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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Apr 21. 2023

고향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고향을 갖고 싶었던 사람.

“친정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언제든지 와요”

문작가님과 손작가님은 작은집 건축학교 수료식 후, 작별인사를 건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허투루 들리지 않고, 빈말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분명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라는 걸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말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1년 뒤에 다시 여기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어떤 열망을 품고 살았다. 그 열망의 근원이 어디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가 ‘아파트 키드’ 세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웃긴 건 나는 단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의 개인적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80년대 생인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쭉 콘크리트 건물들 속에서 자랐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흔히 고향이 없는 세대로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고향’의 사전적 정의는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라고 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나 또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동안 집은 물론 동네와 도시마저 많이 바뀌어왔다. 나의 가장 최초의 기억을 간직한 집인 부산 화명동 산중턱에 있던 2층 짜리 주택은 이미 개발되어 아파트촌 어딘가가 되었고, 처음 서울로 상경해 만났던 도시의 풍경들도 10년이 채 되지 않아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그 사실들은 나를 조금씩 공허하게 만들었다. 막상 그곳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었으면서 나는 왜, 돌아갈 곳이 없다는 감각에 서글퍼졌을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언제부턴가 가져본 적 없는 나만의 고향을 갖고 싶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변치 않고 그대로 있어 줄 어떤 곳을 마음 한편에 품고 싶었다. 아파트나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땅과 같은 곳. 본 적도 없고 가진 적도 없는 그곳을 그리며 땅을 밟을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을 꿈꿨다. 


그 열망과 꿈을 가지고 1년 전 작은집 건축학교 수업을 들었다. 집 짓기를 배우면 그 꿈과 비슷하게나마 닮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배워보니 얼른 짓고 싶었다. 아늑한 땅에 작은집을 하나 지어서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시대를 맞아 건축 자재비가 치솟아 수료 후에도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집을 짓자니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나에게는 충분한 돈도, 실행할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가 1년이 훌쩍 갔다. 그동안 나는 많이 쪼그라들었고 일상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집을 짓는 것만이 내 삶을 다시 회복시킬 유일한 구원처럼 느껴졌다. 산소호흡기를 낀다는 느낌으로 학교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는 건축학교를 만드신 문작가님과 손작가님께 도움을 청했다. 시골의 작은 땅에 농막을 하나 짓고 싶은데 혼자서 가능할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조언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두 분은 마침 현재 만들어져 있는 자크르마을(작은집마을) 위에 청년 마을을 만들고 싶고, 청년주거문제에 바퀴 달린 집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시도해보고 싶은데 막상 사람이 없으니 못하고 있었다며 여기, 건축학교에서 함께 집을 지어서 마을에서 한번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다. 조금은 걱정스럽게 ‘저한테 딱 천만 원이 있는데, 이걸로 가능할까요?’하고 물으니 어떻게든 해보자고 하셨다.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하시며.


사실 나는 최근에 사람들이 싫어졌었다. 정확히 말하면 싫었다기보다 지긋지긋했다. 나의 에너지 총량은 점점 줄어들어서 이후에는 동네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조차 보기가 힘들었다. 갈수록 집안에만 틀어박혔다. 그런데 아무리 틀어박혀도 도시에선 완벽히 고립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 떼와 흔들리는 꽃나무나 보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고립. 그래야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별 기대 없이 한, 하지만 어쩌면 안간힘이었을, 도움 요청에 두 분은 기꺼이 손 내밀어주셨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고, 나의 상황에 대해서 일절 묻지도 않으신 채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조건 없는 누군가의 선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때의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날들이었다. 그 마음들을 소화시킬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이제 그날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은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땅을 밟고 살고 싶었던 마음은 어쩌면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늘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었지만 마음 편히 갈 곳이 없었던 나에게 두 분은 비빌 언덕이 되어 주셨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던 땅은, 조건 없는 선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 자체 아니었을까. 

나는 어쩌면 그날, 그토록 그리던 고향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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