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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Apr 14. 2023

살기 위한 결심.

만들라는 영화는 안 만들고 왜 갑자기 시골에서 집을 지어요?

처음엔 조금은 단순한 생각이었다. 우울증엔 운동이 최고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집을 짓는 일은 몸이 고된 일이니까 그렇게 나의 몸을 혹사시키면 머릿속의 소란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사실 영화를 만든 이후로 나는 거의 몸을 쓰지 않고 살았다.

물론 촬영은 엄청나게 체력을 요하는 일이지만, 편집이 시작되면 나는 완전히 모니터와 한 몸처럼 지내야 했다. 작은 모니터에서 손톱만 한 작은 영상 클립들을 자르고, 붙이고, 모으고, 연결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 기나 긴 시간 동안 나의 몸은 움직임 없이 내내 작은 방에 갇혀 있었고, 머릿속은 늘 너무 많은 것들이 뒤엉켜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몰입 끝에 오는 성취감을 사랑했기에 그 시간도 버틸 수가 있었다. 아니, 버티는 것을 넘어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시작된 트라우마 증상으로 나는 지독한 무기력과 우울을 겪었고, 편집은 커녕 촬영해놓은 영상을 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동안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의 의지력을 탓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핑계로 자꾸 도망쳤다. 고통과 자책과 합리화와 무기력이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아주 사소한 자극도 트리거가 되어 내 일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마음이 고장 났다는 것, 나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을.


돌이켜보니 나는 사랑으로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어느 영화 제작 지원사업에 써낸 자기소개서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도시는 종종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자주 절망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있는지 알고 싶었고 절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절망 안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온기를 놓치지 않고 싶었습니다.”


분명 내가 쓴 글이었는데 어쩐지 너무 생경했다.


‘아, 나에게는 지금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할 작은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구나.’


저 때의 나는 아주 분명하게,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증오와 원망으로 다 타버린 황폐한 영혼만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

사랑이 없으니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니, 살아갈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감정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던 누군가의 유서처럼,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으니 삶조차 무의미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영화를 만들게 아니라 일단 나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 나를 살리자고. 영화는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나는 그렇게 제천의 작은집건축학교로 갔다.  

단순하게, 몸을 쓰면서 동시에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가장 최고의 활동이라고 생각한 '집짓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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