. 단번에 모디를 잡고 주사를 놓으시고, 아무런 주저없이 발톱 18개를 연속으로 깎으시고, 그러면서도 표정 변화 하나 없으신 수의사 선생님들을 보면 바로 저것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모디가 귀청이 터져라 하늘이 무너져라 소리를 지르는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으십니다. 울음소리에 박자에 맞춰 아유 착하다, 조금만 참자, 귀엽다, 오냐 잘한다, 이런 말씀들을 중얼중얼 반복하시면서 할 일을 전부 순식간에 처리해 버리시지요. 아픈 동물들을 대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셔야 하니 수의사 선생님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해탈이라도 하신 듯한 모습입니다. 저와 동거인도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아니, 저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평온만은 가지고 싶습니다. 모디가 얌전해질 리는 없으니 저희가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겠지만 너덜너덜해지는 정신을 기워 내기에는 아직 정신력도 경험도 너무 부족하군요.


병원 또 데려가기만 해 봐라.....




 병원에 다녀와서는 약을 먹여야겠지요. 까다롭기 그지없는 모디는 가루약, 알약, 물약 모든 종류의 약에 치를 떱니다. 장염에 걸렸을 때 처음에는 가루약을 타 왔는데, 이전 글에도 썼듯이 그냥 먹였더니 게거품을 물면서 침을 흘리고 쿨럭거리더군요. 간식에 섞어 먹이라는 조언이 인터넷에 있길래 그렇게도 해 보았지만 몇 번 킁킁거리고 핥아먹더니 곧 휭 돌아서 버렸습니다. 결국 우거지상을 하고 꾸역꾸역 다 먹어치우기는 했지만 그렇게 쓸모 있는 방법은 아니었답니다. 약을 먹일 때마다 간식도 먹여야 하니 장염을 치료하는 대신 살이 뒤룩뒤룩 쪄 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수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아주 작은 환약을 처방해 주셨는데, 냄새가 나지 않아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먹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약값은 두 배로 들었지만요. 그런데 기침 때문에 방문한 현재의 집 근처 병원에서는 사람이 먹는 것마냥 커다란 캡슐을 처방해 주시더군요. 한 번도 캡슐 형태의 약은 받아온 적이 없어서 몹시 난감했지요. 일단은 캡슐을 쪼개서 가루약을 꺼내 간식에 섞어 먹여 보았는데, 이번에도 모디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티를 냈지요. 소중한 간식에 쓸데없는 것이 또 들어갔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직후에 다행히도 인터넷에서 정말 유용한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입을 벌린 다음 약을 목구멍 쪽까지 깊숙이 밀어 넣고, 코에 입김을 훅 하고 불면 고양이가 어벙벙한 상태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삼키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다음 약 먹을 시간이 되자 저는 이판사판이니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고 모디를 안아 올려서 다리 위에 눕혔습니다. 그런 다음 입을 벌리고, 학캭거리는 모디의 입에 약을 넣고, 검지손가락으로 약을 톡 쳐서 더 뒤로 보낸 다음, 코에 바람을 불었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모디가 꼴딱 약을 삼켰고, 모든 일이 끝났지요. 너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모디도 어이없어했고, 저와 동거인도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잠시 사고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모디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저쪽으로 간 다음에야 정신이 돌아왔지요. 그리고 나서 발달된 인터넷과, 그런 방법들을 대가 없이 공유해 주시는 여러 사람들에게 허공에나마 연신 감사를 표했더랍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고양이들도 집사들도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는 방법들이 인터넷이나 각종 매체들에 잘 나와 있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반려동물이 단 한 마디의 말을 할 수 있다면, 집사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다름아닌 ‘나 아파’라고 합니다. 저도 모디에게서 사랑을 표현하는 말, 기분좋은 말이 아닌 몸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당장 병원에 데려가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병원에 왔다갔다하는 일은 집사들과 고양이들 양쪽 모두에게 힘들기는 하지만, 막상 상황이 찾아오면 집사들은 초인이 되지요. 고양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자식 혹은 형제로서의 사랑이 집사들을 초인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영화에서 사람들이 초인의 능력과 정의감을 믿고 살아가듯 고양이들도 집사들을 좀 믿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고양이별로 떠나는 그날까지 되도록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아프다는 한 마디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무언가 큰 진화가 일어나도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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