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어떻게 쓰며 살 것인가.
브런치에 네 번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시간을 거슬러 작년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집을 짓게 된 계기부터 바닥을 만든 이야기까지. 하지만 오늘은 현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집을 완성해서 작은집 마을에 살고 있는 지금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생각들.
작년 11월에 집을 짓기 시작한 후, 크리스마스이브날 완공을 목표로 열심히 달렸지만 결국 실패했다. 유독 크리스마스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편이라 멋지게 집을 완성해 작은집 마을로 옮긴 다음 근사한 축하 파티 겸 크리스마스 파티(그래봤자 소박한 저녁 정도이지만)를 열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12월의 제천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권이었다. 너무 추운 날씨에 결국 집을 완성하지 못한 채로 서울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냈다. 그렇게 해가 지나가자 나만의 중대한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었고 남은 마감을 바짝 하기에도 뭔가 김이 샌 느낌에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점점 미뤄지는 자잘한 마감들을 남겨두고 사정상 3월부터는 건축학교 한쪽에 임시로 집을 놓고 살기 시작했다. 넋 놓고 있다가는 문작가님 말대로 정말, 집들이 파티를 올해 크리스마스에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도저히 미룰 수 없어 5월의 첫째 날, 드디어 바퀴 달린 집을 작은집 마을에 옮기게 되었다.
초반 며칠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금세 지나갔다. 그리곤 바로 어제, 처음으로 혼자 이 집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후 여섯 시. 살짝 허기가 져서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전날 친구와 함께 먹다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데웠다. 살짝 김 빠진 콜라와 함께 간단한 저녁을 차려놓고 한국인 쇼파 사용법에 맞게 쇼파를 등받이로 쓰며 바닥에 앉았다. 해가 많이 길어져서 밖은 아직 환했고 서쪽으로 나있는 큰 창에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시원한 공기도 느끼고 싶어 반대편 마을이 보이는 폴딩도어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주위에 보이는 건 온통 초록이었다. 죽은 나무인가 할 정도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던 앞마당 나무 한그루 마저도 초록 잎사귀로 뒤덮여 있었다. 주변은 고요하고 기분 좋은 새소리만 조금씩 들릴 뿐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도록 이 시간을 기억하자고. 이 시간을 두고두고 꺼내보자고.
마치 방해금지모드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아직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어서 늘 듣던 음악도 없었고, 습관처럼 보던 유튜브도 없었고, 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피자를 꼭꼭 씹어 삼키는 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천천히, 나의 속도로, 맛을 느끼며.
‘언제 이렇게 밥을 먹었었지? 이렇게 밥을 먹는 것에만 집중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여기서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충만한 행복이었다. 도시에서는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돌이켜보면 시간이라는 것은 늘 알뜰살뜰 조각내서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좀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쓰는 것만이 시간을 제대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많은 일을 해내지 못하는 나,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늘 조바심과 죄책감이 들어서 괴로웠다. 그래서 괜히 밥 먹을 때도, 이동할 때도, 심지어는 쉴 때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뭐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피자를 먹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음식을 꼭꼭 씹어 삼키기만 했다. 평소 같으면 어색하고 허전했을 텐데 여기선 그렇지 않았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느낄 뿐이었다. 근데 그 감각이 굉장히 낯설면서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의 속도로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내 앞의 풍경? 소리? 사는 집? 나의 태도?
이유가 어쨌든 나는 이런 시간을 더 많이 쌓아가며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가끔 어리석은 내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마다 이 시간을 기억하며 다시 말해줄 것이다. 시간을 유영했던 이 날을 나침반 삼아 너의 시간을 살아가라고.