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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Aug 17. 2023

작은 집에서 첫여름을 보내며.

올여름, 유독 비가 많이 왔다. 게으름을 피운 덕에 오일스테인을 바르지 못한 아라우코 외장 합판도 거뭇거뭇 색이 변해버렸고, 이유를 모르겠지만 벽에서 자꾸 비가 샜다. 처음에는 작게 샷시 틈에서 한 방울씩 새다가 나중에는 졸졸 흘러넘쳐 싱크대까지 젖어버렸고, 작업실 한쪽 귀퉁이에서 슬금슬금 새어 나오던 물기는 어느새 벽이 꽤 젖을 정도로 흘러서 다락 바닥마저 적셔버렸다. 비가 내리는 도중에는 작업을 할 수 없으니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가 벽과 지붕을 살펴봤다. 원인을 찾아야 하니 하나씩 보수하고 다시 비를 기다려 확인하길 수차례. 골강판에 있던 피스 구멍까지 실리콘으로 모조리 막았음에도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길에 꽤나 답답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바늘구멍으로도 물이 샌다더니! 과연 사실이었구나.

대체 어디서, 대체 왜 물이 새는 걸까.’


심지어 가장 최근 내린 비에는 역대급으로 비가 새는 바람에 비옷을 입고 출동하신 문작가님이 비가 오는 와중에 지붕 위를 살펴보기도 했다. 불안하고 답답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가 새는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다시 비가 소강상태가 됐으니, 조만간 시간 내서 지붕 쪽을 한번 더 살펴볼 생각이다.


사실 누수를 경험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누수로 골치 아팠던 적이 있었다. 윗집에서 물이 샜을 때 한번. 그리고 우리 집에서 물이 샜을 때 한번. 강도는 지금보다 훨씬 약했는데, 돌이켜보면 스트레스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찾아보니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때는 내가 아닌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누수를 경험했던 그때는 윗집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처음엔 천장 벽지가 군데군데 젖어있어서 긴가 민가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길래 윗집으로 찾아갔다. 윗집엔 세입자 부부가 살고 있는 상황이라 전달을 부탁한다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왔다. 곧 집주인 분이 연락을 주셨는데 곧 세입자가 이사 갈 예정이라고, 공사하려면 짐도 많고 힘들 거 같으니 심하지 않으면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하셨다. 아주 심한 상황은 아니니 그러겠다고 하고 물 떨어지는 곳에 바가지를 받쳐 두었다. 그러고는 한 이틀이 지났을까? 물 양이 점점 많아진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두꺼비집에서 지지직 타는 소리가 나더니 차단기가 내려갔다. 물이 전선을 타고 차단기까지 흘러와 누전이 된 것이었다. 때는 저녁이었고 막 씻으려던 참에 전기가 나간 것이라 정말 당황스러웠다. 양초가 있을 리 만무했고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사태 파악에 나섰다. 물은 나오니 씻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일러가 멈췄으니 온수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고, 무심코 물이라도 끓이려 전기포트에 물을 넣다가 ‘아, 얘 전기 포트지’ 하고 다시 물을 커다란 냄비에 옮겨 담기도 했다. 휴대폰을 충전하지 못하니 휴대폰 손전등을 내내 켜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때문에 편의점으로 양초를 사러 나갔지만 어디에서도 팔지 않았다. 전기가 나갔을 뿐인데 일상이 완전히 정지한 느낌이었다. 결국엔 밤 중에 짐을 싸서 집 근처의 숙소로 갔다. 다음날, 누수 업자가 윗집에 방문했고 공사는 다행히 바로 진행되었다. 떨어지던 물방울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어떤 부분에서 누수가 있었는지 설명까지 해주고 떠나셨다. 하지만 전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차단기까지 물이 줄줄 흘렀던 것이 불안해서 전기 업체를 불렀고 차단기를 교체했다. 이사 오며 교체한 새 벽지가 누렇게 얼룩덜룩 변해버려 도배까지 부분적으로 완료하고 나서야 모든 일이 끝이 났다. 한바탕 이 난리를 겪고 나니 끝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무력감이 훅 몰려왔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필연적으로 놓일 수밖에 없다는 어떤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나의 의지와도, 나의 노력과도 무관한, 어떤 상황. 한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타인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그 무력감이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이 기억을 떠올리자니 지금의 내가 그때와는 왜 다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집을 한번 지어봤기 때문일까? 똑같이 물이 새는 상황이지만 이 집에서는 나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나의 집의 문제를 타인을 불러서 타인의 손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는 무력감과 부담감이 아니라, 주변에 도움을 청하더라도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였다. 답답하고 귀찮을지언정 결코 의존적이지 않고 무지하지 않다는 감각이 나의 스트레스를 훨씬 줄여주었다. 벽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는데도 꽤나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이 할 수 있고 나만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그 양가적 의미가 지닌 무게감 때문이었다. 무게는 짐이 아니었다. 그건 자유였다. 내가 나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는 그 자유.



누수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달라진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집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집을 지어놓고 나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설계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고, 시공, 마감에서도 그랬다. 창을 좀 더 이쪽으로 둘걸. 돈이 좀 더 들어도 단열은 좀 더 확실히 할걸. 마감을 이걸로 하지 않고 다른 걸로 할걸. 이것저것 후회가 남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고 신기했다. 뻔히 흠이 보이는데, 이렇게 집에 물이 새는데도 괜찮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다고 느끼는 내가 생소했다. 한 대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이 경험 때문일까.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나의 삶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느낀 것이었다. 완벽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이 집, 물이 군데군데 새는 이 집을 온전하게 사랑하듯이 완벽하지도 능력 있지도 않은 나 자신 또한 온전하게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내 안에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 덕분인지 이제는 비가 샌다 해도, 허점이 있다 해도, 퍽 괜찮게 느껴진다.



여름을 지나며, 비에 취약한 집과 함께 하며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계절을  보지 않은  집이 때로는 위태롭고 때로는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뭐든 괜찮을  같은 자신감과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러울  같다는 깊은 애정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여름에 나는, 책임의 무게만큼 자유로워질  있음을 배웠고,  집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할  있다는 것을 배웠다. 충분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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