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Nov 16. 2023

날 것과 진심이 만나면

로우 에스프레소 바 서종원 사장님 인터뷰

신당동의 어느 골목, 정제되지 않은 원석 같은 공간이 있다. 오픈 7개월 차 카페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열정으로 색을 만들어 가는 아담한 에스프레소 바. 이곳엔 그 어떤 규격도 없다. 그저 사장이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갈 뿐이다.



안녕하세요. 독자 분들께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로우 에스프레소 바를 운영하고 있는 서종원이라고 합니다. 대학교 때는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제조업 쪽 회사에 취직해 많은 분이 포크레인으로 알고 있는 굴삭기 설계를 했습니다. 3년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카페 창업을 했습니다.


굴삭기 설계사라니 정말 예상치 못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네요. 카페를 창업하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생 때부터 커피를 좋아했어요. 언젠가 카페 창업을 하겠다는 느낌이 막연히 들었어요. 일단 회사라는 틀 자체가 저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전반적으로 평탄하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무언가 인생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 늦기 전에 카페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바로 퇴사했습니다. 이후 6개월정도 준비 과정을 거친 뒤 창업을 하게 됐어요.


퇴사 후라면 열정이 불타올랐을 것 같아요. 퇴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처음에는 카페 사장보다는 커피 관련 교육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그래서 퇴사 전에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했죠. 좋은 기회로 퇴사 후에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어요. 서울 중심부는 거의 다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작은 회사들도 많고 요즘 여러 힙한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이곳 신당동으로 결정했죠. 가게를 준비할수록 커피 교육보다는 카페 운영 쪽에 흥미를 더 많이 느꼈어요. 특히 커피의 전문성을 올리는 데에 집중했죠. 하지만 요즘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동시에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제 가게를 알릴 수 있는 방법도요. 커피 교육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사업이라는 넓은 분야로 확장된 게 저도 참 신기하네요.(웃음)


하루하루가 변화의 연속이네요. 그런 사장님의 일과가 궁금해요.

가게를 8시에 오픈해요. 저는 40분정도 전에 도착하고요.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에스프레소를 세팅하고 간판을 내놓아요. 곧바로 아침 출근 시간이 시작됩니다. 2시간정도는 정말 정신 없어요.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점심 피크 시간 전까지 주로 디저트 준비와 로스팅을 해요. 그리고 또 폭풍 같은 시간이 오죠.(웃음) 이후에는 거짓말처럼 고요해져요. 그 시간에는 가능하면 영어공부를 해요. 해외여행 가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거든요.(웃음) 5시부터는 마감 준비를 하고 6시반쯤이면 모든 업무가 끝나요. 마감 이후에는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9시까지 가게에 남아서 남은 공부를 하거나 가게에 필요한 잔업을 처리해요. 퇴근 후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운동을 하며 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하루를 정말 꽉꽉 채워서 보내시는 게 느껴지네요. 기존에 하셨던 굴삭기 설계 업무와 카페 운영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생소함이나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두 직업은 정말 달라요. 회사를 다닐 때는 연구소에서 매일 컴퓨터를 보며 도면을 그리고 3d로 설계하는 일을 했어요. 반면 카페에서는 화면이 아닌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커피를 만들죠. 회사 생활은 규모가 크다 보니 프로세스 상에서 직원들이 각자 맡는 업무가 정해져 있었어요. 저는 설계만 했었고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기획, 메뉴 개발, 마케팅, 손님 응대까지 직접 해야 하더라고요.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해 수입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 하는 일은 예전부터 바라오기도 했고 찾아주시는 분들 모두가 친절히 대해주셔서 그 자체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는 제가 준비한 것들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요.


카페 이름을 ‘raw’로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raw’라는 단어가 좋아서 지었어요.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라는 뜻이잖아요. 저는 ‘raw’하면 가죽, 은, 여러 원단이 에이징 되는 과정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들어 가는 자연스러움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을 볼 때 연륜과 섹시함을 느끼는 것처럼 이 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훗날 중후한 매력을 물씬 뽐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가게 내부에 걸어두신 가죽이나 원단이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raw’의 느낌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 더 극대화하기 위해 인테리어적으로 추가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가게가 좁아서 많은 걸 추가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만약 더 넣게 된다면 시간의 흐름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재료가 추가되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은이나 데님, 최근에 걸었던 식물 같은 게 생각나네요. 오래 둘수록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요. 그럼 가게 분위기가 한층 더 멋있어지지 않을까요?(웃음)




더 매력적인 모습의 로우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주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어떤 모습인가요?

일단 손님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해요. 2030부터 5060까지. 특히 이곳이 동대문 옆이다 보니 의류업계 종사자 분들이 참 많으세요. 그래서 그런지 자기를 잘 가꾸는 분들이 많아요. 손님들을 볼 때마다 참 멋지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개성 있는 디자이너 분들이나 의류업계 MD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가게 오픈을 하자마자 지금까지도 계속 와주시는 손님 무리가 있어요.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정도의 형님들이신데, 처음부터 저와 얘기도 잘 나누시고, 커피, 공간 등 많은 것들을 참 좋아해 주세요. 지금은 인생 이야기도 많이 나누곤 합니다. 오실 때마다 제가 입은 옷에 대해 조언해주셨는데, 어느 날은 직접 만드신 브랜드의 옷도 선물해주셨어요. 덕분에 지금은 나름 스타일리시한 카페 사장처럼 보이지 않나요?(웃음) 그분들은 이곳이 방앗간 같다고 말씀하세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클라이언트 미팅까지 이곳에서 진행하시거든요.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매일 같이 이 공간을 찾는데, 보다 보면 단골 손님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사장님이 생각할 때 로우가 꾸준히 사랑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직히 처음에 창업을 준비할 때는 커피의 맛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그건 절대 아니라는 걸 느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쌓는 거라고 생각해요. 손님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진심을 다해 대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네요.


이런 것들이 개인 카페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매력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메뉴판도 굉장히 친근한 느낌인데, 손으로 직접 메뉴판을 만드시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날 것의 느낌이 좋아서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초반이다 보니 메뉴 수정할 것도 많아서 따로 프린트는 하지 않았어요. 조금 더러워 보일 수도 있는데 메뉴가 바뀌면 그냥 화이트로 긋고 그 위에 새로 써요.(웃음)


매번 새로운 메뉴를 만드시고 저를 포함한 손님들께 테스트를 보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손님들의 의견이 실제로 많이 반영되는 편인가요?

처음에는 손님들의 의견보다는 제 고집을 밀고 나가는 편이에요. 그리고 나서 반응이 안 좋으면 바로 빼죠. 어떻게 보면 손님의 의견이 꽤 많이 반영되는 것 같네요. 재료적인 것 외에 메뉴의 이름도 아이디어를 받아서 반영하는 편이에요. 지금까지는 의견을 내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더 적극적으로 여쭤보려고요.(웃음)


메뉴 중에 ‘강배전 콜드브루’라는 메뉴가 눈에 띄는데, 아직 한국 대중들에겐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강배전 커피를 꾸준히 선보이는 이유가 있다면요?

우선 한국에서는 아직 약배전 커피가 익숙한 게 사실이에요. 로스팅을 약하게 해서 생두 본연의 향을 살리는 스타일이 약배전이고, 그와 반대로 로스팅 과정에서 생기는 향에 집중하는 게 강배전 스타일이에요. 때문에 강배전은 바리스타나 로스터의 섬세한 실력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유 때문에 강배전 커피 메뉴를 고집하는 것도 있고, 단순히 제가 강배전 스타일을 좋아하기도 해요. 손님 분들도 처음에는 낯설게 느끼시지만 한 번 드신 이후에는 강배전만 찾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죠.


티라미수 메뉴가 참 인상적이에요. 이게 티라미수의 원형에 가깝다고 알고 있는데, 이 뿐만 아니라 로우에는 유행을 따르기보단 근본적인 부분에서 출발한 요소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근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뿌리가 튼튼해야 기둥이 흔들리지 않잖아요. 카페면 커피가 맛있어야 하고, 옷이라면 원단이 좋아야 하고, 음식은 플레이팅 보단 본연의 맛이 살아야 해요. 최근에 많이 느끼는 건데, 기본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재미가 없잖아요. 기본을 지키되 약간 비틀어서 보여주는 게 보는 사람 입장에서 새롭고 제 아이디어가 들어가니까 결국 제 것이 되더라고요. 티라미수 메뉴가 딱 그 느낌인 것 같아요. 이런 시도를 앞으로도 계속 해보려고요.


기본을 비틀어서 보여준다는 말이 참 인상 깊네요. 이렇게 근본을 중요시 여기는 사장님이 카페를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요?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아니에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손님에 대한 진심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티가 나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느낀 친절과 감사함을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다시 돌려드리자는 생각으로 커피를 내려요.


어떻게 보면 카페에서 커피의 역할은 사장님과 손님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하는데, 작은 개인 카페일수록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로우의 커피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장님과 손님들이 더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고요.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가치와 맞닿아 있는 다른 공간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저는 우리가 커피를 맛있다고 느끼는 데에 커피 본연의 맛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 커피를 마시는 공간의 분위기나 바리스타의 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죠. 저 같은 경우는 바리스타의 태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런 부분에서 구파발에 위치한 YM ESPRESSO ROOM을 추천하고 싶어요. 연신내에 YM COFFEE HOUSE라는 공간도 있는데, 제가 로우 에스프레소 바를 준비할 때 많은 영감을 받은 곳이에요. 손님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어떻게 보면 로우의 전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YM ESPRESSO ROOM은 먹고 나오면 커피 맛을 떠나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바리스타 분들의 환대가 100점입니다. 꼭 추천 드려요.  


저도 바리스타의 태도를 중요시 여기는 편인데, 듣기만 해도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은 공간이네요. 그렇다면 손님들이 로우의 커피와 공간을 경험한 뒤 어떤걸 느꼈으면 하나요? 

제가 YM ESPRESSO ROOM에서 느꼈던 것처럼 그냥 기분이 좋았으면 해요. 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려면 커피도 커피지만 제 태도와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아야겠죠. 다른 건 없고 그저 기분 좋게 가게를 나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카페 사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전 평생 제가 여기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건 절대 후회하지 않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배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로우 에스프레소 바가 저 자신을 담고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로우 에스프레소 바 하면 저와 이 가게가 연상되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요.
















글, 사진 권지환

인터뷰이 서종원


작가의 이전글 야간 러닝은 영감의 연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